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더 따스한 위로, 비발디의 '사계'
서울 시민들이 가장 많이 듣는 클래식 음악은 뭘까? 그 곡은 아마도 '조화의 영감'(L'Estro Armonico)일 것이다.
1711년 바로크 음악의 거장 비발디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이 곡은 사실 비발디가 만든 원곡이 아닌 후일 '음악의 바다'로 칭송받는 바흐가 편곡한 버전이다.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
오늘날 바흐는 다소 잘못 알려진 호칭인 '음악의 아버지'라는 별명*과 더불어 현대 서양 음악의 기초를 마련한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바흐 음악의 많은 부분은 17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서양 음악 형식의 주류를 이뤘던 바로크 음악에서 이어지고 있는데, 바로크라는 말은 본래 포르투갈어 'barroco'에서 온 것으로 '흉측한 진주'라는 뜻이 있다.
17세기 유행하던 화려한 건축 양식과 미술 양식에 너무 과도한 장식이 많았던 나머지 그 과함을 비꼬는 뜻에서 만들어진 말이었지만 이 표현이 당시의 오페라를 가리키는데도 쓰이면서 다른 부분보다 화려하고 복잡했던 음악 조류를 가리키는 명칭이 된 것이다.
바흐는 그런 '바로크 음악'의 마지막 음악가였다. 바흐는 바로크 음악의 장점들을 집대성하되 복잡한 부분들을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대위법*과 화성법에 대한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경지를 이룩했는데, 바흐의 손에 의해 그 이전까지 더욱 단순한 합주 형태였던 악기들이 각각의 독립적인 선율을 선보이면서도 그것이 매우 어울리는 방식으로 배치되었다.
바흐에 대한 가장 유명하면서도 공식적인(?) 칭호는 베토벤이 가리킨 '음악의 바다'라 할 수 있다.
-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악기, 하프시코드. 1749년의 제품 사진.
바흐의 그런 음악은 이후 고전파 시대를 열어간 음악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면서 교과서의 위치를 넘어선 성전의 구실을 해나갔지만, 그의 음악이 실제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생전의 전성기로부터 거의 백 년이 지난 뒤였다. 바흐의 대부분 곡은 바로크와 더불어 그의 시대 이후 잊혀졌던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서야 낭만파 음악의 천재로 불렸던 멘델스존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흐의 '마태 수난곡' 을 100년 만에 초연한 것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바흐 음악은 재발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발굴의 가지는 바흐보다 더 조용히 잠들어 있던 비발디 음악을 깨우는데 이르렀던 게다. 멘델스존이 바흐를 찬양했다면 그 바흐가 찬양했던 것은 비발디였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 독일의 음악사학자 요한 포르켈(1749-1818), 바흐를 최초로 재발굴하고 최초의 연구서를 펴낸 인물이다.
- 바흐 덕후였던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 초상화는 제임스 워렌 차일드(1778–1862)가 1839년 그린 작품.
- 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1678-1741)
- 16세기 유럽의 유아세례 묘사
이탈리아 베네치아 태생의 비발디는 났을 때부터 매우 몸이 허약했던 체질이라 생후 100일이 지나서야 유아세례를 받았다 한다.
그렇게 몸이 약했던 비발디였지만 그의 음악 세계는 그 정반대로 뛰어난 열정으로 가득했다.
특히 바이올린과 바이올린 협주곡을 좋아했던 비발디는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매우 활발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선호했는데, 그 선율을 효과적으로 선보이고자 지금도 현대 음악이론가들에게 연구감이 되는 정교한 '셈여림'*을 작곡에 구사하며 그 이전까지 형식만을 좇았던 바로크 음악을 보다 인간적인 곡으로 바꿔나갔다.
