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분을 되찾기 위한 1년, 어라운드 삼척 2019 라이드 페스트

조회수 2019. 4. 26. 19: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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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분. 여유로운 상황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쉽게 흘러가 버리는 시간일 수 있다. 그러나 위급한 상황에서는 생사를 갈라놓을 수도 있는 긴 시간이기도 하다. 이렇듯 같은 시간이라도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작년 4월 29일 아침까지만 해도 8분 때문에 1년을 기다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취재를 목적으로 어라운드 삼척 2018 트렉 라이드 페스트에 참가했던 날이다. 제한 시간은 7시간 30분이었으나 기록은 7시간 38분이었다. 쥐가 나는데 참으면서 자력으로 골인했기에 아쉬움이 컸다. 수면 부족, 장시간 운전, 적극적인 전야제 참여, 무거운 DSLR 카메라, 타이어만 바꿔 끼운 사이클로크로스 자전거, 촬영을 위한 초반 오버페이스 등 핑계거리는 많다. 하지만 모두 변명일 뿐, 시간 내 완주에 실패했다는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재도전을 위해서는 1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참가 신청은 했지만 늘어난 체중과 떨어진 체력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 3월 23일에 충주호에서 눈을 맞고 떨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데 4월 14일에는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었다. 유독 추위에 약해서 걱정은 됐지만, 그 동안 자전거 출퇴근과 주말 라이딩으로 조금이나마 올려놓은 체력을 믿었다. 그래도 준비는 확실히 했다. 비가 오면 입을 옷을 챙기고 여차하면 회수차를 타겠다는 생각을 갖고 삼척으로 출발했다.

4월 13일에는 1일차 개인 독주와 경품추첨 등이 있었으나 다른 스케줄로 인해 삼척에는 밤늦게 도착했다. ITT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참가자들과 갤러리의 반응도 좋았고 ITT의 멋에 빠지게 되는 경기라고 말했다. 스포츠 사진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바이크포토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모든 참가자의 ITT 출발 모습이 담긴 영상이 링크돼 있다.

그란폰도와 메디오폰도가 진행되는 14일 아침이다. 작년과 달리 올해엔 핑계거리가 없다. 평생 탈 작정으로 구입한 티타늄 프레임, 스램의 최신형 최상급 구동계인 12단 레드 이탭 AXS, 엔비 시트포스트와 3.4 카본 림, 경량 폴리머 스포크와 취향에 맞춘 프로젝트321 허브까지 모두 원하는 구성이다. 전날 삼척에 도착해 잘 잤고, 무거운 카메라 대신 고프로만 챙겼다. 작년과 같은 것은 후미등 역할인 후방 블랙박스와 신발, 물통 정도다. 이러고도 실패하면 실력과 체력 부족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 놨다. 딱히 끌리는 제품이 없어서 스템과 핸들바는 여전히 알로이를 쓰고 있다.

트렉바이시클코리아에서 진행한 페이스북 이벤트 당첨으로 대회에 참가했고, 의사와 무관하게 A그룹으로 출발했다. 초반에는 적당히 따라갈 수 있었지만, 조금씩 추월을 당하기 시작했다. 역시 A그룹은 무리였던 듯하다.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순위는 차츰 뒤로 밀렸고, 사진을 찍기 위해 뒤돌아 봤을 때는 남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보급소가 왜 벌써?

작년에는 문의재터널 앞에 보급소가 설치돼 있었고, 힘겹게 언덕을 오른 후 마시는 물은 그야말로 생명수 같았다. 그런데 올해에는 조금 일찍 보급소를 만났다. 본격적인 급경사를 오르기 전에 쉬면서 에너지를 보충하라는 의미인 줄 그때는 몰랐다. 물은 아직 한 통이 남아 있으니, 초코바 하나만 입에 넣고 씹으면서 출발했다.

서둘렀던 후유증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급경사가 시작되면서 페달링 속도가 느려지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 쉴 때 좀 더 쉬어야 했을까? 하지만 이미 출발했으니 도중에 멈출 수는 없다. 다음 보급소에서는 좀 더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문의재를 오른다. 땀을 잔뜩 흘린 상태에서 들어간 터널 안은 역시나 춥다. 비가 올 거라는 예보에 빕숏과 반팔저지를 입고 저지 뒷주머니에 방수 의류를 챙겼지만, 터널 안에서 잠깐의 추위 때문에 꺼내 입기는 애매하다. 그저 빠르게 터널을 통과했고, 터널 끝의 빛이 매우 반가웠다.

