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패러독스: 즐겁게 먹어야 건강하다

조회수 2015. 11. 10. 23: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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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뉴스
“나 오늘 초콜릿 케이크 먹었어. 다이어트 망함. 아, 한심해. 이 미련한 몸뚱이.”

오늘 친구에게 받은 문자. 그녀는 달콤한 디저트 앞에서 무너지는 자신을 늘 책망하곤 한다. 내가 보기엔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다이어트를 강박한다. 하지만 그대여, 생각해보자. 초콜릿 케이크는 원래 맛있는 것이며, 먹는 것은 좀 더 즐거워질 필요가 있다.

당신에게 ‘초콜릿 케이크’란?


초콜릿 케이크를 한입 물고 자신을 탓하는 그녀에게 초콜릿 케이크는 어떤 의미일까?

2년 전, 뉴질랜드의 심리학자들도 비슷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은 300여 명의 참여자에게 초콜릿 케이크와 관련하여, ‘죄책감’ 혹은 ‘축하’ 중 더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선택하게 했다. 294명의 응답자 중 27%가 ‘죄책감’을 꼽았다. 초콜릿 케이크에 ‘죄책감’을 연상한 이들은 본인의 식습관이 건강하지 않다고 여겼으며, 앞으로도 건강한 식사를 할 자신이 없다고 답했다. 체중 감량 목표가 있었던 응답자 중, 초콜릿 케이크에 ‘죄책감’을 떠올린 이들은 ‘축하’를 떠올린 이들에 비해 3개월 후 체중 감량에 실패하는 경향을 보였다. 오히려 이들은 3개월 뒤 체중이 늘어났다.
고정 연상(Default Association)을 바탕으로 한 초콜릿 케이크 연구는, 음식에 이미 형성된 고정 심리가 우리의 식습관과 식품의 소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달걀 프라이’에 ‘아침’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달걀은 구매해야 할 물품이지만, ‘콜레스테롤’을 떠올리는 이들에게는 건강을 해치는 대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초콜릿이나 달걀에서 벗어나, 음식을 오로지 ‘영양소’, ‘칼로리’, ‘건강’과 연관 지어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먹는 것’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크다. 이 케이크에는 설탕이 얼마나 들어있나, 오늘 나는 몇 칼로리를 섭취했는가, 이것은 건강한 식사인가에 대한 의심과 강박은 늘 그들을 쫓아다닌다. 이들에게 음식은 칼로리일 뿐이자, 체중 조절의 도구이며, 먹는 일은 그 기능에 머물 뿐이다.

‘걱정’ 시대와 프렌치 패러독스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래로, 모두가 건강한 식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히 폭발적이었다. 미디어와 전문가들은 우리의 먹거리와 식습관에 대해 조언을 쏟아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구분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먹는 것에 ‘돼’와 ‘안 돼’가 생겨났다. 채소와 과일의 규칙적인 섭취가 바람직한 삶의 규범이 되었고, 지방, 나트륨, 설탕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사실 웰빙 트렌드는 비만의 고향인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비만 인구의 증가와 심혈관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은 그 주범을 고열량, 고지방 식사에서 찾고 있었다. 그러던 1980년대, 한 역학 연구자에 의해 발표된 ‘프렌치 패러독스’는 미국 사회에 작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걱정의 미국, 기쁨의 프랑스



1999년, 로젠과 그 동료들은 프렌치 패러독스를 바탕으로 벨기에, 일본, 미국, 프랑스 네 나라의 음식과 건강에 대한 비교문화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은 음식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집중했다. ‘음식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물었을 때, ‘건강’과 가장 깊이 연결한 나라는 단연 미국이었다. 그들은 음식을 ‘체중 증가’와 연관이 있다고 믿었고, 그에 대한 ‘우려’가 가장 높았다.
반면, 음식을 ‘삶의 중요한 기쁨 중 하나’라고 여긴 나라는 프랑스였다. 그들에게 음식과 관련해 건강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프랑스인에게 먹는 것은 기쁨이었다. ‘아이스크림’은 ‘맛있는 것’이지, ‘살찌는 것’이 아니었다.
연구에서 더욱 놀라운 것은 음식을 가장 건강과 깊이 연결 짓는 미국인들의 부정적인 자기 인식이었다. 다른 세 나라와 비교해 봤을 때, 미국인들은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쏟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식습관을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건강하게 먹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안 돼’와 ‘걱정’은 건강한 식습관에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즐겁게 맛있게 건강하게


납작한 배, 탄탄한 근육, 젊어 보이는 몸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기쁨이 없는 아름다움은 생각보다 그리 빛나지 않는다. 아름다움, 다이어트, 건강에 대한 집착에 지쳐있는 우리에게 프렌치 패러독스는 중요한 교훈을 전해준다.

그동안 우리는 먹는 것을 두려워하고 음식을 무서워해 왔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그동안 잊고 있었던 ‘먹는 것’이 주는 푸근함과 기쁨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 음식은 원래 맛있는 것이며, 먹는 것은 원래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조언은 ‘균형 잡힌 식사’라든지, ‘짜게 먹지 마라’든지, ‘설탕은 그만 넣어라’는 잔소리가 아니가 ‘맛있게 먹어라’는 너그러움일지 모른다. 싱그러운 봄나물, 시원한 물냉면, 한겨울의 군고구마가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는가. 사랑하는 이와의 향긋한 모닝커피와 퇴근 후 친구들과의 꼬치구이가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든든하게 채워주는가.

이 맛있는 것들에게 어찌 ‘안 돼’를 외치고 있으며, 보기만 해도 녹아드는 초콜릿 케이크에 왜 칼로리 계산기를 들이대 자신을 혼내고 있는가. 오늘도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에 죄책감을 느끼는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제는 너그러이 받아들이자고.
즐겁게 먹는 것이 건강한 것이라고.
우리 맛있고 즐겁게 먹고 건강해지자고.

필자 : 김가을(초대필자, 마케터)


 대학에서 영양학 전공 후, 약도 팔고 과일도 팔아본 마케터. 읽고 쓰고 말하고 배우는 걸 좋아하며, 특히 먹거리와 사람 사이의 생태계를 늘 관찰합니다.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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