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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까짓것 내가 지어보지 뭐" 돈만 잃고 고생은 고생대로

조회수 2019. 11. 3. 08: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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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집짓기] 좋은 건축주가 좋은 집을 만든다

단독주택 짓는 절차는 의외로 단순하다. 비도시지역은 연면적 200㎡ 미만, 도시지역(지구단위계획구역 포함)은 100㎡ 미만 주거용 건축물은 신고만으로 건축이 가능하다. 게다가 연면적 660㎡ 미만 단독주택은 건설업 면허가 없어도 지을 수 있다.


전원주택은 99%가 이 범주에 든다. 결론적으로 대부분 전원주택은 신고만으로 지을 수 있고, 그것도 아무나 지을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집은 절대로 아무나 지을 수 없다. 규제가 없는 만큼 책임도 건축주가 져야 하는 탓이다. 자기가 지은 집에서 발 뻗고 자려면 스스로 건축 전문가가 돼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게 가능한 일인지는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걸 모르고 덤벼들면 평생 쌓아 온 덕망도 잃고, 사람 버리고, 돈 잃고, 고생은 고생대로 할 것이다.



■“화려한 마감보다 하드웨어가 중요”


그런데도 대부분 건축주들은 주택을 구성하는 공학적 매뉴얼에는 관심이 없고, 집을 어떻게 꾸밀지에 대해서만 파고든다. 특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 즉 하드웨어에 돈을 쓰는데 매우 인색하다. 지난 칼럼에서 지적했던 ‘제이그레이드’(J-Grade) 사례를 기억해 주기 바란다. 우리의 건축문화 수준은 아직 그 정도에 머물러 있다.


출처: 드림사이트코리아 제공
목조주택 벽체는 40cm 간격으로 구조재를 세우고 난연,친환경 단열재를 채워서 석고보드로 마감한다.

그러나 집의 기능성은 하드웨어와 절대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구나 구조와 마감 공정은 분리될 수 없다.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북미식 목조주택의 국제표준 규격은 40㎝ 간격으로 구조재를 세우고 그 속에 단열재를 채워 넣어 벽체를 완성한다. 그런데 마감용 석고보드는 폭이 90㎝여서 간격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걸 맞추려고 구조재를 마감재 폭에 맞춰 45㎝ 간격으로 세우는 목수들이 의외로 많다. 그만큼 공정이 쉽고 구조재도 절감된다. 5㎝ 차이는 자로 재지 않는 한 눈으로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이걸 짚고 넘어가는 건축주는 거의 없다.

인증을 받은 목조주택 구조재는 모든 자재에 인증마크가 찍혀 있다.

목재는 생물이기 때문에 습기에 의한 변형과 균열을 막기 위해 함수율 19% 이하로 건조된 인증제품을 써야 한다. 인증제품은 목재 1개마다 인증마크(KD_HT)가 모두 찍혀 있다. 하지만 이걸 확인하는 건축주도 없다. 건축주들의 이런 무관심과 무지의 틈을 파고드는 것이 불량 시공자의 농간이다. 기본을 제대로 지키는 시공자를 찾는 것이 화려한 마감재를 쓰는 것보다 100배는 중요한 이유다.



■“목조주택에 실크벽지 쓰면 안돼”


마감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기본적인 시공매뉴얼은 알고 있어야 한다. 내부 마감을 도배로 할 것인가, 도장으로 할 것인가는 건축주의 취향이다. 하지만 그 바탕이 되는 하드웨어가 바뀐다는 사실은 거의 모른다. 도배를 한다면 석고보드 1장을 대고 초배지를 바른 다음 원하는 벽지를 바르면 된다. 그러나 도장을 하려면 석고보드를 엇갈리게 겹쳐서 2장을 대야 한다. 석고보드의 미세한 수축 팽창이 페인트 균열을 초래해 벽에 실금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목조주택은 석고보드로 마감하기 전에 벽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방수투습지를 붙인다.

도장은 도배로 마감하는 것보다 비용도 2배 이상 들어간다. 예산 편성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목조주택에 실크벽지로 도배를 하는 경우도 많다.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목조주택에는 사망 선고와 다를 바 없다. 목구조는 물성 자체가 숨 쉬는 집이다. 실크벽지는 숨구멍이 없는 화학제품이다. 이런 세세한 건축 상식을 하나씩 깨쳐 가면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지난한 고행길이다.


내 손으로 집을 짓는 것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바탕을 모르면서 마감재에 대한 어설픈 지식과 고집, 경우에 따라서는 아집으로 덤벼들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전문가의 영역이 있다. 그 전문성을 돈으로 사려면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그게 아까워서 시공팀을 직접 데리고 직영으로 공사를 해보겠다고 덤벼드는 우(愚)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가능하면 내 아이디어에 플러스알파를 더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직영으로 건축비 아끼는 것보다 더 큰 복이다.



■“일을 맡길때는 계약서가 법”


일을 맡길 때는 계약서가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서로 서명한 것을 쉽게 무시한다. 계약서는 계약서일 뿐이고, 공사 과정에서 수시로 변경과 추가 사항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추가 공사비는 지불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설계도면대로 견적을 상호 합의해서 처음에 제대로 계약하고, 변경되거나 추가되는 부분은 추가 공사비를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전제로 시공사를 상대해야 진정한 ‘갑’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대표(오른쪽)가 캐나다우드 한국사무소 관계자와 함께 자재 검수를 하고 있다.

우리 건축업계 풍토에서는 건축주의 무지보다 시공업체의 부실과 잘못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건축주의 자세를 먼저 강조하는 이유는 좋은 건축주가 좋은 집을 만들기 때문이다. 개인이 건축업계의 전체 풍토를 바꿀 수는 없지만, 건축주가 바른 의식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각오를 갖고 있다면 좋은 시공업체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런 좋은 건축주만이 나쁜 시공업체를 시장에서 도태시킬 수 있다.



글=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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