통합 검색어 입력폼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조회수 2017. 2. 23. 23:53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던 과학기술의 혁신이 어떻게 경제 진보와 사회 진보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그 궤적을 더듬어 한국 경제의 디지털 방향을 모색한다.

‘4차 산업혁명’이란 유령이 한국 공공기관, 언론 그리고 정치권을 사로잡고 있다. 디지털 혁명, 인터넷 혁명, 인공지능 혁명 등 다양한 기표들의 잔치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 아니 인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혁명 시기’를 과연 통과하고 있을까?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이 혁명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사과 씨가 사과나무로 이어지듯 기술 진보는 자연스럽게 사회 진보를 동반할까?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과 부상이 사라진 세상은 비록 일자리 수가 감소해도 인간에게 더 유익한 사회일까? 우리 후세대는 우리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경험하며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 1차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던 과학 및 기술 진보가 어떻게 경제 진보와 사회 진보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그 궤적을 더듬어 본다. 이를 통해 한국 경제의 디지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진보’의 프로메테우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냉장 보관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실험을 주저하지 않았다. 베이컨은 음식을 오래 보관하고 이 저장된 음식을 가난한 지역에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겨울 눈 속에 닭고기를 보관하는 등 냉장 실험에 빠져들었다. 이 실험으로 얻은 폐렴은 1626년 베이컨을 사망으로 이끌었다. 르네상스 시대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왕, 귀족, 주교를 위한 영광을 좇았다면, 베이컨은 기술 진보, 특히 의학 기술의 진보가 왕과 주교뿐 아니라 목동과 농부에게도 더 나은 삶을 선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첫 번째 과학자였고, 철학자였다.

베이컨과 베이컨을 추종하는 (과)학자들은 (과거의) 이론을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과학 방법론인 ‘귀납법’을 발전시켰고, 이렇게 검증된 과학 이론은 때론 효과적인 기술 진보를 가능케 했다. 베이컨에 따르면, 우리 (과)학자가 함께 일하고, 우리가 세상을 관찰하고, 우리가 우리의 발견을 연구하고 공유하며 협력할 때, 우리가 팀으로서 자연 속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원인을 발견할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서 새로운 발견의 기초를 닦게 될 것이다.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561년 ~ 1626년, by Frans Pourbus, 1617)

이 발견들은 조금씩 인간의 삶을 편하게 할 것이며, 겨울을 조금 더 따뜻하게 보내고,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며, 이 발견들은 천천히 조금씩이지만, 농작물의 수확량을 증대시킬 것이고, 병상에 누운 아이들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베이컨은 (과)학자의 노력에 따라 다음 세대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맛볼 수 있다는 (기술) 진보의 사회 가치를 처음으로 주장했던 인물이다.

베이컨과 그의 후예들이 이룩한 기술 진보(technological progress)가 경제 진보(economic progress)로 이어진 사건은 제임스 와트(James Watt)에 의한 증기 기관이다. 18세기 초반부터 광산의 배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기 시작한 증기기관은 18세기 후반 제임스 와트에 의해 비약적인 생산성과 안정성 향상을 얻었다.

이후 증기기관 덕분에 에너지 생산은 물과 바람으로부터 그리고 사람과 동물로부터 자유롭게 되면서 그 사용처를 빠르게 확장해 나갔다. 증기 기관은 섬유산업, 증기선과 증기기차 등 교통산업, 증기 윤전기 등 출판 및 언론산업 등 이른바 산업 생산(industrial production) 시대를 열었다. 증기 기관의 진화 및 확산과 함께 노동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른바 산업혁명의 시작이었다.

도심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장이 만들어졌고, 농촌을 떠나 도시의 공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도심 거주 인구수는 산업혁명과 함께 폭발적 증가를 기록했다. 2015년 기준 약 870만 명이 사는 런던은 산업혁명 직전인 1760년 74만 명의 인구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이 들불처럼 확산하기 시작한 1860년 런던의 인구수는 약 319만 명에 도달했다. 영국보다 뒤늦게 산업혁명이 시작된 독일 베를린은 철학자 헤겔이 죽었던 해인 1831년 그 인구 수가 고작 3만 5,000명에 지나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베를린은 1875년 1백만 명의 대도시로 빠르게 성장했다. 1백만 명 중 약 10만 명이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산업 혁명과 사회 진보의 그늘

기술 진보와 경제 진보는 한편으로 노동자에게 추위와 절대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지만, 산업 생산은 다양한 재앙을 동반했다. 수질 오염으로 도심에 콜레라가 창궐했고, 석탄 소비의 급증은 대기오염을 인류에게 처음으로 경험하게 했다. 공장과 주택가에는 쓰레기가 넘쳐났고, 벽지와 옷감에 묻어 있는 수은은 독극물로 인식되지 못했다.

