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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 2015, 당신이 놓쳐선 안 될 여덟 영화

by 슬로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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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 2015가 11월 26일부터 12월 4일까지 압구정 CGV와 최근 낙원상가에서 서울극장으로 장소를 이전한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다. 1975년부터 처음 막을 올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인 서울독립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대형 영화제에 비하면 규모나 인지도는 작지만 매년 연말에 개최되면서 한 해 동안 발표된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
뿌듯
올해에도 경쟁 부문과 특별초청 부문을 합쳐 총 109편의 독립영화가 관객들을 반길 예정이다. 분명 선정된 모든 작품이 각자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면 아쉬워할 작품들이 서울독립영화제엔 가득하다. 특히 쉽게 극장을 통해 공개되기 어려운 독립영화의 특성상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보지 못하면 영영 놓칠 수 있는 작품들도 있는 만큼 ‘본방사수’는 사실상 필수가 되고 만다. 과연 올해에는 어떤 작품들을 주목할 수 있을까. 국내/국외, 단편/장편, 극영화/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영역에 포진된 작품들을 선정해보았다.
[혼자], 박홍민 감독

감독의 전작 [물고기]는 참으로 독특한 작품이었다. 비록 소리소문없이 묻힌 영화였지만, ‘무당’이라는 오컬트적 소재를 활용한 것은 물론 독립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3D 기술까지 활용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가 더욱 기묘한 후속작을 들고 관객들 앞에 나타났다.
아싸!
[혼자]는 [물고기]에서 드러났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더욱 가속한 작품이다. 달동네에서 우연히 살인 현장을 목격한 주인공은 카메라로 그 모습을 몰래 담으려다 범인들에게 들켜 그만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아 쓰러지고 만다. 얼마 후, 남자는 다시 자신이 쓰러진 달동네에서 깨어나지만, 어딘가 달라져 있다. 과연 그가 보고 있는 세상은 무엇일까.

영화는 현실인지 사후 세계인지, 아니면 여전히 무의식 상태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하고 기괴한 연출을 통해 주인공이 겪고 있는 고통을 관객들이 감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었을 때는 [물고기]의 3D 만큼이나 더욱 독립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든 4DX로 변환되어 더욱 독특한 감각을 주었다. 비록 상업영화만큼 후반 작업에 예산을 들일 수 없기에 한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한국 독립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가능성이 보이는 작품임엔 분명해 보인다.
[아아아], 노영미 감독

한 소년이 있다. 엄마는 고통 속에서 ‘아아아’라는 외마디 비명만을 지른 뒤 사망하고, 엄마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상처를 입은 소년에게 아빠는 별다른 위로 대신 나폴레옹이나 케네디 같은 위인들의 이야기만을 내뱉으며 성공하길 강요할 따름이다. 그렇게 슬픔을 잊을 시간도 없이 경시대회에만 몰두하던 소년은 우연한 계기로 기묘한 환상에 빠져들고 만다.
헤롱헤롱
클레이 인형을 사용한 스톱모션 기법으로 제작된 [아아아]는 다양한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앞만 볼 것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를 꼬집는 작품이다. 다만 그 꼬집는 방식이 무척이나 독특하다. 소년은 단순히 무너지지도, 그렇다고 마냥 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내면에 꾹꾹 눌러 놓았던 욕망이 성공에 대한 압박을 견디다 못해 터지면서 일종의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 나갈 따름이다. 성적 욕망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기괴하게 결합된 모습은 그 이미지 자체만으로 소년이, 그리고 그 소년이 서 있는 사회의 모습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식물들: 자카르타 모노레일 103], 박용석 감독