잠깐 따뜻해지나 싶었지만 긴 내리막이 이어진다. 혼자 차를 운전해서 삼척까지 왔으니 이후 스케줄과 업무에 지장이 없으려면 안전이 제일이다. 디스크브레이크는 긴 급경사 내리막에서도 원하는 타이밍에 속도를 줄일 수 있게 해 줬고, 카본 휠의 열변형 걱정은 남의 얘기다. 급커브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내려갔고, 시야와 공간이 확보된 곳에서는 뒤따르는 자전거를 먼저 보내기도 했다.

내리막 끝 좌회전하는 곳, 작년에는 루트바이크 회원들로 시작된 회수열차가 시작됐던 지점이다. 약간의 내리막이 꽤 오래 이어지기 때문에 혼자보다는 그룹으로 뭉쳐서 달리는 게 좋다. 그러나 합류하기 적당한 그룹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스쳐 지나가는 그룹은 따라 붙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뒤에 붙어서 가려다가 흐르고 다른 팀에 붙기를 반복하다 결국은 혼자가 됐다.

다행히도 혼자 달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2보급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장에 자전거를 눕히고, 음료와 식량을 챙긴다. 화장실에도 다녀왔다. 그 동안 기자의 자전거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참가자들이 있었다. 자전거 숍 아닌 곳에서 12단을 처음 본다는 얘기도 있었고, 기사를 기억하는 분도 있었다. 적당히 쉬고 잘 챙겼으니 속도가 비슷한 팀을 찾아 따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빠르다. 붙었다가 흐르기는 이번에도 반복됐다. 좋은 장비를 써도 실력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장비가 늘어난 체중과 떨어진 체력을 대신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저 약간의 도움이 될 뿐이다. 자전거는 정직한 운동이고, 페달을 밟는 만큼 강해진다. 다시 한 번 감량과 훈련의 필요성을 느끼며, 외롭지만 열심히 달린다.

 

 

 

8, 나를 힘들게 하는 숫자

작년의 8분 때문에 올해에도 삼척에 왔다. 자전거 무게는 8kg이다. 체중은 80kg까지 늘었다가 겨우 78kg으로 줄였다. 그리고 80km 지점을 통과하자 엉덩이가 아프기 시작한다. 중국에서는 8이 부를 상징하는 숫자라고 하는데, 내게는 고통을 주는 숫자 같다. 그나마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코스에서는 안장에서 일어나 엉덩이는 편했지만, 다리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만난 3보급소에서는 작년 상황이 되풀이되는 기분이다. 회수차가 올 시간은 아니었지만, 대신 비바람이 몰려온다고 한다. 남을 사람은 기다렸다가 회수차를 타고, 계속 갈 사람은 안전하게 심판 오토바이와 함께 그룹을 이뤄 내려가라고 안내했다. 서둘러야 할 것 같았지만, 작년의 경험은 올해에 여유를 줬다. 맛있는 도너츠도 먹고, 물통도 채우고, 화장실도 들렀다. 잠깐 여유를 부린 것이 이후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그때는 몰랐다.

3보급소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실수를 깨달았다.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나도 강력하다. 분명 내리막길인데 시속 20km를 내기 어렵다. 내리막에서 탄력을 받아 다음 오르막을 치고 올라가려던 계획은 출발과 동시에 폐기됐다. 내리막에서 페달링을 해도 속도가 나지 않으니 시간 내 완주 가능성을 의심하게 되지만, 시간이 남아있는 이상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바람이, 가끔은 변덕을 부려 뒤에서 등을 밀어준다. 오르막에서도 맞바람이면 더 고민하지 않고 멈추려고 했지만, 이러니 계속 갈 수밖에 없었다.

바닷가에서는 강한 바람이 불었지만, 들입재를 향해 내륙으로 들어서자 바람은 거의 없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쬔다. 중간에 따로 떨어져 혼자라고 느꼈었지만, 들입재 오르막 근처에서는 다른 참가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말은 안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된다. 여기만 올라가면 골인지점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이다. 목표했던 시간 내 완주 가능성이 보인다.

