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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수영복 전쟁 : 부르키니와 라이시테

조회수 2016. 9. 3. 23: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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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복 전쟁: 부르키니와 라이시테 그리고 프랑스 공화주의

미국은 다문화 국가다. 처음 미국 왔을 때 미국이 다문화 국가임을 시각적으로 느낀 적이 있다. 수업시간에 히잡과 터번을 쓴 아랍계를 봤을 때이다. 미국에서 히잡과 터번을 쓴 아랍계, 키파(Kippah)를 쓴 유대계, 육식을 금하는 인도계들과 어울려 살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이 미국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의 무슬림에 대한 시각이 호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복장이 주변인에게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복장을 금지하지는 않는다. 다만, 실제로 히잡이나 터번을 쓴 사람은 경계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자유에 대한 믿음이 강한지라,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을 지키면 다른 사람에게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고하다. 내가 느끼기에 소위 용광로(melting pot)라고 불리는 미국식 다문화주의는 다른 문화를 용인하며 (또는 무관심하거나 참아내며) 지내는 역동적인 잡탕 찌개 상태이다.

프랑스의 수영복 전쟁 

그런 미국적 시각에서 보면 프랑스의 전신 수영복 부르키니(burkini) 금지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요즘 프랑스에서 이슈로 떠오른 부르키니는 이슬람 스타일 수영복으로 전신을 가리는 형태의 수영복이다. 최근 프랑스 15개 도시가 이를 금지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프랑스 경찰이 한 여성의 전신 수영복을 강제로 벗기는 사진이 온라인에 공유되며 논란이 더욱 커졌다.


Giorgio Montersino, “burkini”, CC BY SA

왜 프랑스는 여성의 복장을 금지하는 이해하기 힘든 조치를 취하는 것일까. 더 이상한 건 프랑스인의 64%가 부르키니 금지를 찬성한다는 것이다.

우선 프랑스와 미국은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다른 문화와 종교에 대해 그다지 간섭하지 않는 미국과 달리, 프랑스는 세속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이다. 프랑스는 1905년 가톨릭과의 갈등 이후 세속주의 원칙(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분리)을 분명히 했다. 이를 프랑스어로 ‘라이시테’(laïcité)라고 한다. 

원칙적으로 종교적 행위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금지된다. 이 원칙에 근거해서 프랑스에서는 유대인의 키파와 아랍계의 히잡 착용이 공립학교에서 금지 되었다(2004년). 2011년에는 공공장소에서 니캅(눈만 남기고 모든 부위를 가리는 아랍 여성 의상) 착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세속주의뿐만 아니다. 프랑스가 중요하게 여기는 또 다른 가치는 ‘여성의 평등’이다. 프랑스인의 관점에서 여성의 몸을 가리는 아랍계 의상은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일이다. 부르카(burka), 니캅(niqab), 히잡(hijab), 차도르(chador), 부르키니(burkini) 등을 금지하는 일을 남성중심주의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것의 연장선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좌: 부르카(온몸을 가림. 지역: 아프가니스칸, 이집트)
우: 니캅(눈을 제외한 얼굴을 가림. 지역: 파키스탄, 모로코)













좌: 히잡(머리, 귀, 목, 어깨를 가림. 지역: 시리아 등)
우: 차도르(얼굴을 제외한 온몸을 가림. 지역: 특히 이란)

이미지 출처:

■부르카  Justin Hall, Peek a boo, CC BY SA
■니캅  rana ossama, CC BY SA
■히잡  Daniel Zanini H, Hijab, CC BY
■차도르  A.Davey, CC BY

프랑스에서는 2004년에 헤드 스카프(즉, 히잡과 차도르)가 금지되었고, 2011년에 안면 마스크(니캅과 부르카)가 금지되었다.

(위키백과  ‘Laicite’)

프랑스인에게 ‘여성의 평등’이라는 가치는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우선한다. 2014년 7월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에 올라온 ‘SAS v. France’ 판결은 이러한 프랑스의 논리에 손을 들었다. 판결은 공공장소에서 니캅과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프랑스법을 인정해주었다.


최근 부르키니 논란은 또한 프랑스의 안보위협과도 연결돼 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프랑스 정치인들은 전신 수영복이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말한다. 아랍 복장을 공공장소에서 착용하는 행위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임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이를 순수하게 표현의 자유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를 프랑스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정치적인 행동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연이은 테러 사건으로 프랑스에는 극도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일부 이슬람 전문가들은 부르키니가 이슬람 극단주의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정통 이슬람에서는 여자들이 공공장소에서 수영하는 것도 금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이러한 주장은 공허하게 들린다. 며칠 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사르코지도 학교에서 무슬림 복장을 금지하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프랑스의 정체성 논란은 내년 프랑스 대선에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의상에 대한 논란은 그중 하나다.

부르키니는 금지, 수녀복은 허용? 

‘프랑스는 왜 부르키니는 금지하면서 수녀복은 허용하는가?’  

일리 있는 비판이다. 프랑스의 일견 ‘모순’된 정책을 비판하는 트윗이 많은 호응을 받기도 한다.