작품이 시작되면 별다른 설명 없이 흑백으로 촬영된 사진들이 박수 소리에 맞추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고, 그렇게 5분 동안 영화는 사진을 자신만의 리듬으로 연이어 보여줄 따름이다. 마치 나무 같기도 하고, 의무적으로 설치한 공공 예술처럼 보이기도 하는 사진 속 정체불명 조형물의 정체는 바로 10년 동안 공사 중단 상태에 놓여있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모노레일의 기둥 103개이다. 자카르타의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이 모노레일은 IMF와 건설사의 부도가 겹치면서 오랜 시간 동안 흉물로 방치됐던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완공되어 모노레일을 받쳐줄 교각이 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철거되지도 못한 채 거추장스럽게 남아있는 기둥의 모습을 빠른 속도로 비추면서 관객들이 기둥들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이 기둥들은 독특한 접근을 통해 제목 그대로 주변 모습과 하나가 된 ‘식물’ 같기도 하고, 어떤 목적을 위해 일렬로 세워진 기념비 같은 느낌도 들지만 결국 어정쩡한 상태로 방치된, 이도 저도 아닌 상태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작품은 독특한 접근을 통해 그 상태를 더욱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 뿐이다. 한국 역시 ‘월미은하레일’을 비롯해 ‘4대강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전국 여기저기가 토목의 물결로 뒤덮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 ‘낯설게 보기’는 어떤 의미에선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게 하는 방아쇠가 된다.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 김숙현·조혜정 감독

‘감정노동’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여러 차례 방송이나 신문, 인터넷을 통해 감정노동의 실태가 다뤄졌던 공도 없지 않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원했든 원지 않았든 감정노동이 무엇인지를 겪어보았기 때문이리라.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 역시 서비스업에서 만연한 감정노동을 다루는 일종의 다큐멘터리지만, 기존의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길을 겪는다. 실제 감정노동의 현장에서 온갖 고통을 참으면서 일을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긴 하지만, 좀 더 감각적으로 그 고통을 관객들이 경험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좌절
이를 위해서 영화가 선택한 방법은 ‘무용’이다. 보육교사, 경호원, 휴대전화 수리 엔지니어, 스튜어디스 등등 각각의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겪었던 일들을 털어놓는 사운드가 흘러나올 때 영상을 통해서는 무용수들이 각각의 직업에 해당하는 복장을 하고 퍼포먼스를 벌인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무용하면 흔히 생각하는 자유로운 움직임 대신 매우 불안정한 자세로 정지해 있는 모습만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서비스 노동 종사자들의 모습은 실제 노동의 현장보다 더욱 고통이 극대화되어 묘사된다.

어떤 점에서는 그것을 ‘과장’이나 ‘비현실’이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무척이나 고통스럽게 ‘버텨야’ 하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대다수의 서비스 노동, 그리고 감정 노동을 하는 이들의 심정 그 자체이다. 그리고 소위 ‘금수저’가 아닌 대다수의 사람 모두가 최소 한 번 이상 겪어야만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감정의 시대]는 이렇게 역설적이고 효과적인 무용 퍼포먼스를 통해 감정 노동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강하게 느끼도록 해주는 작품이 되었다.
[초인], 서은영 감독

제목과 달리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은 초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주인공은 치매를 앓고 있는 것은 물론 과거 배우로 활약했던 세월에 집착하는 어머니를 두고 있고, 싸움에 휘말리는 바람에 도서관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받아 일하고 있으며 주인공이 만나는 소녀 역시 어딘가 심상치 않은 비밀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아픔과 결함이 있기에 역설적으로 이 두 명은 자신에게 걸린 운명과 족쇄를 부수고 일어날 수 있는 ‘초인’이 된다. 서로는 서로를 보며 함께 우정을 키워나가고 그러는 과정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이해하며 극복해나간다. 어찌 보면 80, 90년대 하이틴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상투적인 스토리지만 영화의 풋풋하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출은 잘못하면 진부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옥상자국], 양주연 감독

