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게임인, 재미있고 화려한 게임 문화 뒤편의 영웅들

조회수 2016. 11. 26. 02: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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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워치에서 일어난 해킹 소동

  • 2016년 최고의 인기 디지털 게임 오버워치. 당분간 그 인기는 지속될 듯 하다.

2016년 6월 게임 커뮤니티에는 분노한 게이머들의 항의가 쏟아지고 있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디지털 게임 오버워치 리그 8강 중계를 지켜보던 팬들의 평이었다.

“저건 분명히 핵을 쓴 거야! 그게 아니고는 상대를 저런 식으로 이길 수 없다고!” 
“여자 게이머잖아? 도대체 무슨 비겁한 수를 쓴 거냐!”

오버워치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2016년 공개한 팀 FPS 게임이다. 각 6인으로 구성된 두 팀이 팀 워크로 한정된 공간에서 전투를 펼치는 이 협동형 일인칭 슈팅 게임은 PC Windows는 물론 콘솔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4와 Xbox One에서도 실행이 가능한 온라인 멀티 플레이어 게임으로, 출시된 이래 2016년 11월 현재 국내 PC 방에서도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최고의 인기 게임이기도 하다.


이런 온라인 게임은 세계 여기저기서 리그가 벌어져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나라의 프로게이머들이 서로의 실력을 겨루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 2016년 6월 18일은 중국 리그에 참가할 국가대표급 선발을 위한 경기가 8강으로 접어들고 있던 때였다. 그 시합에 참여한 한 여성 게이머의 플레이가 너무나 정교했던 나머지 해당 게임에 일가견이 있었던 게이머들이 앞다퉈 핵(해킹 도구의 은어)을 쓴 부정행위라는 주장을 했던 것.


'게구리’ 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이던 여성 게이머는 8강 시합 참가 전부터 많은 의혹을 사고 있었다. 세계 수위권에 드는 선수들의 승률이 70% 후반이었는데 반해 해당 여성 게이머의 승률은 압도적일 정도라 할 수 있는 80%의 승률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당시 게임 커뮤니티에서 은퇴까지 공언한 상대 팀

게이머 ‘게구리’가 핵을 써서 상대방을 압도하고 있었다는 의혹은 일반 게이머들에게서만 일지 않았다. 분노의 항의는 일파만파 퍼져나가 리그의 주최회사와 게임제작사들이 해당 경기를 신중하게 재판정해야 했고, 겨뤘던 상대 팀은 ‘게구리’가 만에 하나 핵을 쓰지 않았다면 자신들은 오버워치 플레이를 더는 하지 않을 것이며 프로게이머 활동도 중단하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짧은 시간 너무나 정확하게 세 명의 상대를 제압해 결정적으로 핵의혹을 받았던 ‘게구리’의 플레이는 게임 제작사의 조사 끝에 핵이 아닌 순수한 실력, 즉 해당 게이머가 발휘했던 발군의 감각과 판단력으로 판정되었다.

  • '게구리' 선수의 당시 플레이

많은 사람이 열을 올리며 ‘사람이 발휘할 수 없는 실력’, ‘여자 게이머는 더욱 불가능하다’며 주장했던 항의들은 ‘여성에 대한 편견 ’이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한국뿐 아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례가 되었다. 얼마나 디지털 게임문화가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했는지에 대해 그 전형성을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예시가 된 것이다.

<모노폴리>를 만든 사람

  • 모노폴리 게임

별다른 조사나 고찰 없이 디지털 게임 문화가 남성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진 것은 매우 오래된 현상이기도 하다. 디지털 게임이 아닌 고전 게임의 흥행과 전성기를 들여다봐도 통계적으로 여성의 게임 참여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대중도 쉽게 결론을 내려왔다. 여성들은 그 성격이나 심리에 있어서 애초부터 게임문화와 친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1935년에 출시되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그 변종 게임을 포함해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삼삼오오 모였을때 꺼내놓는 땅 차지 보드게임 <모노폴리> 역시 어쩐지 여성들이 참여하기에는 너무 수준이 높고 복잡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1984년에 이르러서야 그 게임을 만든 사람이 사실은 여성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 말이다. 


  • 초기 특허 당시의 <모노폴리>
  • '파커 브라더스'사 로고

<모노폴리>는 최초의 부동산 거래 게임이자 토지 독과점을 소재로 하는 보드게임으로 자본을 보다 빨리 획득해 상대의 토지를 점유해 일정한 부분 이상의 부동산 가치를 만들어 나머지 상대를 파산시키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 보드게임의 제작사 '파커 브라더스'는 1934년 '찰스 대로우'라는 인물에게서 해당 게임의 아이디어를 사들여 이듬해 내놓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모노폴리>는 애초에 찰스 대로우의 것이 아니었다. 찰스 대로우는 1903년에 '엘리자베스 마지'가 만든 전혀 다른 이름의 게임 내용을 그대로 훔쳐와 자신이 고안한 것인 양 회사에 팔아넘겼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마지는 다양한 직업군에서 경력을 쌓은 당대 보기 드문 능력자였다.


