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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지로 투어] 나만 알고 싶은 을지로 육회 맛집, 백제정육점

조회수 2019. 9. 20. 08: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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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골목, 전통 깊은 힙지로에서 만난 숨은 맛집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마치 목이 마르기 전에 물을 마셔야 한다는 말이 있듯 고기 생각이 나기 전에 이미 고기를 먹었어야 한다. 특히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혹한 혹서 기후 덕에 미국 해병대가 최적의 훈련 장소라고 밝힌 한반도에서 고기를 먹지 않고 여름을 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극기다. 


고기라고 하면 꼭 하얀 마블링이 박힌 한우 투뿔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강남 어딘가에서 남이 구워주고 남이 사주는 고기를 먹는 이들이다. 세련된 건물과 흡족한 서비스, 고급스러운 재료를 보면 역시 돈값을 한다 싶다. 그러나 자주 먹을 수 있는 값은 아니다.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어깨를 툭툭 쳐가며 가볍게, 흥겹게 먹을 수 있는 분위기 역시 아니다. 


친구의 집에 온 것처럼, 그의 부모처럼, 익은 김치를 내어주고 반갑게 인사하며, 너와 내가 함께 보낸 시간보다 오래된 곳에 앉아 고기를 먹는 그 정취는 또 이길 수 없다. 친구가 보고 싶을 때, 그런데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가 몇 주 전일 때,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을지로로 와라.”


시작은 종로5가의 ‘백제정육점’이다. 불판 앞에 앉는 것조차 짜증 나는 날, 백제정육점은 모두의 환영을 받는다. 북새통 같은 광장시장 육회 골목을 어슬렁거리지 말자. ‘정육점’이라는 든든한 이름을 단 이곳에 가면 입맛을 시원하게 돋우는 유일한 육회를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육회만 파는 집은 아니다. 육회를 시작으로 등심, 특수부위, 차돌박이 등 소의 전 부위를 먹을 수 있다. 하물며 설렁탕, 육개장 같은 식사 메뉴도 ‘일절’이다.

이 모두가 평균 이상이지만, 동계올림픽이 열리면 전 경기를 다 챙겨보더라도 쇼트트랙은 꼭 사수하듯이 이 집의 육회는 충분이 아닌 필수 조건이다. 육회가 테이블 중앙에 놓이면 이 말이 괜한 헛소리가 아님을 알게 된다. 


산처럼 수북이 쌓인 육회 위에 올라간 달걀노른자를 모임의 주선자가 술술 살살 고기에 섞어주면 맛의 밀도가 한결 짙어진다. 이에 서걱서걱 씹히는 깨소금과 설탕의 조합은 육회 맛의 비결이자 포인트다. 혹자는 ‘너무 달다’고 불평하기도 하는데 입맛을 돋우는 용도로 생각하면 절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사각사각 얼음과자 같은 소고기의 낮은 온도에는 오히려 입자가 씹히는 설탕의 단맛이 조화가 나쁘지 않다. 온도가 낮을수록 미각이 둔해지기에 어느 정도 강한 단맛은 맛의 설계에 필요하다. 

더불어 짧게 치고 끝나는 설탕에 배의 진득한 단맛이 섞이고 파의 알싸한 맛까지 엮이면 오색단청처럼 맛이 화려해진다. ‘육회’라는 두 글자 아래 담긴 맛의 스펙트럼이 만만치 않다.


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 정동현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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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프라퍼티 리징 2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의 핫한 먹거리를 맛보면서 혀를 단련 중!

저서로는 [셰프의 빨간 노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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