감독의 어머니는 광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감독은 어느 날 어머니의 고향 집 옥상에서 총알 자국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외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그 자국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시기에 생겨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연 1980년 외할머니와 가족들은 무슨 일을 겪었고, 외할머니는 5·18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 광주는 그 당시의 기억을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을까.
엥?
[옥상자국]은 일종의 기록 영화로 감독이 다녔던 학교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을 그렸던 [내일의 노래]에 이어 만든 후속작이다. 전작이 촬영 당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면, 이번 신작은 약 30년 전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관한 기록을 거슬러 올라간다. 감독이 우연히 발견한 총알 자국은 예상치 못했던 과거의 흔적을 마주하는 매개체가 되고, 작품은 외할머니가 겪었던 그 날의 이야기를 통해 5·18이 당시 광주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왔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5·18 민주유공자나 당시 현장을 보고 겪었던 사람들에 대한 구술녹취가 진행 중이며 몇 년 전 발표된 다큐멘터리 [오월愛]와 같이 5·18과 함께 했던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도 있다. 하지만 [옥상자국]만의 미덕이라면 차분하지만 경직되지 않은 시선으로 당시 현장에 보았던 사람의 기억을 쳐다보고, 다시 그 차원에서 과거와 현재 모두를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영화는 5·18을 단순히 ‘폭동’으로 취급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동시에 민주화 정권 시기에 이루어진 5·18의 ‘신화화’ 역시 가능한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30여 분가량의 짧은 다큐멘터리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는 역사를 생각하는 깊은 논의들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최근 폐막한 제13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국내경쟁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공부의 나라], 최우영·스티븐 두트 감독

지금은 방송이 끝났지만, 온갖 잡다한 정보를 소개하는 미국 프로그램 [믿거나 말거나]에서 언젠가 한국의 고3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무척이나 이른 시간에 일어나 아침 자습을 하고, 다시 정규 수업이 끝난 시간 뒤에도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의 타율학습에 시달리는 고3의 모습은 미국 사람들에겐 무척이나 신기하게 다가왔고, 다시 신기하게 쳐다보는 미국인의 시선이 한국에 널리 퍼지며 많은 말들을 낳기도 했다. [공부의 나라]는 이와 비슷하게 교육열이 흘러넘치다 못해 끓고 있는 한국의 교육열을 한 발짝 멀리 떨어져 쳐다보는 다큐멘터리이다.
매우 집중
[공부의 나라]는 소위 [천일문] 시리즈로 영어 사교육 시장에서 널리 알려진 수능 강사 김기훈과 수능을 준비하는 세 학생의 1년을 조망한다. 스스로 입시를 포기하지 않은 이상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교육 강사와 수험생의 모습은 무척이나 익숙하지만, 동시에 이 모습들은 일종의 희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두는 분명 지금 자신들이 놓인 한국 교육의 상황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동시에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감독은 대부분이 경험하는 이 씁쓸하고 역설적 모습들을 흥미롭게 엮어내며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강렬하게 표출한다.
[더 위치], 로버트 에거스 감독

미국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인 매사추세츠 주에서 벌어진 세일럼 마녀 재판(The Salem Witch Trials)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동시에 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준 사건이다.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 아서 밀러의 [도가니] (The Crucible) 등 마녀재판을 낳게 만든 종교의 경직과 광기를 조망한 작품을 만드는가 하면 스티븐 킹의 [살렘스 롯] 같은 장르적인 상상을 만드는 원천이 되기도 했다.

[더 위치]는 전자와 후자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아직 세일럼 재판이 벌어지기 전 17세기 미국의 청교도 마을, 종교적인 갈등으로 공동체를 떠나 외딴 숲 속으로 들어간 가족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자 가족들은 이 모든 사건이 장녀가 마녀라서 생기는 문제라 생각하고, 결국 광기에 사로잡힌 가족들은 결국 더 큰 비극과 사건에 빠져들고 만다. 과연 이 모든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더 위치]는 감독이 처음으로 만든 작품이지만 영화가 세계 최초로 공개된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는 것은 물론, 선댄스에서 상을 받고 나서 얼마 후엔 로버트 에거스 감독이 드라큘라 전설을 기초로 한 독일 고전 공포영화 [노스페라투]의 리메이크판 연출자로 내정되는 등 정식으로 공개되기 전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도 2016년 2월 26일에야 개봉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서울독립영화제가 [더 위치]를 가져온 것은 한국의 장르영화 팬들에게는 무척이나 기쁜 선물이 되지 않을까. 특히 여전히 한국이 보수화된 종교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비록 누군가에겐 불편할지라도 다른 누군가에겐 무척이나 흥미롭고 독특한 작품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필자 : 성상민(초대필자, ACTI 편집위원)


 2000년대 중반 무심결에 글을 쓴 이후로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주로 만화, 영화, 미디어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씁니다. [미디어스]에 정기적으로 기고 중이며,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의 격월간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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