그리고 산업혁명은 ‘아동 노동’을 사회화했다. 1788년 영국 섬유산업 전체 노동자 중 2/3이 아동이었으며, 1800년대 초반 미국 공장 노동자의 1/3이 만 7세와 만 12세 사이의 어린이였다. 20세기 이전까지 피임은 대중성을 얻지 못했고 ‘다산’은 도시 인구의 폭발적 증가의 직접 원인을 제공했다. 아이들이 공장으로 공장으로 밀물처럼 몰아쳐 들어갔다.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영국과 미국의 산업혁명이 어린이의 피를 먹고 성장했다며 아동노동을 비판했던 것처럼, 광산과 공장의 아이들을 포함 노동자는 산업 혁명 초기에 파리처럼 죽어 나갔다. 아동 노동자는 성인 임금의 10%에서 20% 수준의 임금에 만족해야 했다. 이들은 광산의 잦은 가스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카트에 깔려 죽었고, 섬유 공장에서 팔이 잘려나갔다. 인산을 내뿜는 성냥 공장에서 하루 14시간 노동에 시달렸던 여자아이들은 사춘기와 함께 생을 마감해야 했다.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태어난 영국의 도시 거주자 대다수는 그 수명이 만 25세를 넘지 못했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1908년 미국 공장의 아동 노동자

한편 ‘다산’을 특징으로 하는 노동자 가계에 아동 노동은 절대 빈곤을 탈출하게 하는 빛줄기였고, 그래서 일부 공장주와 자본가는 아동 고용을 노동자 가계 수익에 기여하는 사회 공헌으로 인식했다. 영국의 일부 정치인과 학자는 농촌의 헛간과 굴뚝에서 굶주린 채 삶을 이어가는 아이들과 가내수공업의 아동 노동의 조건을 언급하며 산업 공장의 아동 노동을 사회 진보로 해석했다.

영국 의회와 정부가 아동 노동에 대한 찬반 논쟁 끝에 만 9세(!) 이하의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만 9세와 만 13세 아동의 하루 노동 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공장법(Factory Acts)을 제정한 시기는 1833년과 1844년이 되어서였다. 과학과 기술 진보는 경제 진보 등 다양한 사회 유익을 인류에 선사했지만, 동시에 끔찍한 부작용을 동반했다.

증기기관과 석탄 에너지에 기반을 뒀던 산업혁명은 철과 석유의 대량 생산 그리고 전기 에너지에 바탕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포드 자동차의 포드 생산방식과 테일러(Taylor)의 과학 경영(Scientific Management)은 자본주의 노동생산성을 다시 한번 끌어올렸다.

출처: 슬로우뉴스 관련 기사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 1856년~1915년)와 그를 경영학의 ‘아이돌’로 만들어 준 책 ‘과학적 관리의 원리'(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 1911) 하지만 테일러의 ‘과학’은 노동자는 게으르다는 편견으로 가득한 자본가 편에 선 ‘선동’에 불과했다.

20세기 초반 미국, 영국, 독일, 소련, 일본 등지에서 일어난 이른바 효율성 운동(Efficiency Movement)은 효율성 또는 생산성 증대를 사회를 지배하는 주요 사고체계로 등장시켰다. 효율성은 경제와 산업 생산에서 동일한 조건에서 더 많은 것을 생산하거나, 투자가 증가하면 결과물이 투자 증가분보다 더욱 크게 증가하는 것을 뜻한다.

이른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가 산업혁명을 통해 시작됐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호르크하이머(Horkheimer)와 아도르노(Adorno)는 효율성 사고체계를 ‘도구적 이성(instrumentelle Vernunft)’ 또는 ‘이성의 도구화’라 부르며 비판했고, 막스 베버(Max Weber)는 이를 ‘목적 합리성(Zweckrationalitat)’이라 칭했고, 루카치(Lukacs)는 자본주의의 효율성 추구를 물화(Verdinglichung)로 설명했다. 효율성은 경제와 사회를 지배하며 ‘조금만 더’라는 욕심마저 자본주의 미덕으로 변화시켰다.