- 대표적인 셈여림 기호, 출처: 위키백과
비발디는 기록상으로는 700곡이 넘는 작품을 평생 남겼지만 많은 곡이 소실되거나 전해지지 않게 되었는데 그 큰 원인은 '상당수의 곡이 너무 비슷한 나머지 같은 곡으로 착각'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대중음악에서 같은 곡이 여러 연주자나 가수들에 의해 편곡되고 어레인지 되는 수준으로 비발디는 같은 곡을 어떤 분위기로 어떤 빠르기로 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곡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에 얼핏 보기에는 비슷한 곡들을 여러 형태로 작곡해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비발디의 작곡에 대한 행태는 당시는 물론 비발디의 재발견 이후에도 많은 작곡자에게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형식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현대 음악의 거장인 스트라빈스키가 그런 비발디의 곡들을 '똑같은 곡을 100곡은 더 만들었다'며 비난하기도 했으니.
- 이고리 표도로비치 스트라빈스키(1882-1971)
최근 들어서야 비발디의 음악을 연구하는 이들은 대체로 그런 방식의 장점을 깨닫게 되는 것이 곡조는 물론 연주자의 성격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곡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하는 음악의 형태를 비발디는 작곡 단계에서 이미 구현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 비발디의 인간적인 고찰은 가장 단순한 주제들에서 큰 매력을 발휘하게 되었으니 그렇게 나온 곡이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였다.
'사계'는 이름 그대로 네 개의 계절을 음악으로 표현한 일종의 '표제음악'이다. 제목만으로도 그 곡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도록 만든 '표제음악'의 형식은 역시 비발디 이후 100년이 지나서야 멘델스존 같은 음악가들에 의해 빛을 발하게 된 낭만주의 음악의 특징이기도 한데, 비발디는 이미 당시에 '사계'로 그런 형식을 이룩한 것이다.
'사계'를 만들던 당시의 비발디는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오페라를 작곡하다 알게 된 소프라노 가수와의 염문이 불거지는 바람에 대부분 후원관계가 끊기고 작품이 배척을 받아 생활이 매우 궁핍해졌기 때문이다.
특정한 인물이나 작품을 주제로 작곡해달라는 의뢰가 뚝 떨어지게 된 비발디는 자기 자신을 위한 사색에 잠기게 되었고 그 섬세한 관찰력이 자연과 계절에 머무르게 되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계절의 변화는 마치 사람의 인생과도 비슷해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도, 나쁜 날 뒤에는 다시 좋은 날도 오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 비발디는 작곡 이전에 소네트 형식으로 그가 만났던 일상의 풍경을 써내려갔다. (*)
그리고 그 시구들을 바이올린으로 표현한 것이 그대로 음악이 된 것이다.
비발디의 '사계'에 붙어있는 소네트는 작자가 실제 누구인지 알려져있지 않다. 음악이론가들의 추측으로는 비발디가 가장 유력하다.
봄과 가을은 소네트의 내용에서 보다시피 계절과 그에 얽힌 풍경의 묘사를 그대로 구현하는 구성들로 찰나적인 모습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여름과 겨울은 다르다. 비발디는 여름과 겨울에서 인생의 아이러니를 발견하고 음악으로 표현해나갔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여름에는 시원한 것을' '겨울에는 따뜻한 것을' 지향하는 인류의 본질에 가까웠다.
그런 비발디의 발견은 '겨울' 2악장 라르고에서 절정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데, '사계'를 통틀어 가장 따스하고 아름다운 선율들이 이 부분에서 큰 매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겨울의 1악장이 알레그로 F장조의 분위기로 비련 한 느낌을 전체적으로 주고 있는 반면에 바로 이어지는 2악장은 더욱 겨울이 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라르고 E장조로서 매우 밝은 멜로디가 천천히 울려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 이미지 제작 및 출처: Artienne
이것이 겨울이다. 그렇지만 겨울은 기쁨을 실어 다 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음악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비발디의 사계는 오늘날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이기에 오히려 평가절하되는 감이 있다.
그러나 그런 인지도와 별개로 비발디가 작곡한 전체 12악장의 '사계'는 인류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섬세한 음악의 형태이자 생명과 자연에 관한 장엄한 주제를 담고 있는 표제음악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겨울이 깊어갈 수록, 그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어갈 수록 겨울의 2악장은 생경함을 넘어서, 추위를 벗어나 따뜻함을 찾아가려는 어떤 의지를 공명하게 해준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겨울에 비발디의 음악이 시기적절한 위안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 이미지 제작 및 출처: Comfre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