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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주년을 맞아 돌아보는 3월 1일 삼일절에 대한 이야기

슬라이디 작성일자2019.02.26. | 358  view

2016년 2월 24일에 개봉한 영화 귀향.

비록 영화 속 배경은 1943년에 벌어진 우리 민족의 아픈 이야기지만,

당시 일제의 잔혹성과 악랄함에 대해 고발하며 ‘역사를 잊으면 안된다.’라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때마침 다가온 3월 1일은 다시 한 번 그 교훈을 곱씹어보기 좋은 날이다.

우선 삼일절의 사전적 의미는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1919년 3월 1일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저항하여 전 민족이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으로 일제 강점기에 발생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의 식민지에서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 독립운동이기도 하다.

국외적으로는, 1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파리강화회의에서 외교독립론과 민족자결주의가 제창되었고

이에 직접적인 자극을 받아 우리 민족이 독립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표방해야 된다는 여론이 조성되었다.

일본 와세다 대학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2·8 독립선언문이 작성되었고

2.8 독립선언서의 영향을 받아 기미독립선언서가 작성되었다.

국내적으로는 고종황제의 갑작스런 승하에 독살 의심 소문이 퍼지게 되어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삼일운동을 통해 발현하게 되었다.

날짜를 정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고종황제 장례식 날인 3월 3일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불경하다는 의미로 33인 중 천도교 15인이 반대하였고,

다음 날 3월 2일은 기독교 16인이 주일인 일요일이라 난색을 표하여 결과적으로 3월 1일이 되었다.

애초에 삼일운동은 민족 대표들이 기미독립선언서를 태극기와 함께 인쇄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종로의 탑골공원에서 평화적 만세시위를 하자는 기획이었다.

그러나 민족 대표들은 낭독 장소를 갑작스레 태화관으로 변경하였고,

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들을 기다리다 못한 한 학생이 연단으로 뛰쳐나가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여 삼일운동이 시작된 것.

즉 3.1운동은 사실 상 어린 학생들이 주도한 운동이었던 것이다.

대한독립만세가 시작되었으나 일본은 우리에게 평화적으로 대하지 않았고 칼과 총으로 살상을 자행했다.

우리 민족은 한쪽 팔이 잘리면 다른 쪽 팔로 태극기를 흔들고 그마저 잘리면 입으로 흔들정도로 열렬히 일제에 저항했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독립에 대한 의지는

일제 통치 방식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꾸는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독립운동에 대한 자신감이 고취되어 국내적으로는 사회, 경제, 문화에 걸쳐 민족 운동을 벌였으며

국외적으로는 다양한 외교적 활동, 의거활동, 무장 독립투쟁이 일어나는 등 많은 영향을 끼쳤다.

결과적으로 독립 운동이 더 활발해지게 한 분수령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또한 3.1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더불어 인도 간디의 무저항 비폭력주의, 중국 천안문광장의 54운동 등 다른 나라의 독립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일제 치하속에 잃어버린 35년 간, 우리 민족은 정말 치열하고 아프게 일제에 저항했었고 마침내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았다.

1919년 3월 1일. 목이 터져라 외쳤던 '대한독립만세!' 한 마디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다시는 아픔의 역사가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그 날의 역사를 소중히, 소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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