산업혁명의 동인: 효율성 추구

어떤 이는 효율성 추구는 인류 사회를 진화할 수 있게 했던 인간 본성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인간은 조금 더 많이 소유하기를 원하고,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인식의 지평선을 확장하기를 원한다. 과연? 19세기를 사셨던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의 삶을 상상해 보자. 1870년 고종 즉위 7년째를 맞은 조선 (소작)농민은 1392년 조선 개국 당시의 농민과 달리 더 나은 내일과 혁신을 꿈꿀 수 있었을까?

기원전 27년 로마 제국의 농부가 40살까지 살아남았다면 그의 자식 절반 이상은 이미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병에 걸려 고통을 겪어도 보험은 물론 이들에게 의료 접근권은 제로였다. 1800년 전후의 런던과 베를린 주변에 거주했던 농민의 처지도 이와 비슷했다. 당대 농민과 그들의 자식이 누릴 수 있었던 의료와 교육 서비스는 말 그대로 전무했다. 연금보험? 이는 인간 상상력 밖에 존재했다. 이들에게 더 나은 내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13세기 로마 교회의 최고 이론적 지도자였다.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 영주의 자식이었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장 없는 경제 모델’을 고안했고 이를 신의 이름으로 축복했다. 신이 결정한 질서에 변화는 허용되지 않았고, 이러한 사고체계는 서구에서 종교의 강력한 지배력 덕분에 산업혁명 이전 시기까지 유지되었다.

17세기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에 이어 19세기 서구에 등장한 목적 합리성, 원인과 결과, 비용과 유익, 목적과 수단 등의 효율성 사고체계는 경제 및 사회의 변화와 진보의 속도를 가속화했다. 그리고 1970년대 컴퓨터와 산업 생산의 결합으로부터 시작한 디지털 혁명은 효율성 사고의 지평을 극단적으로 넓혔다.

1996년 경제학자 브라이언 아서(Brian Arthur)는 ‘수확 체증과 비즈니스의 신세계(Increasing Returns and the New World of Business)’라는 글을 통해 디지털 경제의 등장이 (신)고전학파의 경제이론을 전복한다고 주장했다. 농업뿐 아니라 산업 생산(industrial production)에도 적용되는 생산함수의 특징은,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드는 단위당 비용이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점차 증가한다는 점이다. 이를 수확 체감 또는 한계생산 감소(Diminishing returns)라 부른다. 노동자 규모가 크게 증가하면 이와 관련 관리 및 운영 비용이 함께 증가하면서 노동자 1인 증가에 따른 생산량 증가분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경제 혁명, 경제의 작동 원리를 바꾸다

한국에서 [복잡계 경제학]의 저자로 알려진 브라이언 아서(W.Brian Arthur)에 따르면 수확 체증의 생산함수를 보여주는 제품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초기 비용은 높으나 추가 개발 비용은 이에 비해 매우 낮다. 수확 체증을 가능케하는 생산함수의 특징을 넘어 네트워크 효과가 시장에 발생한다면 시장 파괴력은 더욱 증폭한다. 더 많은 이용자가 윈도우즈를 이용할 경우, 윈도우즈 이용자의 유익은 더욱 증가한다. 여기서 이용자뿐 아니라 윈도우즈 기반 소프트웨어 회사들까지 이득을 얻게 된다.

출처: statista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의 시장가치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앞선지 오래다. (출처: statista)

브라이언 아서의 [수확 체증과 비즈니스의 신세계]가 발행된 지 20년이 지나고 있다. 수확 체증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우버, 에어비앤비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성공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생산의 수확 체증과 소비의 네트워크 효과를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생산의 효율성을 크게 증가시켰다면, 인터넷은 경제의 기본 작동 원리를 바꾸고 있다. 1990년 성장한 마이크로소프트와 2010년 전후로 본격 성장한 구글, 애플, 페이스북 그리고 아마존은 2016년 5월 기준 그 시장가치가 약 2조411억 달러를 넘어서며 미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지배자로 성장하고 있다. 비교하자면 한국 경제의 2015년 GDP는 약 1조 3,778억 달러 수준이다. 다시 말해 미국 5대 디지털 기술 및 인터넷 기업의 기업가치가 한국의 국내총생산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전례 없는 경제적 성공에 기반해서 미국 경제는 디지털 팍스 아메리카나(Digital Pax Americana) 시대에 진입했다.

