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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쓰다듬는 악당들

조회수 2016. 10. 12. 17: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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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의 팔에는 귀여운 고양이가

위기와 함정을 벗어나는 주인공의 소식에 조소를 흘리며 ‘후후 하지만 다음 계획이 있지.’라는 자신감 넘치는 대사를 뱉는 악당 두목의 카리스마.


그런데 그 악당의 팔에는 모순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어쩐지 귀여운 고양이가 안겨 재롱을 피웁니다. 


악당 두목 하면 이제는 흔한 클리세로 자리 잡았을 정도의 악당과 고양이의 관계, 과연 언제부터 악당 세계에서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이 유행으로 번졌을까요?


불멸의 이순신에도 등장하는 악당과 고양이 


  • '불멸의 이순신' 중, 왜장 와키자카와 이름 모를 고양이

꽤 히트했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2004)에서는 악역 왜인 장군이 터키산 앙고라 고양이를 품에 안고 쓰다듬습니다. 


방영 당시에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도 한편 열심히 괴롭히는 모습도 보여 구설에 오르내리기도 했는데요.


아마 국내 방영 제작물에서는 처음으로 고양이를 쓰다듬는 악당이 등장해 더욱 인상적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고양이와 악당의 콤비 플레이는 실사 영상에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만화이자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개구쟁이 스머프'에서는 마법사 가가멜이 각각 애묘 아즈라엘과 찰싹 붙어 다니죠.


  • ©Hanna-Barbera Productions, Inc. '개구쟁이 스머프'(1981-1989, 애니메이션) 의 가가멜과 아즈라엘

'대부'의 명장면을 만들어낸 고양이 시퀀스

  • 1972년 영화 '대부'를 조종하는 고양이

영화사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나타나는 악역은 아마도 1972년 영화 ‘대부’의 돈 비토 콜리오네 일 겁니다.


폭행당한 딸의 복수를 해달라고 찾아온 장의사 보나세라와 비토 콜리오네가 만나는 장면에서 비토 콜리오네 역을 맡은 말론 브랜도는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사람까지 포용하며 친구로 만드는 카리스마를 선보이는데요. 


그 오프닝 시퀀스에서 말론 브랜도는 고양이를 1분이 넘도록 쓰다듬으면서도 긴 대사를 무게감 있게 말해, 영화의 균형이 고양이와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는 명장면을 만들어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재롱 피우는 고양이 장면이 원작 소설은 물론 실제 대본에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촬영장을 어슬렁거리던 주인 없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고 감독은 즉석에서 고양이를 안은 돈 비토 콜레오네의 모습을 떠올렸고, 감독의 주문에 따라 말론 브랜도는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대부의 카리스마를 뿜어냈던 것입니다. 

  • 알고 보면 고양이 집사로 젊은 시절부터 프로의 경력을 쌓아온 말론 브랜도였다.

007과 블로펠드 그리고 고양이

대부의 오프닝 시퀀스가 보여줬던 고양이와 악당은 사실 그 원조가 따로 있습니다.


바로 007시리즈인데요. 


이언 플레밍의 스파이 소설을 원작으로 1962년부터 제작된 007시리즈에는 처음부터 흑막 뒤의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 '두 번 산다'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 '여왕 폐하 대작전'의 블로펠드 삼총사.

바로 에른스트 스타블로 블로펠드 라는 인물인데요.


1962년 ‘살인번호’에서는 극 중 언급만 되지만, 1963년 ‘위기일발’에서 페르시아고양이 ‘솔로몬’을 쓰다듬는 상반신으로 나타나 신비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 스펙터의 수장 블로펠드와 그를 집사로 부려먹는 고양이 솔로몬.

‘위기일발’에 등장했던 블로펠드와 페르시안 고양이는 너무나 뚜렷한 각인을 대중에게 심는 데 성공했고, 그 다음 편에는 나오지 않아 일회성으로 그치는가 했지만 1965년 ‘썬더볼 작전’에서 다시 얼굴을 가린 채 고양이를 쓰다듬는 모습으로 등장함에 따라, 악당의 확실한 상징성으로 자리 잡게 됐죠.

  • 부하를 야단치면 고양이가 깰까 봐 조심스러운 집사 블로펠드(도널드 플레젠스, 1967)

1967년 ‘두 번 산다’에서는 조금 분위기를 바꾼 채 새로운 배우인 도널드 플레젠스가 확실하게 얼굴도 보이고 민머리의 개성까지 추가하지만, 여전히 블로펠드는 고양이를 쓰다듬는 악인입니다.

  • 부하에게 들키지 않게 고양이를 쓰다듬는 블로펠드(텔리 사발라스, 1969)

1969년 ‘여왕 폐하 대작전’에서는 다른 배우인 텔리 사발라스가 고양이를 쓰다듬는 민머리 블로펠드로 등장하죠, 하지만 1971년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와 1983년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서는 각각 찰스 그레이와 막스 폰 쉬도우가 민머리가 아닌 풍성한 머리숱과 함께 등장하는데요. 결국 악당을 돋보이게 하는 상징은 고양이 하나만으로 충분했던 게 아닐까 합니다.

  • 풍성해진 머리털로 고양이 집사가 된 블로펠드(찰스 그레이, 1971)
  • 고양이를 위해서라면 세계 정복도 할 것 같은 집사 블로펠드(막스 폰 쉬도우, 1983)

프란시스 코폴라같은 감독 역시 은근히 007시리즈의 블로펠드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 대부의 명장면을 고양이 악당으로 장식하게 되었던 셈이고요.


007의 블로펠드가 고양이를 쓰다듬는 설정은 대부뿐 아니라 많은 작품에 일종의 클리세 혹은 패러디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형사 가제트'와 '오스틴 파워'의 패러디

1983년 미국과 캐나다 합작으로 만들어진 TV 애니메이션 ‘형사 가제트’에 등장하는 악의 조직 ‘매드’의 수장 닥터 클로우는 그의 고양이에게 ‘매드캣’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애지중지합니다. 


1999년의 실사판 ‘형사 가제트’에서는 다채로운 털 색깔의 매드캣이 하얀 페르시안 고양이로 바뀌어 더욱 전형적이고요.

   



  • 애니메이션에서는 하얗지 않았지만, 실사에서는 솔로몬과 비슷해져 버린 매드캣.

SNL에서 손꼽히던 코미디언 마이크 마이어스가 일인다역으로 주연한 코미디 영화 시리즈 ‘오스틴 파워’(1997)에서는 역시 007의 패러디 영화답게, 악역 두목 닥터 이블 역시 고양이 ‘비글워스’를 안고 나타나 많은 웃음을 안겨줍니다.

  • 오스틴 파워의 무서운 악당 집사 '닥터 이블'과 그의 지배자 '비글워스'.

안 보이면 섭섭할 존재, 악당 곁의 고양이

그 외에도 1990년대 말부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포켓몬스터’에도 역시 그 악역인 로켓단의 보스 ‘비주기’가 ‘페르시안’이라는 포켓몬을 쓰다듬는 모습을 보이죠.

  • 로켓단 두목 '비주기'를 귀여움으로 위협하는 포켓몬 '페르시안'

이렇듯 악당과 고양이의 친밀한 모습은 악당의 상징을 돋보이는 클리세이면서도 어쩐지 악당의 마음 한구석에도 동물을 좋아하는 따스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비추는 일종의 인간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전형적이다 못해 대중문화에서 빠지면 어쩐지 섭섭한 관계가 아닐까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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