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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일베상에 관하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생회의 입장

조회수 2016. 6. 3. 17: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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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일베상에 관하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생회의 입장

지난 월요일(2016년 5월 30일) 저녁, 일베 핸드 사인을 형상화한 작품이 설치된 이후 미술대학 학생회에서는 총학생회 및 각 단과대학 학생회와 함께 대응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중앙운영위원회에 나타나 있는 성명서만으로는 미술대학 학생회의 생각을 오롯이 반영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독립적인 논평을 작성하였으며 작성 도중 파손 사건이 발생하여 그에 대한 내용을 덧붙입니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화면 캡처(검색어: “홍대 앞 일베 상”)

혐오와 차별의 상징인 일베 형상화 작품에 대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생회의 논평



1. 작품이 파괴된 행위를 작가가 의도한 범주 안으로 포함할 수 있는가, 작가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는 작품 의도를 밝히길 일베를 옹호하거나 조롱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일베의 표상이 전시되었을 때 나타나는 사람 및 공공의 반응’이라고 표현한 바가 있습니다. 작품이 파괴되기 이전 시점에 미술대학 학생회에서는 작가에게 다음과 같은 문의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생회의 문의:  

 

작가님은 작품의 의도가 일베를 옹호하거나 조롱하고자 함이 아니라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의도이며, 작품에 대한 판단 역시 각자의 몫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작품이 전시된 시점 이후에 이 작업을 규정지어 나가는 것은 공공 및 참가자들의 몫이 된다고 봅니다. 그럼, 작가가 아닌 사람이 ‘이 작품을 해체하는 행위로 작품을 완성해나간다’는 의도를 밝히며 작품을 해체한다면 이는 작품의 의도 속에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언론을 통해 드러난 내용과 다를 바 없이 ‘작품을 훼손하는 행위는 법적 책임이 뒤따른다’는 답변이 중심을 차지하였고,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작품은 5월 31일 밤부터 6월 1일 새벽에 걸쳐 불특정 다수에 의해서 파손되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작품이 파손된 사태를 두고서, ‘이것 또한 작품을 대하는 조형적 언어라고 생각될 수 있는지, 이 행위가 작품 의도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몫일 수도 있지만, 작가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2. 작가의 책임감 있는 태도를 요청합니다.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작품의 의도’가 될 수는 있으나 작품이 현실에서 발현되는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나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 역시도 작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냐와 관계없이 일베의 표상이 형상화된 작품을 두고서 많은 학생이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일베 사용자들이 저지른 행위들에 직접 불편함을 느낀 경험이 있기에 불편함을 느낀 학생도 있고, 홍익대학교 학생인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일베 사용자임을 인증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에 불편함을 느낀 학생도 있고, 홍익대학교 정문에 일베의 표상이 전시됨으로 인해 홍익대학교 학생들의 정체성이 왜곡된다고 생각되어 불편함을 느낀 학생들도 있으며, 주변으로부터 ‘너도 일베니?’와 같은 불쾌한 질문을 받았기에 불편함을 느낀 학생도 있습니다. 

‘이것이 의도였다’라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3. 이 작품은 공공성을 띤 작품이 아니며 미결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모 일간지와의 작가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 작품은 공공성이 생명인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공공성을 띈 작품이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 작품은 공공과 관계 맺음을 통해서 의미가 규정되는 정체성을 지녔겠지만, 공공성을 띈 작품이 되려면 이 작품이 공공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까지 작가가 깊이 관여하여 기획되고 고민되었어야 합니다. 

작가가 의도한 바가 어떻든 이 작품은 일베의 핸드 사인을 형상화함으로써 일베의 표상이 공공의 공간에 상징되고 기념된 것이며, 그로 인해 위에서 언급한 학생들의 불편함과 함께 일베에서 유통되어왔던 혐오와 차별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학생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작가는 이런 상황들을 예견했다고 하는데, 이는 규모의 차이일 뿐 이런 상징물을 정문 앞에 뒀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일이기에, 작가의 역할은 이런 판을 형성하는 데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공공과 작품과의 관계에 개입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자체가 의도라는 것 외에 작품이 공공과 맺는 깊은 성찰이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 상황들을 예견했다’라는 표현으로는 완결성이 다소 부족하다고 보입니다.
출처: 일베의 아이콘, 베충이 (출처 미상, 재인용 출처: 대학내일)
4. 작품으로서의 존중과 도덕적 책임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미술대학 학생회는 이 작품에 대해 작품으로서의 최소의 존중을 하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격이 존재하듯이 작품도 ‘격’이 존재합니다. 아무리 못난 존재의 작품이거나 도덕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작품이어도 생명력이 있는 순간만큼은 작품으로서의 최소한의 ‘격’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5월 31일 밤부터 6월 1일 새벽에 걸쳐 불특정 다수에 의해 작품이 파손되었습니다. 미술대학 학생회는 본 작품은 문제 있는 것으로 생각하나, 조형적 언어로 구성되었기에 작품이며, 작품으로서 최소한의 ‘격’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공공이 판단하기에 철거(해체)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더라도, 그리고 그 행위가 윤리적으로 올바른 판단이다 하더라도, 철거(해체)되는 것이 작품이 담고 있는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작품의 ‘격’을 해체한 것입니다. 

파손하는 행위 역시 작업의 과정으로서 조형적 언어로 해석될 수도 있으나, 작품에 대한 가치판단과 별개로, 작품이 파손되는 것이 작가가 의도하는 범주에 포함된다고 인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파손은 ‘격’을 손상하는 것입니다. 작품 파손 사건이 발생한 것에 미술대학 학생회는 유감을 표합니다. 

작품으로서의 존중과 도덕적 책임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5. 일베의 표상에 맞서는 것을 넘어서 실재하는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이 작품이 전시되자마자 많은 학생이 즉각적으로 반응했고, 이를 통해 일베에 가지는 학생사회의 커다란 비판의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혐오의 상징에 맞서는 혐오로, 작품은 불특정 다수에게 파손되었습니다. 그러나 파손된 것은 일베를 표상하는 상징물이지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차별과 혐오가 아닙니다.

소수자 및 약자에 대한 차별 및 혐오는 우리 사회에서 실재하는 현상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상징과 표상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드러난 혹은 가려진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계기로 삼아갑시다. 

표상에 맞서는 것을 넘어서 실재하는 것에 맞서 나갑시다.
슬로우뉴스는 ‘일베’ 상징 조형물 설치와 파손에 관한 다양한 의견과 기고를 환영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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