다만, 현대 프랑스의 라이시테 원칙은 ‘성직자’에 한해서는 예외가 적용된다. 이슬람에만 차별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 프랑스에서는 (대형) 십자가를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것도 금지되고, 동일한 원칙으로 유대교의 상징 다윗의 별을 전시하는 것도 금지된다.(*) 최근에는 관청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구유 장식도 불법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이미 지어진 성당은 문화유산으로 간주하여 예외로 본다.


이슬람 상징뿐만 아니라 십자가와 다윗의 별도 금지된다.


2015년 많이 이야기되었던 샤를리 엡도도 어떤 면에서는 라이시테 정신에 기초한 단체로 볼 수 있다. 이 잡지는 이슬람은 물론이고, 가톨릭과 모든 종교단체를 조롱하고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반은 이슬람 혐오가 아닌 무신론 (또는 반종교)에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프랑스의 반종교정책은 유럽에서도 강경한 편이라 (다른 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큰) 한국적인 정서에서도 심하다 싶을 정도이다. 2011년 사르코지 정권에서 라이시테는 더욱 강화되어 1946년부터 65년간 방송된 기독교 라디오 설교도 금지된 바 있다.

프랑스 공화주의, 그 전통과 한계 

혹시 모를 오해를 피하기 위해 내 입장부터 밝힌다. 사실 나는 프랑스의 세속주의와 공화주의적 전통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미국적인 개인주의에 좀 더 공감하는 편이다. 프랑스와 미국은 다문화를 수용하는 데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나는 공화주의 전통을 근간으로 하는 프랑스식 모델이 지금에 와서는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프랑스가 말하는 관용(톨레랑스)은 공화주의 원칙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 공화주의 원칙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유, 평등, 박애, 세속주의, 애국주의가 이 공화주의의 근간이다. 


프랑스 헌법 1조는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프랑스는 분할될 수 없고, 종교에 의해 통치되지 않으며, 민주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La France est une Republique indivisible, laique, democratique et sociale.”

헌법 첫 문장부터 프랑스는 세속주의 국가임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Eugène Delacroix, La liberté guidant le peuple(1830)

프랑스에서 종교와의 ‘불화’는 프랑스 혁명(1789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혁명 정부는 당시 교회 재산을 몰수한다. 당연히 로마 교황청은 격렬하게 반대한다. 이에 프랑스는 두 차례 로마를 침공한다(1798년, 1809년). 혁명 정부는 가톨릭을 구체제(앙시앵레짐)의 한 축으로 여겼고, 프랑스 헌법에 충성 서약을 하지 않은 성직자들을 범법자로 몰았다.

이후 나폴레옹은 교황청과 화해하는데, 가톨릭을 프랑스의 주요 종교로 인정하는 대신 교회를 프랑스 정부의 관리 아래 두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정교(政敎) 협약(Concordat)이다(1801년).

1801년 나폴레옹의 ‘정교협약’을 비유한 그림
(Allegory of the Concordat of 1801, Pierre Joseph Célestin François)

이후에도 프랑스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분명히 했는데, 현대적 의미에서 라이시테는 1905년 제3공화국의 정교분리 법에 근거한다. 그리고 프랑스인은 모든 공적인 장소를 ‘종교 청정 지대’로 만들고자 한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공공장소에서의 종교 행위는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학교에서 종교 복장이나 종교 행위를 금하는 법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가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종교적 상징을 금지하는 법은 1937년 제정되었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이 법들이 제정될 그 당시만 해도 프랑스는 비종교적인 국가이었기에 별다른 논란이 되지 않기도 했다.

부르키니 이슈는 프랑스 정체성 문제

1960년대와 1970년대 들어 프랑스의 인구 구성은 변하기 시작한다. 북아프리카 옛 프랑스 식민지국가들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대다수 무슬림들이었다. 다만 이들 이민 1세대들은 자발적으로 프랑스에 넘어온 이들이었기에 프랑스의 세속주의에 저항이 크지 않았다.


모슬렘 2세와 3세들이 오히려 종교적으로 근본주의화 된다. ‘방리유'(banlieues; 파리 등 대도시 외곽지역)라고 불리는 변두리에 소외된 삶을 사는 이들에게 히잡과 니캅, 부르카 등 이슬람 전통 복장 착용은 일종의 분노 표시이며, 무슬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miradontsoa, “Banlieue”, CC BY

프랑스의 다문화 정책은 여러모로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프랑스의 모슬렘 인구는 10%가 조금 안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속주의를 전면으로 내세운 프랑스의 정신은 이들을 공화주의를 거부한 2등 시민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다시 세속주의와 정교분리 원칙 이야기로 돌아오자. 아무리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사상을 고려하더라도, 개인의 자유와 복장 선택을 억압하는 프랑스의 정책은 여전히 비판받을 만하다. 내가 보기에 프랑스의 라이시테, 즉 세속주의 정신은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종교로부터의 자유’다. 

이상이 내가 부르키니 이슈를 프랑스의 정체성 문제로 보는 이유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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