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래빗의 탄생과 비화

조회수 2016. 8. 28. 17: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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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 www.peterrabbit.com

피터 래빗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Credit: MagnoliaPhotos/Alamy

한 여성의 좌절된 균류 연구

1897년 한 영국 여성이 야생 버섯에 대해 관찰과 연구를 한 끝에, 버섯 같은 균류 중 특정한 종류는 발아하기 위해 다른 생물과 공생관계를 이룬다는 이론의 논문 ‘On the Germination of the Spores of the Agaricineae’를 완성해 린네 학회의 문을 두드렸다.


런던 린네학회: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의 이름을 따 1788년 설립된 분류학 전문 학회

런던 린네 학회는 생물 분류학에서 확고한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학회로 인정받는 기관이지만, 당시 그 논문은 여성이 썼다는 이유로 학회에서 발표조차 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사려 깊고 친절했던 중견의 균류학자(*)가 그나마 논문을 대신 맡아 발표와 낭독이 이뤄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논문은 다른 무엇보다 아마추어 여성의 연구라는 점 때문에 과소평가되었으며 그 연구와 이론은 별다른 고찰도 없이 쉽게 부정되었다.


* 조지 에드워드 마시(1845-1917)는 포터가 왕립 식물원에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힘쓴 조력자였으며 해당 식물원의 부원장이기도 했다.

여성은 그 논문을 만들기위해 버섯 자료의 다양한 샘플 채집은 물론 세밀하고 사실적인 버섯 그림들을 방대하리만큼 그렸기에, 그를 아까워한 동료들의 권유로 그림을 포함한 관련 자료들을 모두 박물관에 기증했다.


 Armitt Museum 에 기증된 포터의 버섯 연구 삽화

공들여 연구했던 버섯 자료들을 제대로 된 책으로 펴내고 싶었던 여성의 바람은 뒤늦게나마 이뤄지게 되었는데, 1967년 균류학자 핀들레이가 ‘도로변과 숲 속의 버섯’이라는 저서를 출간하면서 그 그림들을 책에 실어 긴 세월이 지나서도 여전히 아름답고 정확한 버섯 그림과 연구들 역시 알려지게 되었다.


1967년 출간된 버섯 전문서, '도로변과 숲속의 버섯'. 표지부터 본문까지 베아트릭스 포터의 삽화를 채용했다.

한편, 논문이 푸대접을 받은 뒤 100년이 지난 1997년이 되어서야 린네 학회는 당시 학회가 성차별적인 시선으로 말미암아 논문과 연구를 평가절하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렇게 좌절된 어떤 여성학자의 꿈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꽃을 피웠다. 1901년 그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동화 ‘피터 래빗 이야기’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특이한 유년 생활

베아트릭스 포터는 상당히 특이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무척 딱딱하고 엄숙한듯한 집안 구조와 비교하면 그가 무엇에 관심을 두든지 간에 그 기호에 대해서는 간섭을 받지 않았다. 우선 베아트릭스의 아버지인 루퍼트 포터부터가 법정 변호사로서 완고하고 보수적이었던 반면에 그와 어울리던 친구나 인사들은 거꾸로 무척 진보적인 사람들이었던 까닭이었다.


그런 모순적이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에 힘입어 베아트릭스는 부모의 허락도 받지 않고 토끼나 다람쥐를 자신의 방에 들여 친구로 삼으면서 엄격했던 대인관계와 별개로 동물 친구들과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다. 


유복했던 베아트릭스의 가족들은 베아트릭스가 어릴 적부터 해마다 여름에 긴 휴가를 잡아 스코틀랜드의 휴양지에서 여러 달을 머무르곤 했는데, 그때부터 베아트릭스는 남동생과 함께 산과 들에서 동물들을 쫓고 식물을 관찰했다.


방안에서 마주하던 애완용 동물이 아닌 야생의 자연과 동물을 가까이하게 된 베아트릭스는 숲에서 만나는 동물들의 그림을 스케치북 한가득 채워가며 자신만의 동화를 꿈꿔갔다.


베아트릭스가 10대 중반이 되었을 때 그 가족들이 즐겨찾던 스코틀랜드 휴양지는 갑작스럽게 그 별장의 새로운 주인이 높은 임대료를 부르는 바람에 포터 씨네 가족들은 새로운 곳을 물색해야만 했는데,


그렇게 찾게 된 잉글랜드의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그 이후 십수 년 동안 포터 씨네 가족들의 새로운 휴양지가 되어주며 베아트릭스에게 더 깊고 그윽한 자연의 삶을 선사했다.

엉뚱한 젠트리피케이션 효과가 베아트릭스에게 멋진 경치를 선물함은 물론 그가 이후 그리게 되는 그림과 서사에 생생한 자연 이야기를 불어넣게 된 것이다.


