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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카메라 속 '신뢰 게임' 승자는?

조회수 2019. 12. 5. 07: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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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과학자

결혼을 앞둔 한 커플. 여자친구는 남자친구와의 사랑과 신뢰를 확인하기 위해 실험 카메라를 의뢰합니다.

실험 카메라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자친구가 식당에서 술을 마실 때 친구인 '도움남'이 '작업녀'와 작업녀의 친구를 부릅니다. 작업녀는 예쁘장한 외모로 무장하고 실험 대상인 남자친구를 유혹하죠. 의뢰인 여자친구는 모든 상황을 카메라로 지켜봅니다.

왼편 블러 처리한 남성이 의뢰인의 남자친구입니다.

도움남의 연락을 받고 작업녀와 작업녀의 친구가 도착합니다. 도움남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게임을 제안합니다. 이에 작업녀는 남자친구 옆으로 자리를 이동합니다. 일행은 식당에서 간단한 술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작업녀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게임 도중 작업녀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며 남자친구에게 '흑기사'를 요청합니다. 남자친구와 러브샷을 하기도 하죠. 여자친구가 있냐는 질문도 던집니다. 남자친구는 머쓱거리다 일단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남자친구 일행은 식당에서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하는 도중 도움남과 작업녀의 친구가 자리를 잠시 떠납니다. 노래방에는 남자친구와 작업녀만 남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여자친구는 긴장감에 속이 타들어갑니다. 이 때 작업녀가 본격적으로 남자친구를 유혹합니다. 위의 자막처럼 남자친구가 마음에 든다며 수줍게 고백을 하기도 하죠. 심지어 여자친구와 계속 연락을 하느냐고도 묻습니다.

남자친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남자친구가 작업녀의 유혹에 넘어간다면 당장 그 순간은 달콤할지언정 평생의 반려자를 잃게 됩니다. 반면 당장의 유혹을 견뎌낼 경우 여자친구와의 사랑과 신뢰를 지키고 본인 이미지도 간수할 수 있죠.

결론은 GG

결말은 파국입니다. 남자친구는 처음에 여자친구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말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결국 작업녀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작업녀가 여자친구를 언급하자 기습 키스로 입을 막아버릴 지경입니다. 두 사람의 키스는 멈추질 않습니다. 두 사람은 장면을 연출해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실험 카메라 방송은 2006~2009년까지 Olive에서 방영한 <연애 불변의 법칙 - 나쁜 남자>입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의뢰인들은 자신과 연인 간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잠입 취재를 의뢰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회차에서 결국 연인이 바람을 피워 의뢰인은 씁쓸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해당 프로그램은 수 많은 논란을 낳은 채 종영됐습니다. 하지만 일부 회차는 페이스북 등의 SNS에 회자돼 사람들에게 여전히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신뢰의 게임 '딜레마'

연인 간의 신뢰 문제처럼 사회적 협력 그리고 신뢰를 주제로 다루는 딜레마 게임이 여러 종류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인 '여행자의 딜레마(Traveller's Dilemma)'를 고안한 인도 경제학자 겸 현(現) 세계은행 부총재 카우시크 바수 교수는 "자신의 이익만 도모하고 남들을 신뢰하지 않으면 결국은 자신에게 그리고 남들에게도 해가 됨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딜레마 게임의 대표적인 사고실험으로 '사슴사냥 게임(Stag Hunt Game)'을 소개해드리죠. 사슴사냥 게임은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사상가 겸 교육자 장 자크 루소가 우화 형식으로 제시한 사고실험인데요.

출처: pixabay

사슴과 토끼가 사는 숲으로 두 친구가 사냥을 나갑니다. 사냥꾼 입장에서 토끼는 가치가 낮은 사냥감입니다. 사슴은 가치가 높은 사냥감입니다. 토끼는 혼자서 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슴을 잡으려면 반드시 둘이 협력해야 합니다.

출처: pixabay

두 친구는 사슴을 잡기로 약속하고 각자 맡은 자리에서 사슴을 포위합니다. 이 때 바로 옆으로 토끼가 지나갑니다. 

출처: pixabay

여기서 선택지가 생깁니다. '계속 협력해서 사슴을 잡는다' 또는 '당장 눈앞의 토끼를 잡는다'입니다. 협력해서 사슴을 잡는 편이 가장 이득이 크겠죠. 두 사람은 과연 신뢰를 유지한 채 협력을 해낼까요?

