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때문에 멀쩡한 증권회사 그만둔 문과 엄마, 발명대회 대상받은 '뜨거운' 사연

조회수 2019. 10. 2.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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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C투자증권 PB 출신
육아 때문에 5년 경력단절
아이 밥먹이다 보온식판 개발

아이 밥 먹이는 건 전쟁이나 다름없다. 세상 모든 엄마를 행복하게 해줄 무기를 만들었다는 베이비키스의 이은희 대표를 만났다.

◇일정한 온도로 유지해 주는 식판

아이가 한 끼 식사 마치기까진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갖은 정성을 다해 조리를 마치고 나면, 뜨거운 열기를 식히는 과정부터 필요하다. 어른은 조리한 음식을 바로 먹을 수 있지만, 아이는 뜨거운 음식을 먹지 못해 알맞은 온도까지 식혀줘야 한다. 이후 빨리 먹으면 좋은데, 어릴수록 식사에 집중하지 못해 밥 먹는 시간이 기본 1시간을 넘는다. 결국 절반도 먹지 못해 음식이 차갑게 식는다. 그러면 아이는 맛이 없다고 투정하고, 결국 엄마는 전자레인지나 가스레인지를 통해 먹던 음식을 데우고 내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주방과 밥상을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다 보면 엄마의 피로도는 극심해지고 밥먹는 시간은 한없이 길어집니다.”

출처: 베이비키스 제공
아이와 함께한 이은희 대표

증권회사 출신의 전업주부 이은희 씨는 어느날 퍼뜩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보온해주는 식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식사 도중에 번거롭게 데울 필요가 없는데.’ 보온 식판을 찾아 다녔다. 마땅한 게 없었다. ‘그래? 내가 만들어 보자’ 

베이비키스 보온식판은 경단녀이던 이은희 대표가 스스로 니즈를 고민하다 개발한 제품이다. 음식이 식지 않도록 일정한 온도로 유지해 준다. 음식을 올리는 식판과 음식을 데우는 열판이 분리돼 있다. 식판에 음식을 차려서 따뜻하게 먹은 뒤, 식판을 분리해 세척하면 된다. 식판은 스테인리스 소재로 했다. 전원은 배터리 충전방식이다.

 

열판은 섭씨 40도에서 60도 사이에서 온도를 선택할 수 있다.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음식을 60도까지 데우거나, 식사하는 동안 음식이 식지 않고 40~50도 사이에서 유지되도록 보온할 수 있다. 일반 보온식판은 아무리 기능이 좋아도 열이 소실되는 것을 피할 수 없어 결국엔 음식이 식지만, 베이비키스는 40~50도 사이에서 온도가 유지되도록 지속적으로 열을 가하기 때문에 일정한 온도가 유지된다. “온도가 유지되면 밥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지 않아도 됩니다. ‘국 식는다’ 잔소리 할 필요도 없죠.”

 

출처: 베이비키스 제공
베이비키스 보온식판

온도 조절 버튼으로 40~60도 사이에서 세밀하게 온도를 조절할 수 있고, 식판의 5칸 가운데 원하는 칸만 데울 수 있다. “데우거나 보온하고 싶은 것만 골라 열을 가하면 됩니다. 샐러드나 나물은 데우지 않고 차갑게 드시구요. 따뜻하게 먹는 게 좋은 음식만 골라서 원하는 온도로 데우는 거죠. 음식 별로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면서 식사할 수 있습니다.”

데우는 방식은 음식의 수분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좋다. “차가운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거나 가스레인지로 끓이면 수분이 사라져 퍽퍽해집니다. 반면 음식을 데우는 방식은 수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먹기 좋은 온도로 올려주는 거라 갓 조리한 것처럼 촉촉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습니다. 아이 뿐 아니라 식사가 불편한 노인이나 환자가 있는 가정도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출처: 큐텐츠컴퍼니
인터뷰 중인 이은희 대표

◇증권회사PB 출신 개발자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공대생도 아닌데 새로운 걸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게 좋았어요. 특허 내는 데도 관심이 있었구요.”

창업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직접 사업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간 의류 쇼핑몰을 운영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평생 할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옷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그저 사업을 해보고 싶은데 마진이 좋다니 해본거였죠. 고객들이 저보다 패션 트렌드를 더 잘 아는 경우가 많았어요.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 일을 해야 성공할 수 있는데, 아니었던 거죠.”

