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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론으로 풀어보는 생명과학계의 구조적 문제

조회수 2016. 3. 8.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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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생명과학계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라를 불문하고 요즘 생명과학계에는 불만이 많은 사람이 많다. 아래와 같은 이야기는 어디서나 들려온다.


사례 1.



나는 교수가 돼서 나의 랩을 차리고 독립 연구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좋은 대학과 랩에서 학위연구를 했고, 또 박사학위 기간만큼 포닥으로 새로운 연구를 해서 대개의 사람이 부러워하는 좋은 연구결과를 얻어 논문을 냈다. 그래서 교수 자리 공고가 날 때마다 지원을 했지만 불러주는 곳은 별로 없더라. 간혹 불러주는 곳이 있어도 결국 나의 직장은 되지 못했다.



왜 그런가 알고 보니 나와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스펙을 가진 지원자가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십수 년 전에 교수가 된 분들은 지금 나보다 훨씬 더 못한 실적으로도 교수가 됐는데 왜 우리는 이 모양 이 꼴인가. 노오오오력이 아직도 부족한 건가.



사례 2.



온갖 고생 끝에 교수가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연구비가 필요하고 연구과제 제안서를 쓰는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한다. 그러나 이렇게 정성 들여 쓴 나의 회심의 제안서는 번번이 퇴짜맞고 연구비는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 좀 있으면 학교에서 정착연구비로 준 돈도 떨어질 텐데 그때까지 연구비를 따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그래도 나는 좀 나은 편이다. 한국에 자리를 잡은 친구 누구누구는 정착 연구비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그냥 자기 빚으로 실험실을 세팅했다고 하니.



사례 3.



연구비도 획득한 지 몇 년이 지났다. 그런데 결과가 없다! 포닥을 뽑았는데 이 친구는 10시 출근, 5시 퇴근만 반복하고 출근한 시간에도 인터넷이나 하고 있다. 내가 시킨 것 이상의 일은 하지 않는다. 참다못해 ‘당신도 아카데믹 잡을 잡으려면 결과를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꼭 내가 하라고 한 프로젝트만 할 게 아니라 당신이 알아서 토픽을 찾아야 할 것 아니냐’고도 했다.



그런데 자기는 학교에서 교수를 할 생각이 없단다. 아니 학교에서 자리를 안 찾으려면 왜 포닥을 하는지 모르겠다. 결과가 없으면 이 연구비 끝나고 돈이 끊길 테고, 그럼 어쩌나.



사례 4.



박사과정을 하면서 나는 내가 교수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교수가 돼서 그냥저냥한 논문을 쓰는 것보다 좀 더 실용적인 일을 해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 그래서 나는 박사과정을 끝내고는 바로 취업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취직이 되지 않는다. 산업체 경력이 없어서라고 한다. 산업체 경력자도 많은데 포닥 경력도 없는 초짜 박사를 산업계에서 뽑을 일은 없다고 한다.



아니 경력자만 뽑으면 나 같은 초짜는 어디서 경력을 쌓으라는 말인가. 결국, 포닥이나 해야겠다. 포닥 끝난 다음에는? 아몰라.



사례 5.



나는 대학원생이다. 지도교수가 있건만 난 지도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교수님은 맨날 원하는 데이터가 안 나온다고 면박만 주시고, 실험이 잘 안 될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트러블슈팅은 못 해주신다.



오늘도 생판 해보지도 않은 무슨 무슨 실험을 하라고 하시는데, 그거 해본 적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다. 교수님은 연구실에 처박혀서 컴퓨터 앞에서 워드만 치고 계시고 선배나 포닥들도 그런 거 시간 내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 아마 그 사람들도 모르나 보다.



그래서 지구정복을 한다 어쩐다 하는 어떤 정체불명의 블로그에 물어보고 있다. 근데 이 사람 믿을만한 사람일까?



사례 6.



나는 바이오텍에서 R&D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이번에 신규 박사급 연구원을 채용하고자 한다. 그런데 공고를 이전에도 몇 번 내봤지만 참 뽑을 만한 사람이 없다. 우리가 바로 해야 하는 분야를 잘 아는 사람도 없으므로 뽑아도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R&D를 하고 사업을 진행하나.



그리고 박사 학위를 받고 포닥을 몇 년씩 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결국 자기가 하던 분야에서 실험하고 논문 쓰는 것만 하고 분야가 조금만 달라져도 ‘이거 잘 모르겠는데염?’ 이런다. ‘바이오 박사 산업체 취직 학원’이라도 차리든지 해야겠다.