디지털 경제 혁명의 파괴력은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초대형 기업의 성장에 제한되지 않는다. 인터넷은 공급과 수요가 만나 시장을 형성하는데 발생하는 비용인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빠르게 제거하고 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숙소를 찾는 수요가 어렵지 않게 공급을 만날 수 있다. 우버 역시 이동 수요와 운전자 공급을 가장 낮은 거래비용으로 조직한다.

온라인 상거래가 전통 상거래 시장을 위협하고, 데이터와 인공지능은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주요 생산요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난 200여 년 산업혁명의 함께 진화한 산업 생산과 시장의 질서가 대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이 현상을 ‘4차 산업 혁명’이라 부르든 ‘디지털 경제 혁명’이라 일컫든, 인류 사회는 또다시 혁명적 변화의 시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목전에 두고 있다는 말은 디지털 혁명을 통한 경제 진보 및 사회 진보는 잠재적 가능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산업 혁명이 늘 동반하는 경제적 제약과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은행 브랜드의 종말 

모바일 금융의 대중화와 유사 금융 서비스의 확산은 시민에게 은행 브랜드의 분간을 어렵게 한다. 50세 미만의 대다수 소비자에게 은행 지점을 방문할 필요성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은행별 지점이 아닌 다양한 항공사 카운터가 모여 있는 공항처럼 동 주민센터와 함께 은행센터가 운영될 날도 오래 남지 않았다.

이에 따른 은행 직원의 대규모 축소는 피할 수 없다. 기업이 디지털화에 동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기업이 하기 때문이다. 한두 은행과 핀테크 스타트업이 모바일 서비스를 혁신하고 나머지 은행들이 뒤따를 때, 관련 시장에는 디지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이런 방식으로 특정 산업 분야뿐 아니라 전체 경제가 디지털 경제 혁명의 폭풍에 휩싸여 있다.

자동차 시장의 재편 

자동차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경제 및 사회에 미칠 영향은 자동차 산업의 규모와 영향력만큼 크다. 전기차를 중심으로 하는 자동차 시장 재편은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세계 최대 규모 자동차 시장은 2008년을 전후하여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했다. 신차 등록 기준 중국 자동차 시장의 규모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의 합보다 크다. 중국 정부는 2016년 전기자동차 관련 매우 공격적인 행정명령을 예고했다.

한국 자동차 기업이 2019년 중국에서 자동차를 팔고 싶다면, 그 기업의 2018년 중국 판매 자동차 중 8%가 플러그인 전기자동차여야만 한다. 이 기준은 2019년 10%, 2020년 12%로 증가한다. 2018년, 1년도 남지 않았다. 그만큼 중국 자동차 기업은 내연기관이 사라진 전기자동차 판매에 자신이 있다는 방증이다.

두 번째 자동차 시장에 대한 디지털 공격은 자율주행차다. 자율주행차의 기술 성숙도에 대한 의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그 기술 성숙도가 100%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자율주행차는 사고 없는 도로를 의미한다. 인간 운전은 사고의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안전성이 50% 수준에 도달할 쯤이면 인간 운전은 법으로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

인파가 넘치는 거리를 활보하는 담배 흡연자보다 수천 배 해로운 행위는 자율주행차가 달리는 도로의 인간 운전 자동차가 될 것이다. 운전의 줄거움을 빼앗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나이를 반문해야 한다. 종이신문이 매력이 없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자율주행차, 직업은 사라지고 환경은 되찾는다 

자율주행차는 제품이 아닌 서비스로서 소비자를 찾아오고 있다. 예를들어 한 달에 20만 원을 지불하면 앱으로 자동차를 2분 또는 3분 내로 호출할 수 있는 자율주행 개인 운송서비스의 등장이 멀지 않았다. 자동차세, 자동차 보험은 불필요하다. 그래서 자동차 보험회사와 관련 일자리의 미래는 없다. 현대기아차가 자율주행차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는 지금의 수와 비교한다면 매우 낮을 것이다.

영국 왕립자동차클럽(RAC) 연구재단의 2012년 연구에 따르면, 영국에 위치한 자동차는 일주일 168시간 중 평균 8시간 주행에 이용되고 나머지 162시간 동안 주차상태다. 비율로 따지면 95%의 자동차는 정지한 상태다. 만약 자율주행 운송 서비스가 보편성을 확보한다면 현재 인구 기준으로 자동차 수는 1/8 수준으로 줄어들어도 무방하다. 현대기아자동차가 20년 뒤에도 만약 살아남는다면, 이 기업은 지금처럼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은 아닐 것이다. 자동차 생산직 일자리의 미래 또한 없다.

