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구분이 당연한 게 아니다?

조회수 2017. 7. 4. 10: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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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과학자
영화 <겟아웃> 중 여친 집에 놀러가는 두 사람

얼마 전 영화 <겟아웃>으로 인종 갈등 문제가 새삼 조명받았습니다. 영화의 반전도 반전이지만 흑인들이 받았던 차별과 폭력이 얼마나 끔찍한지 피부에 와닿았다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출처: CBC CANADA

2016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는 8월 12일, 수영 역사에 획을 긋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자 수영의 시몬 마누엘(Simon Manuel, 미국) 선수가 흑인 선수 최초로 여자 수영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겁니다. 


다양한 운동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는 흑인이 유독 지금까지 수영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시몬 마누엘의 금메달은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시몬 마누엘은 경기를 마치고 인터뷰에서 자신을 ‘흑인 수영선수’가 아닌 그냥 ‘수영선수’ 라고 부르는 날이 왔으면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무심코 ‘흑인은 농구와 달리기를 잘 하고, 음악에 소질이 있어’ 또는 ‘역시 아시아인, 황인들은 공부 잘 하고 암기력이 뛰어나’ 같은 말을 하거나 듣곤 합니다. ‘흑인’, '황인(또는 아시아인)', ‘백인’ 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죠. 원래 인간이 크게 세 가지 인종으로 구분돼 있으며 각 인종 고유의 특성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백인, 황인, 흑인. 인간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걸까요? 

유전적으로 인종 설명 어려워

인간이 서로 근본적으로 구분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유전자를 들여다 봐야 합니다. 인간이 타고나는 기본적인 특성, 기질, 외모의 차이는 유전자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현대 생물분류학은 유전적인 차이에 근거하여 생물을 분류하는데 중심 개념으로 '종(種, species)'이 있습니다. 종은 각 생물을 분류할 때 가장 근본이 되는 단위집단(basic units)입니다. 종 내에서 더 작은 변이들을 나타내는 집단을 아종(subspecies)으로 따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종과 아종에 대해서는 기사 말미에서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근대 인류학은 현생 인류를 종과 아종의 생물학적 개념을 가져와, 흑인(Nigroids), 황인(Mongoloids), 백인(Caucasoids)의 3집단으로 분류하고 유전적으로 이들 사이의 차이를 밝히려고 노력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20세기에 인종간의 차이를 유전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 명예교수이자 저명한 집단유전학자인 카발리-스포르차(Luigi Luca Cavalli-Sforza) 교수는 그의 저서 <인간 유전자들의 역사와 지리학 The History and Geography of Human Genes, 1994>에서 이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었습니다. 


스포르차는 지난 50여년간의 인종간 유전적인 변이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 연구를 통해 인간은 각각의 인종으로 구별되기에는 차이가 없는 유전체를 공유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출처: The racial diversity of Asia's peoples, Nordisk familjebok (1904)

스포르차 교수는 인종이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완전히 임의적 구분이라고 주장합니다. ‘인종을 나누는 기준이 피부색이라면, 눈 색깔이나 심지어 발가락 길이로도 인종을 나눌 수 있다’는, 이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백인종, 황인종은 과학적으로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생물학적으로 인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포르차 교수는 일갈합니다("Biological races do not exist among human").  


그럼 우리의 생김새는 왜 그렇게 다르게 느껴질까요? 그것은 우리가 특정한 외면의 차이, 예를 들면 특히 피부색 등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스포르차 교수와 현대 생물학자들은 한 종 내에는 다양한 종류의 변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의 피부색과 외모 등의 차이는 같은 종 내에서 나타나는 연속적인 변이일 뿐이라고 하는데요. 


생물학자 알베르 자카르(Albert Jacquard)는 그의 저서 <Tous Pareils, tous differents, 199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인종’에 의해 절대 구분할 수 없다. ‘인종’ 을 구분할 수 없는데 어떻게 ‘인종주의자’ 가 될 수 있겠는가?” 

흑인은 원래 달리기, 농구, 힙합 잘하고 수영을 못한다?
출처: giphy.com
흑인들이 농구를 잘하게 태어난게 아니라고, 그냥 내가 잘하는 거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다르게 ‘흑인’ 이라고 부르는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로버스 서스만(Robert Wald Sussman)은 그의 저서 <인종 신화 The Myth of Race>통해 마치 ‘인종 특성’ 처럼 보이는 특성은 실제로는 개인의 능력이 특정한 사회 집단의 영향 때문에 형성되지 인종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육체적인 힘, 시력, 체형, 지능 등은 한 개인의 특성이지 유전적으로 어느 집단과 연관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출처: http://archive.thebreman.org

논문<A sport at which jews excel : Jewish Basketball in American Society, 1900-1951, Ariel Sclar, 2008>에 따르면 실제로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농구는 흑인보다는 유대인의 스포츠라고 여겨졌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미국 애틀랜타의 'Jewish Progressive Club' 소속 농구팀의 사진입니다. 당시 미국 농구선수의 70% 정도가 유대인이었는데요. 이 시대의 기준에 따른다면 유대인들은 농구에 유전적으로 탁월한 '종'처럼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뉴욕 타임즈>의 한 기자는 '농구는 지능적인 플레이가 요구되기 때문에 유대인의 기민하고 계산적이며 잔꾀가 많은 기질이 농구에 유리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지금은 거짓이라는 걸 압니다. 이 시절 직업으로서의 스포츠는 상류 계층에 한해 허락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이었던 흑인이 농구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흑인 농구선수가 처음 NBA 프로농구에 등장한 게 1950년의 일입니다. 흑인들이 농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로 보시면 됩니다. 


