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의 위협 vs. 욕조의 위협
테러의 위협 vs. 욕조의 위협
아내는 9·11 때 뉴욕에서 학교를 다녔다.
사건 후 일주일 동안 메케한 냄새가 도시에 가득했다고 아내는 말했다. 분진이 하늘을 자욱하게 뒤덮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슬픔에 잠겼고, 지인의 생사를 이야기했다. 뉴스는 추가 테러의 우려를 이야기했고, 두려움, 슬픔, 추모의 행렬, 그리고 어수선함 가운데서 21세기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아내는 마음이 번잡한 날이면 테러 꿈을 꾼다. 15년이 넘은 지난 지금에도 말이다.
IS와 ‘외로운 늑대’의 등장
2010년대 IS의 등장과 IS 브랜드 테러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외로운 늑대’의 등장은 고도의 훈련된 테러리스트와 조직이 없이도 테러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6년 7월에 벌어진 니스 테러 사건을 보고서 나는 이제 테러 방지가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나쁜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트럭을 운전하면서 사람들이 밀집된 장소를 질주하는 것을 어떻게 사전에 방지한단 말인가.
정치 선전 수단으로 전락한 ‘부르키니’
부르키니가 안보에 위협이 될까?
말도 안 된다. 수영복에 무기나 폭탄을 감춘다고? 하려고 마음먹으면 못할 바는 없겠지만, 그 노력이면 어떤 옷도 테러의 수단이 되지 않을까. 프랑스인은 부르키니를 금지하는 비합리적인 조치를 과반이 넘게 지지하고 있다. 비상사태가 18개월 이상 지속되는 프랑스의 안보 위협상황과 연관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심리전: 테러의 위협 vs. ‘욕조’의 위협
그러나 정말로 테러가 일반인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가.
오바마는 자주 자신의 스태프들에게 미국 내에서 테러리즘으로 인한 희생자가 총기 사고나 자동차사고 심지어는 욕조에서 빠져 죽는 사람들보다 적다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한다.(*)
욕조에서 죽을 확률은 백만분의 일이고, 미국에서 이슬람 테러로 죽을 확률은 오백만분의 일이다. (**)
*애틀랜틱, “오바마 독트린”, 2016년 4월호, (The Atlantic, “The Obama Doctrine”, 2016. 4)
**2016년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 사건과 2015년 샌 버나디노 사건을 기준으로 할 때 그렇다.
테러전은 이제 서구사회에게는 심리전이 되었다. 서구사회는 오랜 시간 열린 사회와 자유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열린 자세는 그만큼 자신을 위험에 노출하는 행동이다. 자신감과 상호신뢰가 없이 가능하지 않다.
정치인들은 기존의 서구의 가치관이라는 전통을 내세우면서 이를 정쟁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언론도 이에 동참하여 이슈를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나도 올랜도 참사 이후 얼마간 힘들어서 뉴스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앞에도 언급했듯이 테러의 위협은 ‘욕조의 위협’ 보다 작은 수준이다.
공감한다. 하지만 테러의 위협을 원천봉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지난 15년 동안 전 세계가 노력했으나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을 뿐이다. 이제 테러의 위협을 과장하고, 이를 정치 선동의 수단으로 삼는 정치인에게 휘둘리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테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참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