자동차의 발달 방향은 결국, 자동차가 대화의 주체가 되는 데에 있다.

일자리 변동 문제를 제외한다면 자율주행 운송서비스 시대는 환영해야 마땅하다. 내가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소유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가 자동차 사고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주차공간으로 변해버린 보도와 골목길이 초록과 놀이터를 되찾기 원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운전의 즐거움 뿐 아니라 ‘나만의 공간’이라는 효능을 준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래서 운전자 1인만이 탑승한 스포츠 실용차(SUV) 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훌륭한 자동차 음향 효과는 차에서 내려 집안으로 움직이는 발걸음을 붙잡는다.

여기서 공룡이 몸집을 키우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멸했음을 환기시키고 싶지 않다. 자율주행차에 설치된 바디브랜드에 퇴근길 지친 몸을 던지는 신인류의 탄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들이 공룡의 백악기 시대를 끝낼 것이다.

한국 디지털 경제 전환의 제1과제: 수확 체증이 가능한 시장환경 조성

유럽연합 집행위는 2015년 5월 ‘유럽 디지털 단일시장 전략(A Digital Single Market Strategy for Europe)’을 발표했다. 유럽연합의 모태인 유럽경제공동체(EEC)의 ‘유럽 단일 시장’ 구상을 디지털 경제에도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이탈리아의 작은 소프트웨어 기업 또는 스타트업에 유럽 전체를 시장으로 제공하기 위함이다.

독일의 3위 전자상거래 서비스 기업(Zalando)이 자국 경계를 넘어 프랑스와 스페인 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의 자리를 차지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아마존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유럽 클라우드(Cloud for Europe)’ 프로젝트를 통해 인트라넷(intranet)이라는 인터넷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단절되고 고립된 낡은 시장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 시장에 편입시키고자 한다.

한국도 다른 나라나 세계로 굳이 눈을 돌리지 않아도 자국 시장만으로도 수확 체증(Increasing Returns)이 가능한 디지털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관공서 인트라넷을 혁파하고 (하이브리드) 클라우드로 전면 이행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영국처럼 스타트업과 이른바 SI 기업이 공공 마켓플레이스에 올린 소프트웨어가 하나의 고객이 아닌 동시에 수십, 수백의 고객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이때야 비로소 수확 체증이 가능하다. 하청과 재하청 구조로 영세함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 한국 대다수 SI 기업에 공무원 대상 ‘고객 접대 혁신’이 아닌 ‘소프트웨어 서비스’ 혁신에 집중할 수 있는 시장환경 조성이 가능하다. 공공 디지털 시장에서도 수확 체증이 가능해져야 소프트웨어 서비스 혁신에 집중한 스타트업이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성장할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 독점에 대한 재해석

프랑스 경제학자 장 티롤(Jean Tirole)은 디지털 경제의 작동 원리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에 따르면 전통 경제학 분석 틀을 플랫폼에 기초한 디지털 시장 분석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특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 등 시장 경쟁 정책에서 양면 시장(two-sided markets) 또는 다면 플랫폼(multi-sided platforms)의 특수성은 큰 도전이다. 이에 따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독일연방 카르텔청(Bundes Kartellamt)은 경쟁정책에 대한 조정 작업에 한창이며, OECD 또한 2010년대에 들어서 디지털 시장의 경쟁 정책에 대한 검토에 뛰어들었다.

한국 디지털 경제 전환의 제2과제: 디지털 교통혁명

증기 기관, 전기망, 자동차 등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기술 진보는 현대 도시의 모습을 정의해 왔다. 광산에서 석탄을 운반하는 기술로 개발된 증기 동력 엘리베이터는 1857년 뉴욕 브로드웨이 488번지 하우위트(Haughwout Building)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운반하는 전기 동력 엘리베이터로 재탄생한다. 하우위트 빌딩는 뉴욕이 초고층 건물(skyscraper) 도시로 발전하는 신호탄이었다.

1860년 미국 전역을 잇는 약 48,000km 길이의 철도망이 완성된다. 철도는 도시, 경제 그리고 사람을 연결하며 미국 경제와 미국 시장의 대형화를 끌어낸다.