이런 갈등이 생기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물론 이상적인 사회가 아닌 한 어떤 환경에서든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 최근에 지적되는 이런 문제의 원인으로 이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분야에 너무 사람이 많이 공급된다!”
미국 세포생물학회(American Societ of Cell Biology)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에서 생명과학 관련 박사과정 중에서 결국 테뉴어 트랙의 정규직 교수에 임용되는 사람은 박사 입학자 중 8% 미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대개 연구중심 대학의 박사과정의 교육목표는 ‘독립 연구자’ 양성에 있다. 중간에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 연구비 제안서 쓰는 것을 모방한 학위연구 프로포절을 쓰는 과정도 있고…
여기서 차이가 발생하는데, 결국 현행 미국 생명과학 관련 대학원은 학계의 독립 연구자 배출을 위한 교육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성공하는 것은 10% 미만. 한마디로 대학 진학률이 10% 미만인 인문계 고등학교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계의 독립 연구자로 진출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포닥 무한 반복과 같은 상황에 빠져 있으며, 산업계에 진출하는 사람들도 여기에 맞는 충분한 훈련을 쌓고 있지 못하다. 또한, 용케 학계에 진출한 사람들도 연구자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에 시달려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심각한 문제에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최근 미국 학계에서 원로급으로 간주하는 학자들 간에서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나름대로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셜리 틸만(Shirley Tilghman)은 프린스턴대학의 분자생물학자로 2001년부터 2013년까지 프린스턴대의 총장을 지낸 행정가이기도 하다. 이 사람은 2014년에 [Molecular Biology of the Cell]의 저자인 브루스 알버트, 노벨상 수상자인 해롤드 바무스 등과 함께 미국의 의생명과학 연구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이야기하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한 의견을 PNAS에 출판한 바 있다.


아래의 동영상은 이러한 주장을 동영상으로 설명한 것이다.
‘자, 동영상을 알아서 보시고 각자 생각해 보세요. 이만 안녕….’ 할 줄 알았지? 그런데, 여러분 귀찮잖습니까. 그래서 동영상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아래에 제시하니 쓱 스크롤 해서 읽으세요.

