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흘리개들만 사는 나라: 헬멧과 워닝사이트 그리고 세이프서치

조회수 2015. 12. 21. 11: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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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뉴스
내가 살던 미국 위스콘신 주는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헬멧을 쓸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규정이 전혀 없지는 않다. 17세 이하 청소년이 오토바이를 타려면 헬멧을 써야 한다. 어른에게는 그 같은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 나는 어른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헬멧을 썼다.

오토바이 헬멧 법제화 논란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모인 인터넷 포럼에서는 종종 헬멧 법제화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다. 내가 아주 인상 깊게 본 것은, 이런 논란에서 ‘나는 헬멧을 쓴다. 하지만 헬멧 강제화는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전에 쓴 글에서 관련 부분을 옮겨오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헬멧 강제 착용에 반대하는 사람 중에는 이렇게 ‘헬멧을 쓰지 않겠다’고 뻗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헬멧을 강제로 씌우는 것은 견딜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들은 헬멧을 쓰면서도 말이다.

내가 가끔 들르는 오토바이 동호회 게시판이 있다. 미국 라이더의 주류가 그렇듯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회원이 되어 운영하는 게시판이다. 이 게시판에서도 가끔 헬멧 논쟁이 붙는데, 내가 놀란 것은 “나는 헬멧을 쓴다. 내 안전을 위해서. 그러나 정부가 쓰라 마라 하는 것은 죽어도 싫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한 회원은 10대 중반에 ‘더티 바이크’로 오토바이를 배운 이래 40년 넘게 오토바이를 타면서 머리 위에 무언가를 올려두지 않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러나 헬멧 강제 착용 제도에는 격렬히 반대한다. 개인의 선택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시간 주는 2012년에 헬멧 규정을 바꾸었다. 당연히 강화되는 쪽으로? 아니다. 반대다. 그동안 미시간에서는 모든 라이더가 헬멧을 써야 했다. 이런 규정이 청소년에게만 강제하는 쪽으로 축소된 것이다. 현재 제한적 규정을 가진 많은 주가, 이렇게 전체 적용이었다가 축소 적용으로 바뀐 곳들이다. 여기에는 도로 환경 개선이나 기계 발전의 이유도 있겠지만, 시민권의 신장이라는 측면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미국 각 주가 적용하는 헬멧 규정은 아래와 같다.
녹색 주는 모든 사람이 헬멧을 쓰도록 규정한 주이고, 하늘색 주는 17~20세 이하 청소년에게만 적용하는 주다. 회색 주 세 곳(아이오와, 일리노이, 뉴햄프셔)은 아예 헬멧 규정이 없다.
강도, 절도, 음주 운전 따위의 규제를 자율에 맡기거나 청소년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가? 안 된다. 이런 행동은 남에게 분명하고도 즉각적인(clear and present)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헬멧을 안 쓰면 남에게 그런 피해를 주는가? 그렇게 보긴 어렵다. 헬멧을 쓰지 않아서 당하는 직접적인 피해는 대부분 운전자 자신의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물론 시민의식이 어느 정도 성숙하여 있다는 전제가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코흘리개 국민의 정신을 지켜주는 한국



내가 다른 블로그나 뉴스를 구독하는 툴은 넷바이브(Netvibes)다. 더 좋은 툴도 있겠지만, 그냥 익숙해서 계속 쓰고 있다.
가끔 가는 한국의 공공 도서관에서는 이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다. 접속할 때마다 warning.or.kr 이 뜬다. 그 시퍼렇게 촌스런 화면이 ‘두둥’ 떠서 이렇게 소리치는 것 같다.
깜짝!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이 코흘리개 새끼야. 어딜 접속하려고 해! 네놈의 안전을 위해서 친절한 국가 씨가 앞길을 막았다능!”
물론 나의 넷바이브 계정은 아주 건전하다. 북한 관련 사이트를 구독하지도 않고, 음란 소식을 받아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저 꼴이다. 밥통 같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URL을 등록하다 밥통스럽게 착오를 일으켰는지, 아니면 이 구독 서비스에 유달리 음란물 구독자가 많은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궁금해
이런 화면이 뜨면 나는 황급히 창을 닫느라 허겁지겁하게 된다. 도서관 직원이나 뒤에서 내 화면을 볼 수 있는 이용자들이 ‘아, 저 새끼 음란 사이트 접속하는구나. ㅋㄷㅋㄷ’ 하고 오해할까 봐서다.
여기가 미국이고 내가 변호사라면 나는 국가를 상대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여 징벌적 배상을 물리러 나섰을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치솟는 분노 게이지로 보자면 그 정도 수고쯤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 코흘리개같이 덜떨어진 국민 놈들의 정신적 안전을 국가가 나서서 친절히 지켜주는 한국. 그 과정에서 헌법을 무시하는 약간의 부작용쯤 발생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명색 자유 민주국가 한국.



구글코리아, ‘세이프서치’ 해프닝



지난 12월 11일부터 구글코리아가 한국어 검색 사이트에 이른바 ‘세이프 서치’를 강제 적용했다고 한다. 한 기사​​​에 따르면 “세이프 서치는 음란물과 같은 부적절한 콘텐츠를 검색 결과에서 자동으로 제외하는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체크 마크를 눌러 설정을 해제하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니 여전히 활성화가 되어 있다. 기사 내용처럼 강제로 그렇게 자동 설정이 된다. 10대 한국인의 컴퓨터도 그럴 게고, 벌떡벌떡 서는 30대 한국인은 물론이며 혹하지 않는 40대 한국인, 천명을 아는 50대 한국인, 귀와 몸이 순해지는 60대 한국인, 귀신이 다 된 90대 한국인의 컴퓨터도 그럴 게다. 이른바 포괄적 규제다. 이렇게 소리치는 것 같다.
“닥치고 이 코흘리개 코리안 새끼들아! 친절한 (구글) 코리아가 제 앞가림도 못 하는 네놈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깡그리 막았다!”
위 기사에 따르면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다양한 테스트를 계속하고 있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며 “테스트가 마무리되면 이용자가 세이프 서치 기능을 다시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해명은 얼른 믿기가 어렵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특정 국가에서만 테스트한 적도 드물고, 시험이라면서 기간을 명시하지 않은 점도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정색
12월 17일 현재 이런 강제 적용은 풀렸다. 슬로우뉴스가 구글 코리아에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이것은 ‘기술적 오류’라고 한다.
“세이프서치 관련 테스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으며, 현재는 오류에 대한 수정을 완료한 상태입니다. 사용자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구글 공식 입장)
이 말이 옳다면 세이프서치 사태는 결과적으로 해프닝이었던 셈인데, 까마귀떼가 출몰하는 배밭에서 배가 떨어지는 것을 이용자들은 심상히 보아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진보나 문명화나 자유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나 모두 그 요체 중 하나는 선택을 넓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중세 신분제 시절에 어떤 직업 선택이 가능하였을 것인가. 위대한 지도자 동지가 이끄는 소비에트 시절에 어떤 빵의 선택이 가능하였을 것인가. 그런데 이 개명 천지에, 전근대적인 획일화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 권력이 국민의 공사(公私) 생활에 개입하여 배 놔라 감 놔라 한다. 역사 교과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후진국이고 후진국 국민을 대하는 후진국 정부가 하는 일이다. 국민은 선진이 되고 싶은데, 꼰대 역할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구질구질한 정부가 국민을 끌어 잡아 70년대식 똥통에 주저앉히고 있다.

필자 : deulpul(슬로우뉴스 편집위원)


 블로그를 하는 사람(deulpu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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