20세기와 함께 미국 도시는 자동차와 자동차 도로로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도로는 자동차로 가득 찼고, 더욱 많은 자동차 도로가 건설되었고, 주차 공간이 폭증하였고, 이동의 자유와 함께 도시 거주 면적은 빠르게 커졌다.

자동차가 도로를 차지하기 이전, 도로는 공적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도로에서 보냈다. 친구와 이웃을 만나고, 저녁 찬거리를 사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으로 도로는 기능했다. 이후 도시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재설계를 시작했다. 도로는 자동차를 위한 공간으로 변했고, 보도는 점점 좁아졌고, 도로와 보도 위에서 일어났던 인간의 상호작용은 끊어졌다.

도로 위의 영세한 경제는 사라지고 도로는 경제와 경제를 연결하는 자동차에 그 주인 자리를 내주었다. 이에 기반하여 지구촌 경제는 놀라운 성장을 즐길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집세는 임금보다 빠르게 증가했고, 일터는 점점 더 멀어졌다. 도로 위를 이동하는 자동차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도시는 이 자동차가 뿜어내는 매연과 먼지로 숨통이 막혀 신음한다.

도시가 디지털 (경제) 혁명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2015년 뉴욕에 ‘보도’라는 뜻인 사이드워크 연구소(Sidewalk Labs)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거주 비용을 낮추고, 이동과 도시 에너지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독일 프라운 호퍼 연구소는 ‘내일의 도시(Morgenstadt)’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에서 미래 경제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지난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백악관이 직접 스마트 도시 포럼(Smart Cities Forum)을 운영했으며, 이 포럼에 2015년에만 1억6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스마트도시 포럼은 교통 체증을 줄이고, 범죄율을 낮추고, 도시 물류 흐름을 혁신하고, 도시에서 새로운 경제와 일자리를 찾고자 했다. 이외에도 미국의 각 도시와 지역 대학교를 연결하여 도시의 디지털 혁신을 공동으로 연구하고 실행하는 메트로랩(MetroLab)이 구성되었다. 여기에 현재 미국의 38개 도시와 51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 도시는 재개발, 공단 그리고 아파트 신화로 상징되는 도시 발전을 산업화의 속도만큼 빠르게 압축적으로 단기간에 체험했다. 산업화 시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도시에 대한 상상은 아직 소수의 목소리에 제한되어 있다. 

도시 공동체의 복원을 주장하는 생태주의자, 인천 송도와 같은 스마트 시티(smart city)가 미래 도시의 방향이라 외치는 사람, 난개발 시대를 끝내고자 시민을 도시의 공동 창작자로 보는 도시 행정가, 부동산 신화에 사로잡힌 투자자, 도시의 미세먼지를 단 하루도 피할 수 없는 야쿠르트 판매 노동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각각 서로 다른 도시를 욕망한다. 서로 다른 기대와 희망 사이의 대화는 보이지 않는다. 도시는 거대하고, 복잡하고 혼란의 공간이다.

산업 혁명의 모든 단계는 기술 혁신이 인간의 물리적 거주 공간, 특히 도시와 결합하며 태동했고 발전했다. 증기기관, 전기망, 자동차 등이 도시 생활을 크게 바꾸었다. 디지털 기술 혁명이 도시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다양한 상상과 대화가 필요한 때다. 도시를 새롭게 설계하는 일, 여기에 한국 경제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가 달려있다.

낙관의 위기와 가짜 낙관주의(fake optimism)

‘더 나은 세계가 가능하다’는 낙관이 사그라들고 있다. 서구는 2차대전 이후, 한국은 60년대 이후 수십 년간 성장과 번영을 경험했다. 그러나 떨어지는 소비 구매력과 축소되는 부에 대한 공포가 새로운 표준이다. 이것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귄위적이고 강력한 정치인이 지지를 얻은 이유 중 하나다.

출처: IPSOS
사회가 옳은 방향(right direction)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의 비중이 잘못된 반대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의 비중보다 매우 낮다. 특히 한국은 옳은 방향(13%)과 잘못된 방향(87%)의 격차가 매우 심하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미국 대통령 선거 운동 구호였던 “미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의 역사적 복원에 성공했다. 그러나 미국인 대다수에게 이 슬로건이 표현한 것처럼 오늘보다 명백하게 더 좋았던 과거는 없었다.