단편소설 작가이자 희극인이며 정극 무대의 여배우를 거쳐 속기사와 신문기자로 활동했으며 심지어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공학 분야의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 엘리자베스 마지의 <지주 게임> 초기 특허

그는 다양한 직업과 경력만큼 생애 동안 미국의 여러 주를 거치며 생활했는데 메릴랜드 지방에 머무르던 중 토지의 독과점이 얼마나 큰 폐해를 가졌는지에 고심을 하다 자신의 고민과 철학을 보드게임으로 담아냈다.


  • '지공주의'(Georgism) 철학을 설파한 헨리 조지

마지는 평소 헨리 조지의 ‘지공주의’ 철학에 큰 관심과 지지를 표방하고 있었는데, 지공주의는 곧 모든 사람이 토지에 대한 권리를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는 소득 분배 개념이자 토지 공공임대제의 원리이기도 했다.


마지가 1904년 특허를 내며 <지주 게임>이라고 이름 붙인 보드게임은 꽤 복잡한 방식으로 설계되었지만, 게임의 본질적인 유희를 간직한 채 수십 년 동안 쉬운 방향으로 개선되며 마지가 들르는 지역마다 친목과 화합의 도구로 쓰였다.

  • 엘리자베스 마지의 초상이 들어간 <지주 게임>, 출처: magiesterrext.wordpress.com

1932년 필라델피아의 한 남성도 그들의 집에 들른 친구 부부를 대접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지주 게임>을 펼쳐놓고 한바탕 화목한 추억을 쌓았던 모양이다. 문제는 그 부부 중 한명이 찰스 대로우였다는 점이지만 말이다.


1936년이 되어 게임의 저작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파커 브라더스 측은 뒤늦게 엘리자베스 마지와 저작권 합의를 하여 <지주 게임>의 판권을 사들이는가 하면 마기가 만든 또 다른 게임들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40년 뒤 파커 브라더스의 <모노폴리>가 전혀 다른 법정 분쟁에 시달리게 되기까지 대중에게 밝혀지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그 변종 <브루마불>로 인기 높은 <모노폴리>는 전형적인 자본 독과점 게임이지만, 그 원형이 되는 <지주 게임>은 오히려 토지와 자본 독과점에 대한 폐해와 방어를 고민하면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물론, 그 모든 개념을 당시 직업은 물론 교육의 혜택도 누리기 힘들었던 여성이 고안했다는 것까지 포함해서.

디지털 게임의 역사를 바꾼 <미스터리 하우스>

  • 시에라 엔터테인먼트의 첫 게임이자 최초의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 <미스터리 하우스>

미국의 디지털 게임 문화는 1979년 하나의 분기점을 맞는다. 시에라 엔터테인먼트라는 작은 회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해였다. 


IBM 전속 프래그래머로 뛰어난 프로그램 개발 능력을 발휘하던 켄 윌리엄스는 일과 후 가정에서도 금융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하고자 창업을 한다.


게임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그림 한 장 없이 텍스트로만 이뤄진 어드벤처 게임 하나를 실행을 해보자 재미를 느끼게 된 켄은 곧 자신의 동반자 로베르타에게도 그 게임을 권했다. 


로베르타 윌리엄스는 컴퓨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지만 본래 모험과 동화를 무척 좋아하는 공상가였기에 켄보다 더욱 빠져들어 가며 그 텍스트 게임의 단점을 파악해나갔다. 

  • 애플 II 컴퓨터

크리스마스를 맞아 당시 인기의 중심이었던 애플II 컴퓨터를 구입한 켄은 자신의 금융 관련 프로그램 개발 외의 시간에는 로베르타가 컴퓨터로 새로운 텍스트 어드벤처를 즐길 수 있도록 시간을 분배했는데 그 몇 주가 지나자 그의 인생이 바뀌는 사건을 겪게 됐다.


‘텍스트 어드벤처’에 글이 아니라 그림이 표시되면 참 좋겠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던 로베르타가 그래픽 처리 능력이 거의 없는 프로그래밍 도구의 텍스트를 이용해 마치 글자를 그림처럼 활용해 출력하는 방식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 아예 자신이 각본을 써서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완성해버렸기 때문이다.  


로베르타는 7살과 1살의 애들을 돌보는 와중에 아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 방식으로 <미스터리 하우스>라는 이름의 추리소설 형식 어드벤처 각본을 구상해냈다. 


그리고는 켄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문자만으로 이뤄지는 어드벤처 장르에 문자를 그림처럼 표현한 이 게임을 만들어서 내놓아보면 그게 흥행이 되든 안 되든 참 재미있고 색다른 일 하나를 선도해보는 것 아니겠냐며. 

  • 로베르타 윌리엄스, 출처: sirerramuseun.com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은 문자로만 이뤄져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켄이었지만 그 역시 로베르타의 열띤 설득과 집안일 와중에도 완성한 놀라운 시나리오에 감탄한 나머지, 두 부부는 일과를 멈추지 않으면서도 결국 석 달 동안 <미스터리 하우스>를 만들어나갔다.  


마침내 완성된 게임은 화가였던 로베르타의 어머니가 유화로 멋지게 장식한 커버가 곁들여져 그림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되었고 게임은 부부가 상상한 모든 긍정적인 희망 곡선을 넘어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게 되었다.