이것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서로가 상대를 믿을 만한 협력 파트너로 여긴다면 두 사람 모두 사슴 사냥에 매진할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가 당장 눈 앞의 유혹 때문에 파트너를 배신한다면 자신도 배신을 하는 것이 낫겠죠. 선택지가 어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슴과 같은 실속 있는 보상을 얻으려면 신뢰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출처: pixabay
두 친구가 도자기를 하나씩 샀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앞에서 언급한 바수 교수는 2007년 6월 <Scientific American>에서 '여행자의 딜레마'를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두 친구가 있습니다. 두 친구는 하버드 대학의 전략적 사고 워크숍을 수강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요. 이 때 두 친구는 찰스 스트리트에 들러 화려한 문양과 착한 가격을 가진 쌍둥이 중국 도자기 두 개를 발견해 하나씩 삽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합니다. 항공사가 두 친구의 도자기를 분실합니다. 항공사 소장은 두 친구에게 보상을 해주기로 했죠. 소장은 보상을 하기로 하고 보상 조건을 제시합니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방으로 가서 희망 보상액을 종이에 적습니다. 보상액의 가용 범위는 5~100달러입니다.

둘이 같은 금액을 적으면 둘은 같은 금액을 받습니다. 하지만 다른 금액을 적으면 둘 중 한 명은 낮은 금액을 받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낮은 금액을 받은 사람은 5달러를 더 받고 높은 금액을 받은 사람은 5달러를 빼야합니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두 사람 모두 100달러를 적는 것입니다. 둘 다 100달러를 받을 수 있죠. 하지만 두 사람이 당장 눈 앞의 소소한 유혹에 넘어가버린다면 상황은 복잡해질 겁니다.

출처: pixabay

친구 X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Y는 100보다 적은 금액을 적을 거야" 그래서 X는 100을 쓰지 않습니다. 혹여나 Y가 100을 써낸다 생각해도 X는 100을 쓰지 않습니다. 99를 써내 104달러(99+5)를 챙기기 위함이죠.

하지만 친구 Y도 바보가 아닙니다. X의 속셈을 뻔히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Y는 본인이 100을 써낼 경우 X가 99를 적을 거라고 추론합니다. Y는 X를 이기기 위해 98보다 적은 수를 쓰겠죠.

X는 Y가 이럴 줄 알고 또다시 97보다 적은 수를 씁니다. 이런 식으로 둘은 계속 머리를 굴립니다. 이 궁리는 언제 종지부를 찍을까요? 답은 정해졌습니다. 둘은 보상 하한가인 5달러에 이르러서야 멈춥니다. 둘은 서로 지지 않으려고 머리를 쓰다가 이런 슬픈 결과를 얻게 됩니다.

출처: AdobeStock
개판 5분전 jpg.

<연애 불변의 법칙 - 나쁜남자>에서 나오는 연인 간의 잠입 취재도 이러한 딜레마를 시험하는 '신뢰게임'입니다. 등장한 의뢰인의 남자친구는 어찌 보면 이러한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 중 하나겠죠. 남자친구는 눈 앞의 토끼를 노리다가 사슴을 잃은 사람이자, 자기 욕망에 몰두하다 파트너와 자신에게 해를 끼친 어리석은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윤리'가 중요한 이유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사익에 따라 행동하며 개인의 사익 추구가 사회의 이익으로 이어진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개인의 이익 추구가 전체의 이익에 충돌하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개인의 합리적 행동이 전체의 합리적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 상황을 '사회적 딜레마'라고 부릅니다.

카우시크 바수 교수는 "정직, 청렴, 신뢰, 배려 같은 도덕적 자질들이 견실한 경제와 건전한 사회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책 <n분의 1의 법칙>에서도 "전략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가끔은 결과에 신경써야 한다"는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의 명언을 언급합니다. 또한 사회적 딜레마와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잔꾀와 같은 전략은 옆으로 치워두고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진정으로 승리하는 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출처: 반니
게임이론을 알고 싶다면?

이스라엘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하임 샤피라의 책 <n분의 1의 법칙>은 게임이론을 기초로 현실에 존재하는 확률의 특징과 함정 그리고 이에 임하는 전략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줍니다. 이 책은 여행자의 딜레마와 같은 신뢰게임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와 치킨 게임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등을 재밌게 알려줍니다.

##참고자료##

  • 하임 샤피라 <n분의 1의 법칙>. 반니(2017).
  • Basu, Kaushik. "The traveler’s dilemma." Scientific American 296.6 (2007): 9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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