이 구호가 언급한 순간은, 미국인 대다수가 삶의 질과 소득의 꾸준한 개선을 즐겼었던 시기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살았던 미국인은 비록 조금씩이지만 매년 소득 증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를 경험했던 미국인들의 규모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 정도로 충분히 컸던 것이다. 트럼프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과거에 존재했던 낙관에 대한 경험을 복원했다.

인간은 낙관적인 삶을 살기는 원한다. 내일이 오늘보다 좋기를 바랄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과거에 대한 향수로서의 낙관이 아니라 진정한 미래에 관한 낙관은 어떻게 가능할까?

데이비드 도이치(David Deutsch)는 “무한의 시작(The Beginning of Infinity)”에서 낙관주의를 현재 시점의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식에 대한 ‘신뢰(trust)’로 정의하고 있다. 도이치에 따르면 “모든 악은 불충분한 지식에 의해 만들어 진다(“All evils are caused by insufficient knowledge.”).

거꾸로 말해 사회가 직면한 도전을 적절하게 해결할 능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신뢰가 사람들 사이에 없다면 낙관주의는 불가능하다. 또는 트럼프와 같은 정치인이 속삭이는 ‘과거’를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으로 오해할 때 미국의 비극은 시작한다. 세계가 직면한 도전과 씨름하는 가짜 지식(fake knowledge)이 가짜 낙관주의(fake optimism)를 낳았다.

낙관주의와 기본 소득

실리콘 밸리의 주인공들은 절망과 먼 거리를 두고 있다. 단일점, 자율주행 전기차, 화성 여행, 생명 연장 등 그들의 생애 내에 유토피아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그들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에게 실리콘 밸리의 혁신은 ‘오늘보다 더 나은 미래’로서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나와 내 가족이 어떻게 10년 후, 20년 후에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은 수익을 가질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다면, 화성 식민지와 영생의 삶 그리고 자율주행차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디지털 기술 기업 및 인터넷 기업의 혁신이 오늘도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편하게 만들고 있지만, 이러한 혁신은 우리에게 낙관주의를 선사하지 않는다. 이러한 혁신은 필요하다. 수익 체증의 법칙을 가능케 하는 디지털 혁명을 피할 수 없다. 디지털 기술 혁신보다 우선하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낙관주의는 가능하다. 그 무엇은 바로 조건 없는 기본 소득이다. 소득과 생활에 대한 공포와 근심을 몰아 낼 수 있어야 비로소 낙관주의가 우리의 마음에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낙관주의는 인류를 진보케 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출처: © swissinfo.ch
2013년 10월4일 모든 국민에게 월 2,500 스위스프랑(우리 돈 약 300만 원)을 지급하는 걸 골자로 한 기본소득법 국민발의안이 12만여 명의 시민이 서명해 연방의회에 부쳐졌다. 이 날 법안을 주도한 시민단체 회원들은 연방의회 앞마당에 스위스 국민 800만 명을 상징하는 5라펜 동전 800만개를 뿌려놓고, 발의안 통과를 맘껏 축하했다. 하지만 기본소득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2016년 6월 5일 찬성 23%, 반대 76.9%로 부결됐다.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1944년 자본주의 태동을 연구한 저서 ‘대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에서, “자본주의는 예고없이 찾아왔다. 기계 산업이 이렇게 발전할지 당대의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자본주의는 완전한 놀라움으로 왔다”라고 썼다. 옥스퍼드의 프레이(Frey)와 오스본(Osborne) 그리고 다보스 포럼은 미래 일자리가 대규모로 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 예측이 얼마나 정확한지 그리고 이 전망이 한국 사회에도 적용 가능한지를 판단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디지털 (경제) 혁명을 통해 이 사회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일자리 변동 등 디지털 혁명의 부정 효과를 어떻게 축소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기술 진보와 사회 진보를 동시에 상상하고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 문화를 만드는 데 있다. 혁신을 추구하는 사회 문화는 낙관주의를 먹고 자란다.

한국 사회는 2012년 좋았던 과거에 대한 향수라는 가짜 낙관주의를 경험했다. 2017년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진 집단이 출현하기를, 소득이 향상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이 정권을 창출할 수 있기를, 하여 비로소 ‘내일은 오늘보다 좋을 거야’라는 낙관에 사람들의 가슴이 뛰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슬로우뉴스 좋으셨나요?

이미지를 클릭 하시면 후원페이지가 열립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