수영도 마찬가지입니다. 2010년 영국 <BBC> 조사를 보면 수영에서 흑인이 신체적으로 부력이 작아 불리하다는 설이 있었지만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신 흑인이 수영에서 부진한 이유로 과거 미국의 인종차별 때문에 흑인이 제대로 된 수영 교육을 받지 못했던 역사적 배경이 꼽힙니다. 흑인 수영 선수를 키우기 위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에 수영 선수로 성장하는 기회가 적었다고 조사 결과는 말해줍니다. 

'인종', 차별적이다
출처: giphy.com

인종이라는 표현이 서구인 중심적인 생각에서부터 나온 차별적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자연인류학자 로버스 서스만(Robert Wald Sussman)에 따르면 인종이라는 단어는 15세기 스페인에서 이단을 심문할 때 생긴 개념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제국주의 식민지화 바람을 타고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다고 하는데요. 식민지에 사는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할 때 주로 활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현지인이 왜 유럽인과 외모, 언어, 생활방식이 다른지 설명될 필요가 있었던 거죠. 


출처: https://actesbranly.revues.org/262

로버트 서스만의 저서 <인종 신화 The Myth of Race>에 따르면 이 당시 ‘이방인들’ 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가설이 제기되었고 이는 '인종'의 개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첫째는 인류 단일 조상설(monogenism)입니다. '이방인들' 또한 신이 창조하였으나 문명에서 멀어져 퇴보하였다는 이론입니다 . 두 번째는 '이방인들' 이 성경에 나오는 인류의 기원인 아담(Adam)이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다원설 또는 전-아담설(polygenism or pre-Adamites)이 그것입니다. 


이 두 가지 중심 생각 모두 서구인들과 이방인들은 서로 다르다는 차별적인 전제로부터 도출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즉 인종이라는 개념이 ‘백인’ , 곧 서구인들과 이방인들을 구분짓기 위해 생겨난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종과 아종, 서로 다른 생물 분류하기

어떤 집단을 같은 종으로 묶을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이견이 있었지만 현대 생물분류학에서는 일반적으로 1940년대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가 제시한 개념이 통용됩니다. 마이어는 종을 ‘상호 교배가 가능’ 하며 다른 종과 ‘생식적으로 격리’ 되어 있는 집단이라고 정의합니다. 같은 종이라면 서로 교배해 생식력이 있는 자손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와 고릴라는 서로 생식하여 자손을 낳을 수 없으므로 같은 종이 아닙니다. 호랑이와 사자는 아주 낮은 확률로 ‘라이거’ 를 낳을 수 있지만 실제 자연계에서 이런 교배는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라이거’는 생식 능력이 없는데요. 이 때문에 호랑이와 사자는 서로 다른 종으로 분류됩니다. 


이 분류법에 따르면 인간은 상호 교배하여 생식력 있는 자손을 낳을 수 있으므로 어떤 인종이든 같은 종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종은 다시 아종으로

위에 예시를 든 셰퍼드나 허스키처럼 같은 종 내에서도 생김새나 습성이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더 세분화된 분류가 필요합니다. 국제동물명명규약(International Code of Zoological Nomenclature)에 따르면 종보다 작은 단위로 아종(subspecies)이 있습니다. 


아종은 같은 종으로 구분되지만 지리적으로 격리된 채 오랜 시간이 흘러 유전적으로 차이가 확연한 집단에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코끼리 내에서 동아프리카 코끼리, 남아프리카 코끼리는 아종으로 분류됩니다. 변종(variety)은 진돗개와 풍산개처럼 아종보다는 작은 변이를 지닌 집단을 일컫습니다. 


종보다 작은 유전적 차이는 FST score 라는 유전학적 지표를 사용하여 측정할 수 있습니다. FST score는 0부터 1 사이의 값을 지니며 값이 클수록 유전적으로 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FST score가 최소 0.3이상이 되어야 진돗개, 풍산개, 삽살개와 같이 변종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 전체의 FST score는 고작 0.157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아종보다 작은 단위로 세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학명은 Homo sapiens sapiens 로서 60억 모든 인류는 유전학적으로 단 하나의 종인 sapiens 종에 속하며 또한 단 하나의 아종인 sapiens 아종에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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