  • 최초의 그래픽 어드벤처, <미스터리 하우스>

만약 1년에 4만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면 아늑한 통나무 집으로 이사가 애들과 웃으며 살자던 부부의 소망은 <미스터리 하우스>가 첫 출시연도에 16만 달러가 넘는 수익이 나자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실현될 수밖에 없었다.


몇만 명의 팬들이 게임을 하루라도 빨리 사고 싶어 집에 전화를 해대는 통에 그만큼 이사가 급했기 때문이다.


시에라 엔터테인먼트는 그 이후에도 이어진 로베르타의 독창적인 게임들, 이를테면 <킹스 퀘스트> 같은 모험 게임의 흥행에 힘입어 세계 굴지의 게임 제작사이자 유통망이 되어 더 많은 게임 제작자들의 요람 역할을 하기도 했다.

  • 시에라 엔터테인먼트의 현재 로고

로베르타 윌리엄스는 1999년에 은퇴했지만, 그가 활약한 20년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디지털 게임 역사에 크고 작은 변혁이 이뤄진 황금기가 되었다.


시에라 엔터테인먼트가 키워나간 게임 제작사 중 하나가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로 굴지의 걸작들을 내놓은 블리자드라는 것을 고려하면 로베르타가 부엌에서 그의 아이들과 육아의 씨름을 하며 종이에 그려나간 게임 하나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루게 된 것인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렇듯 수많은 게임 문화사의 뒤편에는 뜻밖에 그 시대의 남성들에 비해 형편없이 열악한 환경을 마주하고 있었던 여성들의 활약이 있었다. 


여성들은 결코 게임문화에 흥미가 없거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쏟아지던 편견 어린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게임 챔피언의 깨지지 않은 기록

  • 도리스 셀프, 전무후무한 여성 게이머. 출처: thehightechsociety.com

디지털 게임문화는 게임을 만들고 구성하는 분야뿐 아니라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는 측면도 매우 중요하기에 게이머의 역할이 날이 갈 수록 커지고 있으며 어느새 프로게이머라는 직업군이 더는 새롭고 낯설지는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그 분야에서도 일찍이 한 여성이 불후의 기록을 세운 적이 있다. 


게임 비평가이자 게이머였던 도리스 셀프는 1983년 파커브러더즈와 코나미가 같이 내놓은 <큐버트>라는 아케이드 게임이 인기 게임 <팩맨>의 뒤를 이어 아케이드 센터를 채워나가기 시작했을 때 벌어진 ‘비디오 게임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 최근 안드로이드 게임으로도 출시된 <큐버트>

‘비디오 게임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게임 분야에 있어서 기네스북의 구실을 하던 대회로 실제 기네스북에 오른 게임 점수 관련 기록은 ‘비디오 게임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통해 산출된 것이기도 하다. 


도리스 셀프는 1984년 이 대회에 출전해 <큐버트>의 최고기록을 만들었는데 이는 기록과 더불어 매우 유명한 사건이 되었다.


성별도 성별이지만 도리스 셀프의 나이가 당시 58세였기 때문이다. 도리스 셀프의 기록을 깨고자 수많은 경쟁자들이 나타난 덕분에 <큐버트>는 그 게임의 전성시대를 훌쩍 넘겨 2006년까지 끊임없이 도리스 셀프와 그 경쟁자들이 게임 기록을 겨루는 이색적인 행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도리스 셀프는 게이머이기 이전에 미국 최초의 항공기 승무원이기도 했다. 


항상 새로운 분야에서 모험과 탐구심을 드러냈던 그의 지치지 않던 정열이 50세를 넘어섰을 때 남성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아케이드 게임에서도 잊히기 어려운 기록을 이룩했던 것.


도리스 셀프의 꾸준한 도전 기록은 그가 교통사고로 81세에 숨지기 전까지 디지털 게임 문화 사상 ‘가장 오랫동안 게임 챔피언이었던 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도리스 셀프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후 10년이 지난 오늘 최고의 인기 디지털 게임 오버워치 리그에서 ‘게구리’ 게이머가 받았던 질시와 항의는 여전히 ‘여성이 게임문화 혹은 주류 문화에서 상대적으로 재능이 떨어진다’는 근거 없는 사회적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게임 문화 역시 특정 성별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게임 문화는 결코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훌륭하고 풍성한 게임문화에 기여하는데 여성들의 활약은 대단하다 못해 눈부신 성과를 이뤄왔다. ‘여성이 저 정도를 해내다니 참 대단하다’는 칭송 또한 그들에게는 역시 불명예스러운 편견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연약하면서 게임에 어려움을 느끼는 여성인데도 대단하다.’라는 평가가 아닌 ‘그토록 열악한 사회환경에서도 이런 성과를 이루다니 대단하다’는 평가라면 모를까 말이다.  


‘게구리’에 쏟아졌던 조롱과 질시는 게임문화에 관련된 인구 전체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까.


굳이 1903년부터 게임 문화사에서 큰 활약을 보여온 몇 영웅들의 이야기를 꺼낼 필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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