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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당시 '우주 경쟁' 승자는?

조회수 2018. 7. 2. 07: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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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과학자

1950~1970년대 미국과 소련은 냉전 진영의 각 대표들로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우주경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냉전 기간 미국과 소련의 문화, 기술, 이념적 대립에서 중요한 부분이 됐죠. 국민과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 모두 거액의 비용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Team_AOP
미국과 소련이 달 탐사한 지역 표시.

초기의 우주경쟁은 소련이 압도적이었습니다. 1957년 ‘스푸트니크1호’ 발사와 같은 해에 우주로 가는 최초의 포유류 ‘라이카(개)’를 태운 ‘스푸트니크2호’ 발사 그리고 1961년 ‘보스토크1호’에 타서 인류 최초로 지구궤도를 선회한 유리 가가린 등 ‘인류 최초’의 위업을 달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맞서 1958년에 유인 우주비행 계획 ‘머큐리 계획’을 시작했고 모든 우주 개발을 ‘미국 항공우주국(NASA)’으로 일원화시켜 우주 개발에 총력을 다 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경쟁이 빚은 우주 개발의 성과는 각국 국민에게 큰 자부심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양측의 이념 대립이 치열했기 때문에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우주비행사가 달 표면에 발을 내 딛을 때까지는 우주경쟁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련은 달 탐사 계획인 ‘루나계획’에 도전했습니다. ‘루나1호’를 시작으로 1959년 ‘루나2호’가 달 표면에 충돌하여 세계 최초로 달 표면에 인공물을 보내게 됐죠. 1966년에는 ‘루나9호’를 달 착륙에 성공시키면서 미국에 앞서게 되었습니다.

한편 미국은 ‘아폴로 계획’에서 유인 우주선이 안전하게 달 궤도에 도착하고 착륙할 수 있도록 달 사진을 근접 촬영하는 ‘레인저 계획’을 마련합니다. 달 지도를 제작하는 ‘루나 오비터 계획’과 달 토양의 경도 및 조성등을 탐사하는 ‘서베이어 계획’도 실행했습니다. 

최초로 인간이 만든 물체를 다른 천체로 보내고 최초로 인류를 우주 공간으로 보낸 소련. 최초로 인간을 다른 천체에 보내고 인류를 가장 많이 우주로 보낸 미국. 과연 둘 중 승리자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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