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을 보내며

조회수 2018. 7. 23. 15: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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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던 거로 기억한다. 부정확하겠지만, 그 취지를 옮기면: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고려해서"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주로 재벌들이 피고인인 사건에서 이런 표현이 상투적으로 나오죠. 그런데 노동자 피고인인 경우에는 이런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재벌 회장들만 국가 경제에 이바지했습니까. 노동자야말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착취당하면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재벌 회장들이 횡령으로 배임으로 재판을 받으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언급하는 판사들이 왜 집시법 위반, 쟁의법 위반으로 재판받는 노동자에게는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언급하지 않는 것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는 노회찬이 좋았다.

그에게도 들키지 않은 비겁함이 있었을 테고, 그에게도 끝끝내 해결하지 못한 모순이 있었을 테다. 그런 인간적인 결핍이 그런 이율배반이 결국 스스로 자신을 처형하는 방식의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그의 죽음은 너무 무겁고, 그의 결핍은, 나는 그 무게를 잘 모르겠다. 

지금 나에게, 그의 죽음은 너무나 부당하다. 더 더럽고, 더 저열하며, 훨씬 더 비루한 정치인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 위에서 군림한다. 무엇보다 전두환이 살아 있는 세계에서, 아니 전두환을 죽이지 못한 세계에서 정의의 무게는 얼마나 깃털 같은 것일까.

내 필명 '민노(씨)'는 2004년 총선의 '민주노동당' 이름에서 따왔다. 정확히 말하면, 초기 민주노동당에서 활약했던 노회찬의 모습을 보며, 그 2004년, 2005년 즈음의 민주노동당에서 따왔다. 그의 난중일기가 멋졌고, 언젠가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에 살고 싶었다. 그 세상에 눈곱만큼이라도 '민노씨'라는 내 또 다른 자아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보내며, 노회찬이 내 필명에 이바지한 공로를 짧게나마 적는다.

정의는 흑백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고, 늘 회색의 세계에서 방황했다.

나는 여전히 노회찬을 정의로운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안녕,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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