드디어 들입재터널이다. 코스 도중, 그늘진 길가에는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었고 해가 비치는 오르막에서는 땀이 계속 흐른다. 하루 사이에 겨울과 여름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대회가 바로 어라운드 삼척이다. 그 중 가장 추운 곳이 바로 터널 안이다. 문의재 터널은 코스 초반이어서 체력도 남았고 평지여서 빨리 통과할 수 있었던 반면 들입재 터널은 체력이 떨어진 코스 후반인데다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추우니까 땀나도록 페달을 밟고 싶은데, 떨어진 체력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저지 주머니에 넣어 놓은 재킷을 꺼내 입고 싶어도 핸들에서 손을 뗄 자신이 없다. 멈추고 싶지도 않다. 그저 열심히 페달을 돌릴 뿐이다.

들입재 터널을 빠져나와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체력이 회복된다. 보급소를 만날 때마다 식량을 챙겨 먹고 물을 잘 마셨던 보람이 있다. 작년에는 쥐가 나서 타다 걷다 했지만, 올해에 자전거에서 내린 곳은 보급소뿐이다. 전날에 무리하지 않아 당일 컨디션은 괜찮았지만 작년에 비해 체중도 늘었고 체력도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무래도 장비 덕분인 듯하다. ‘장비보다 실력’은 맞는 말이지만, 부족한 실력을 장비로 보충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좋은 장비는 힘을 덜 들게 할 뿐, 결국 자신의 힘으로 달려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러운 마음을 참을 수 없다면, 과감하게 지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그러면서도 작년에 탔던 자전거를 떠올린 것은 코스 막바지에 등장하는 콘크리트 포장도로 때문이다. 작년에는 타이어만 바꾼 사이클로크로스용 자전거로 남들이 불편해하는 그 구간에서 오히려 편하게 달릴 수 있었지만, 올해에는 남들과 똑같이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체중을 줄이고 빠르게 달려서 충격을 줄여야겠다가 아니라, 스템과 핸들바를 바꾸고 싶다는 욕심이다. 문제는 몸인데 근본 원인은 그대로 두고 자꾸 다른 해결책을 찾는다. 올해 안에는 어떻게든 적정 체중을 만들어야겠다.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지나 삼척문화예술회관으로 돌아가는 길은 감회가 새롭다. 작년에는 쥐가 나서 길가에 주저앉아 있었던 곳을 큰 무리 없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고 있다. 특별한 사고가 없는 이상 제한시간 내 완주는 확실한 지점이다. 그러고 보니 완주 시간에 신경이 쓰인다. 아침 8시에 출발했고, 오후 2시 25분쯤이다. 2시 30분 이전에 골인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욕심과 달리 골인 지점은 은근히 멀다. 어느새 2시 30분은 지났고, 이미 늦었으니 애쓰지 않고 편한 속도로 페달을 밟는다. 교통 통제를 위해 길가에 있던 자원봉사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골인지점을 통과했다. 제한시간을 넘겨서 골인했던 작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완주메달을 받고, liverun.co.kr에서 모바일 완주증을 확인했다. 6시간 30분이 넘은 줄 알았는데 출발할 때 그룹 뒤쪽에 있어서 조금 늦게 체크된 덕에 6시간 28분 33초의 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했다.

8분 때문에 1년을 기다렸고, 장비를 교체한 덕에 8분이 아니라 70분을 단축했다. 시간 내 완주에 성공했으니 다음부터는 참가자가 아닌 기자 입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계획과 달리 한 번 더 참가해야만 될 듯하다. 삼척시가 UCI 그란폰도 월드시리즈 유치의향서를 제출했고, 유치에 성공하면 국내 최초의 UCI 그란폰도 월드시리즈가 된다. 최초의 그란폰도 월드투어인 자이언트 설악 그란폰도에는 참가를 못했으나, UCI 대회는 욕심이 난다. UCI 그란폰도 월드시리즈는 그란폰도 월드투어와 별도의 시리즈이며, 삼척시가 UCI 그란폰도 월드시리즈 유치에 성공할 경우 우리나라는 아시아 최초로 두 개의 시리즈를 개최하는 나라가 된다. 대회가 진행된 13, 14일에 현장 실사가 이뤄졌고, 유치 여부는 다음 달인 5월에 공개된다. 훌륭한 코스와 대회 운영이 이뤄졌던 만큼, UCI 그란폰도 월드시리즈 유치 또한 성공하기를 바란다.

 

사진 제공 : XCWORKS



글: 함태식 기자
제공: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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