곧 쇼핑몰을 접고 취업 준비를 했다. 전공을 살려 증권회사에 들어갔다. PB(개인 자산관리) 업무를 맡았다.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었지만 재밌었다. 잘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출처: 베이비키스 제공
증권회사 재직 시절 이은희 대표

육아가 발목을 잡았다. “친정과 시댁 모두 아이 봐줄 상황이 되지 않았어요. 남의 손에 맡기기는 싫어서 결국 일을 그만뒀죠.”

그렇게 육아에 전념하다 고안한 게 베이비키스 식판이다. “아이템을 떠올린 건 2017년이었어요. 그런데 개발까지 난관이 많았어요. 저 혼자 제품을 만드는 건 어려워서 시제품 제작할 곳을 찾아다녔는데 구하지 못했죠. 기술적으로 부족한 점도 많았구요. 그러다 정부 지원으로 전문가 기술 전수, 개발비, 공간 입주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선발되면서 작년 5월 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경력 단절 5년만이었죠.”

일을 그만두고 나니 진정 원하는 일이 생긴 셈.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끼가 드디어 발현된 것이다. 2년여 개발 끝에 외주 생산 준비를 마치고 곧 시판을 앞두고 있다. 기술과 아이디어는 2018 서울국제발명전시회 대상, 2019여성발명왕EXPO 여성가족부장관상, 2019년 8월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D.DAY 수상 등으로 검증 받았다. 백화점 팝업 스토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제품을 적극 알릴 예정이다. 자체 캐릭터를 응용해 디자인도 다양화할 예정이다. 해외 시장도 염두에 두고 있다. 박람회 등에서 제휴 관계를 맺은 바이어들을 통해 해외 판로를 알아 보고 있다.

출처: 베이비키스 제공
2019년 8월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D.DAY에서 수상한 이은희 대표

-금방 복제품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들지 않나요.

“저 혼자 기술을 지키는 게 어려울 경우 대형 유통업체와 제휴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왕이면 유아 전문 브랜드면 좋을 것 같아요. 보온식판을 시작으로 제품 라인업을 계속 늘려갈 계획인데요. 제품 별로 탄력적인 유통을 할 계획입니다.”

염도를 측정할 수 있는 식판을 곧 출시한다. 식판에 음식을 담으면 자동으로 염도가 표시되는 것이다.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한국여성발명협회 생활발명코리아 지원 대상에 선정돼 개발이 막바지에 왔습니다. 11월쯤 시제품이 나올 예정입니다.”

출처: 베이비키스 제공
2018 서울국제발명전시회 대상, 2019여성발명왕EXPO 여성가족부장관상을 받은 이은회 대표

◇엄마들 불편 해결하는 창업자

-앞으로 목표는요.

“예전엔 부잣집 아이만 ‘골드키즈’라 불렸는데, 출산률 저하로 부모는 물론 조부모, 외조부모까지 육아에 가세하면서 이제는 모든 아이가 골드키즈에요. 그러면서 프리미엄 육아 제품은 오히려 시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낯설었던 젖병소독기가 지금은 필수품이죠. 베이비키스 식판도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반드시 구비하는 제품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요. 세상의 모든 엄마를 편하게 해주고 싶어요. 아이 밥 먹이는 시간이 전쟁이 아니라 아이와 엄마 모두 즐거운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장기적으론 유아용 제품에 국한하지 않을 거에요. 없던 제품을 만드는 게 재밌습니다. 회사가 커지더라도 계속 아이디어 개발자로 남고 싶습니다.”

-창업하고 나니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나요.

“전문지식에 대한 결핍이 아쉽습니다. 다시 공대갈까 생각이 들 정도에요. 직원들 도움도 받고, 저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걸로 만회하고 있습니다. 관련 논문도 자주 찾아봅니다. 사관학교 시절 인연을 맺은 개발자 멘토 분들에게도 엄청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해온 비결이 있다면요

“나만의 아이템이을 가졌다는 거요. 재밌고 오래 갈 수 있습니다. 소비자 니즈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유아용품 보면 주로 남자들이 만들어요. 엄마들의 불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만드는 거죠. 그래서 맘에 쏙 드는 유아용품을 찾기 어렵습니다. 제가 앞으로 성공한다면, 타깃의 불편을 잘 알고 접근했다는 게 가장 큰 비결이 될 거에요. 엄마들이 여러 분야에서 창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IT 쪽에서 엄마들의 불편을 가장 잘 해결하는 창업가가 되겠습니다.”

글=박유연 큐텐츠컴퍼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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