‘저출산에 의한 인구절벽이 온다’, ‘애 많이 낳는 게 애국이다’ 하는 요새 풍조로 볼 때 지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와 산술적으로 증가하는 자원 간의 차이로 언젠가는 인구위기가 온다, ‘우리 둘… 아니 하나만 낳고 잘 살아요!’ 하던 시기가 있었다. [인구론]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이라는 책을 써서 그때의 사상적 배경을 제공한 사람이 토마스 맬서스다.
물론 국가 전체 인구로 볼 때 산업화한 대개의 국가에서 저런 식의 인구증가가 아니라 출산율 정체가 나타나고, 오히려 인구감소로 이어지는 상황을 볼 때 맬서스의 인구론을 사회 전체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특정 업계로 한정하자면, 인력의 지나친 공급이 여러 가지 문제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맬서스의 주장을 따르면, 현재 의·생명과학계가 가지는 문제의 하나는 일단 박사학위 소유자가 너무 증가한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 배출된 범생명과학 계열의 박사학위의 숫자를 확인해 보았는데, 농업 및 자연과학 계열에서 배출된 박사학위 소유자는 제자리걸음인데 비하여, 소위 ‘의생명과학’, 즉 의대 소속으로 배출되는 학과의 박사 숫자는 저렇게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고, 이는 전체 생명과학 관련 박사학위 소유자의 증가와 일치한다는 데이터이다.
반면 미국의 생명과학 관련 연구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NIH의 연구비는 늘지 않았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오. NIH 연구비(회색 그래프)는 2000년대 초기 급격히 증가한 게 아니오!’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제 구매가치로 환산한 연구비(파란색 그래프)로는 2015년의 연구비는 2001년에 비해 거의 오르지 않고 요즘은 뒷걸음치는 추세다.
그런데 박사학위 배출되는 사람의 숫자는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포닥으로 미국 건너오는 사람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결론은 뭐….
이런 한정된 리소스에 비해 과잉 인력이 배출되는 것은 캐리어 단계의 모든 과학자에게 영향을 주지만,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아마 포닥 과정을 마치고 소위 ‘정규직’을 찾으려는 과학자, 그리고 정규직을 바로 확보하고 연구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연구비를 확보하려고 하는 ‘신참 교수’들일 것이다.
즉 한정된 리소스 확보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직장을 찾는 연구자들은 끊임없는 ‘스펙 올리기’ 경쟁을 해야 하며, 그 경쟁을 뚫고 학계에 들어선 사람들 역시 생존하기 위한 투쟁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연구가 과연 얼마나 제대로 되겠나… 하는 것이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그래서 지금 틸만이 주장하는 것은 지금의 전형적인 랩 구조는 이제 더 지탱해 나가기 힘들다는 거다. 미국의 웬만한 이쪽 분야 랩을 보면 정규직인 PI (교수)가 한 명 있고, 아마 어떤 경우에는 교수를 서포트하는 테크니션/랩 매니저/스탭 사이언티스트 급의 인력이 한 명 있다.
그 외의 나머지는 대학원생 – 포닥 등의 ‘트레이니’(trainees)로 구성되어 있다. 회사로 본다면 부장과 차장만 정규직이고 그 외의 모든 실무자는 비정규직, 그것도 ‘견습생/훈련생’의 명목으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도 못하고 고용도 한정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구조가 더 문제인 것은 PI 한 명이 여러 명의 박사과정/포닥을 배출하게 되므로, 이렇게 배출된 박사과정/포닥은 나중에 한정된 PI 자리를 노리는 ‘취업 예비군’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살림이 어려운 집에서 애를 순풍순풍 낳는 상황과 비슷하달까. 어차피 PI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모든 사람이 PI 이외에는 별로 갈 데가 없는 관계로 무한정 포닥을 하는 그런 상황이 현재의 의생명 분야의 실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제안하는 것은 랩 구조의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박사과정 – 포닥 등의 ‘트레이니’로 주로 구성된 랩의 인력 구성에서 이들의 비중을 축소하고, 대신 숙련된 ‘스탭 사이언티스트’ 혹은 ‘테크니션’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것.
일단 박사과정에 들어온 학생들에게 현재의 실상을 (일찍부터) 정확히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독립 연구자 양성을 주목적으로 하는 기존 학계의 교육 과정에서 탈피하여 다른 분야(산업계, 과학정책 등등)로의 진출을 도모하기 위한 교육과정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포닥의 경우 지금과 같이 ‘박사 졸업은 했는데 딱히 할 것이 없으니까 디폴트로 다 가는 분위기’보다는 ‘학계에서 일할 사람’만 선택해서 한정적으로 가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포닥의 급료를 현재의 교육수준을 반영하는 정도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
  • 첫째, 포닥의 급료를 인상함으로써 저임금에 시달리는 포닥의 생활 수준을 향상할 수 있으며
  • 둘째, 전체적인 포닥의 숫자를 감소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 (즉 2명 고용할 것을 1명 고용해서 몰아주기)
그리고 랩에서 포닥/대학원생으로 규정되는 ‘트레이니’보다는 테크니션, 혹은 포닥을 마치고 하는 스탭 사이언티스트 등 ‘정규직’에 해당하는 인력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는 거다. 즉 한 랩에 있는 경력이 몇 년 안 되는 대학원생/포닥보다는 수십 년간 PI와 같이 근무하면서 익숙해진 전문가인 테크니션이나 스탭 사이언티스트를 활용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포닥의 숫자가 줄어든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학계에서 PI를 할 수는 없으며, 또 모든 사람이 PI로서의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이쪽 분야의 PI는 일종의 스타트업의 창업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가 더 많은데, 모든 사람이 창업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모든 연구자가 관리자-창업자로서의 역할이 많은 PI를 할 필요는 없다. 대신 이런 사람들은 테크니션/스탭 사이언티스트로 직접 연구에 참여하면서 좀 더 안정적인 고용을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
즉, 이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현재보다는 약간 규모가 줄고 랩의 개수가 주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리고 포닥의 경우 이전보다 훨씬 적은 숫자이지만 좀 더 나은 대우를 받게 되며, 상당수의 랩 일은 ‘비정규직 훈련생’인 대학원생이나 포닥보다는 ‘정규직’에 가까운 스탭 사이언티스트가 수행하는 것이 유리하며, 또 지속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여러 랩에서 공통으로 필요한 기술들을 제공하는 코어 패실리티(core facillity)를 지금보다 확충하여 대학원생이나 포닥들이 특정한 연구를 할 때 확실한 기술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것은 한 가지 제안일 뿐이고, 이것만으로 미국(혹은 세계) 생명과학계의 공급 인력 과잉 현상/과다 경쟁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학계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현재 상황을 연구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고 먼저 적극적으로 발언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BK21사업 등과 같은 대학원생 지원사업을 시작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수많은 ‘고급인력’들을 배출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력들의 상당수는 기약 없는 비정규직 생활로 전 세계를 떠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국 학계의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언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여 목소리를 높여 본 적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학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랬다. 버젓한 직장을 잡으려면 당신이 노오오오력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 이상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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