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억짜리도 가보면 7억" 더 치열해진 강남 학세권 '전세 전쟁'

조회수 2019. 12. 16. 0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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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구모(40)씨는 지난달 1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115㎡)를 6억1000만원에 전세로 살기로 하고, 계약금 6100만원도 곧바로 보냈다. 하지만 5일 뒤 집주인이 갑자기 “미안한데, 이 금액에는 안되겠다”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해 버렸다. 구씨는 계약서도 쓰지 않은 상황이라 따지지도 않고 같은 아파트 다른 동을 찾았지만, 불과 10여일 사이에 이 아파트 전세 2000만원 정도 올라 있었다. 구씨는 “급해서 6억3000만원에 계약을 했는데, 그래도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인터넷에는 은마 전세 5억5000만원짜리도 있는데, 실제 가보면 모두 7억원은 줘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 아파트 전세금이 무서운 기세로 오르고 있다. 새 아파트, 오래된 아파트를 가리지 않고, 학군이 좋은 지역의 아파트 전세는 1~2개월 사이 수천만원씩 오르는 것이 예사다. 강남구 역삼동 명성공인중개사무소 박성희 대표는 “강남 아파트 전세는 기말고사가 끝나고 겨울방학 이사철에 손바뀜이 많은데, 올해는 방학이 오기도 전에 전세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고, 가격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 강남구 역삼동에 입주한 ‘역삼래미안’ 아파트. 서울 지하철 3호선 대치역과 분당선 한티역에 걸쳐 있는 강남 학원가가 가깝고 자녀를 도곡초등학교 역삼중학교에 보낼 수 있는 신축 아파트로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많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이곳 80㎡ 전세금이 10월 10억원(10층)을 돌파해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작년 같은 시기보다 1억원 가량 상승한 가격이다. 현재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에서는 이 주택형을 11억원에 매물로 내놓았다.


이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 주민 심모씨는 “전세계약 만기일이 다가와 재계약을 하고 싶은데, 지금 시세대로라면 집주인이 2억원 이상 가격을 높게 부를 것 같아 고민”이라고 했다. 최근 정부의 정시 확대, 자사고·특목고 폐지 등 입시제도 개편으로 전통적인 학군 강세인 강남 아파트 전세금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학생들의 기말고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이사철이 다가오면 가격 상승세가 더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입시제도 개편 발표 이후부터 급등…기존 우수 학군 지역 강세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작년 이맘때인 10월부터 11월까지 서울의 아파트 전세금 변동률은 -0.03%를 기록했고 강남은 더 낮은 수준인 -0.06%를 기록했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올해 같은 기간 서울 전세금은 0.41%가 올랐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0.44%포인트 높고 강남의 경우 0.65%로 작년보다 0.71%포인트 높다. 실제 학군이 좋은 아파트 단지는 한두 달 사이에 전세금이 1억원 안팎씩 오르는게 예사다.


강남구는 3호선 대치역과 도곡역, 분당선 한티역 등을 중심으로 사설 학원들이 몰려 학원가를 이루고 있고, 강남 8학군으로 통용되는 일반고등학교들이 밀집해 일명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라 불리는 곳이다. 온라인에서 ‘월천대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이주현 엘제이컴퍼니 대표는 “정부가 정시 위주로 대입제도를 개편하겠다고 한 순간부터 전통적인 학군 강세지역인 강남 전세금이 급등했다”며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동하려는 수요자들은 아무리 가격이 올라도 정해진 시기에 반드시 입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기 때문에 더욱 수요가 집중된 것”이라고 했다.



■ 강남 8학군 품은 신축 단지…전세금 실거래가 1억 이상 급등


학군 수요가 있는 단지들 중에서도 특히 신축단지가 전세금 상승을 이끌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3호선 대치역과 도곡역 사이에 있는 신축 아파트 ‘래미안대치패리스(2015년 입주)’ 역시 84㎡ 전세금이 올해 10월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14억5000만원(14층)에 거래되며 작년 같은 기간보다 1억원 정도 상승했다. 대치동 D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래미안대치팰리스 84㎡는 전세금이 많게는 16억원 정도에, 매매가격의 경우 29억원 정도에 호가가 형성됐다”고 했다. 역삼동 ‘역삼 래미안’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신축급 아파트로 도곡초, 역삼중학교에 배정되는 ‘도곡렉슬(2006년 입주)’ 134㎡는 11월 전세금이 작년보다 5000만원 오른 19억원에 거래돼 이 주택형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 전통 학군의 전세 수요 지속될 것


비강남 지역 전세도 강세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강남에 이어 사교육 2번지로 불리는 목동도 전세금 상승률이 컸다. 양천구 전세금은 올해 10월부터 11월 사이 1.07% 올랐으며 상승 금액도 강남 못지 않았다. 목동 목운초·중학교 배정 단지인 ‘목동신시가지 7단지’ 101㎡ 전세금은 11월 말 8억6000만원(15층)에 거래되며 상반기보다 약 1억원 올랐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주변에는 목운·신목·목일중학교와 자사고인 한가람·양정고, 일반고인 강서고 등 유명 학교를 비롯해 학원가가 몰려있다.


전문가들은 전통적으로 학군이 강세였던 강남·양천구 등 일부 지역이 전세금 상승세를 주도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앞서 교육부는 현재 초등 4학년이 고교에 입학하는 2025년에 맞춰 이들 학교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으며 일반고를 위주로 교육제도를 개편하는 방침을 고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심정섭 더나음연구소 소장(‘대한민국 학군지도’ 저자)은 “정부가 일반고를 중심으로 한 교육 정책을 고수하면 강남·목동·중계동 등 전통적으로 학군이 강세였던 지역에서 전세금 상승세가 시작돼 서울 전역의 전세금 상승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글= 김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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