레이크 디스트릭트 풍경, via Wikipedia

자연과 동화의 세계에 들어가다

항상 도시생활보다 자연의 삶을 동경하던 베아트릭스는 20대에 이르자 균류에 대해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고 동시에 그가 그때껏 그리던 그림과 좋아하던 셰익스피어 문학의 영향을 받은 문체에 동물에 대한 그림을 곁들여 독특한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지만, 많은 출판사가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채 퇴짜만 놓아댔다.


그러던중 린네 학회로부터 소중한 연구마저 부정되자 베아트릭스는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레이크 디스트릭트 휴양지에서 여름마다 만나며 절친이 되었던 목사 하드윅 론슬리가 베아트릭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출판사들에게 계속 거절을 당하기보다 그냥 자비로 책을 낸다면 독자들이 직접 그 동화를 알아봐 줄 것이라고 독려한 것이다. 베아트릭스는 자신이 구상했던 소재들을 다시 돌아보며 고른 끝에, 여러 해 전 가정교사의 5살짜리 아이가 아팠을 때 그 아이를 위로하고자 그렸던 네 마리 장난꾸러기 토끼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었다. 


1901년 자비 출간된 '피터 래빗 이야기' 판본

그렇게 책으로 나온 피터 래빗의 초판 250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동이 나버렸고 다시 200부를 추가 제작했지만 왜 이렇게 책을 구하기 어렵냐는 원성만 들을 정도였다.

그제서야 출판사와 계약이 이뤄져, 그 다음해에는 출판사의 더 고급스러운 판형으로 8천 부의 초판이 제작되었지만, 그 역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한 해 동안만 5만 부의 피터 래빗 이야기가 독자들의 손에 들어갔다.  


피터 래빗은 베아트릭스 자신에게도 날개를 달았다. 30대 중반이 지난 미혼여성으로 구설에 오르내리던 자신을 마침내 런던 집으로부터 독립시킬 수 있었으니까.



출판사의 '피터 래빗 이야기' 1902년 초판본

피터 래빗과 친구들의 연이은 등장


1906년 출간된 제레미 피셔 선생 이야기.

그와 동시에 베아트릭스에게는 큰 아픔도 있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약혼한 출판사의 직원이자 후계자가 결혼을 앞두고 악성 빈혈로 말미암아 곧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아픈 마음을 안은 베아트릭스는 런던의 집과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휴양지를 왕복하며 더욱 자연 속으로 도피하게 되는데, 그 무렵 호수 근처 니어 소리(Near Sorei) 지역과 그 언덕 ‘힐탑 농장’이 마음에 들어왔던 그는 지역 변호사의 여러 조언을 따라 힐탑 농장을 비롯한 여러 곳을 사들이며 그의 새로운 작품 공간으로 바꿔나갔다. 


그 10년 동안 소리 지역과 힐탑농장을 중심으로 베아트릭스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가장 뛰어난 걸작들로 평가받게 되었다. 


베아트릭스는 런던의 집을 정리하고 아예 레이크 디스트릭트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 지역사회와 부동산에 대해 꾸준하고 성실하게 조언했던 변호사와 결혼한 뒤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는 운동에 그의 나머지 삶을 바쳤다.


1910년 출간된 티틀마우스 아주머니 이야기


1913년 베아트릭스 포터는 윌리엄 힐리스와 결혼했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남긴 동화와 자연의 꿈


레이크 디스트릭트 호수 풍경 via Wikipedia

호수 지역으로 삶의 중심을 옮긴 뒤에는 시력이 너무나 약해져 정교한 그림은 물론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 조차 힘들어했던 베아트릭스는 동화작가로서의 활동을 더 이어나가지 못했지만, 자신이 그때껏 그려냈던 동화 속의 풍경을 실제 자신의 삶으로 재현해나가기 시작했다.


자연과 사람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삶, 누구도 서로 차별하지 않고 공생하는 사회가 그녀가 평생 그려나가는 꿈이자 실천의 바람이 되었다. 1943년 베아트릭스가 눈을 감았을 때 그 이름으로 된 부동산 대지만 500만 평에 드넓은 농장, 셀 수 없이 많은 아름답고 작은 집들이 그 지역 사회에 고스란히 남았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아꼈던 힐탑농장 via National Trust

베아트릭스가 평생 동화책으로 일궈낸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영국의 첫 국립공원이 되었고, 피터래빗과 그의 친구들 이야기는 책으로 애니메이션으로 그리고 훌륭한 뮤지컬로 재탄생되며 여전히 수많은 사람을 매혹하는 인류의 문화유산이 되었다.


150년 전 태어났던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성실한 버섯 연구가 폄하된 것이 최고의 아동문학으로 평가받으며 세계적으로 1억5천만 부가 넘게 팔리게 된 동화책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로도 읽히는데,

페미니즘도 그 의미 중 하나라는 것을 부정하기기는 어렵다.


베아트릭스 포터(1866-1943) via National Portrait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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