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서 문전박대 당하던 청각장애인이 개발한 '기발한 앱'

조회수 2019. 9. 2. 07: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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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청각장애인 발음 연습 돕는 앱 '바름'

칸 국제광고제 국가대표 출신 디자이너

대기업 외면받고 창업 성공


청각 장애인이 말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는 건 ‘듣지 못하는 것’ 그 자체 때문이다. 청각 장애인의 발음 연습과 교정을 돕는 ‘바름’을 서비스하는 ‘딕션’의 전성국 대표를 만났다. 스스로 청각장애 불편을 고민하다 창업했다. 후원에 기대는 사회적 기업이 아니다. 32만명 시장에서 제대로 수익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전세계 1억명의 외국인도 공략 대상이다.

◇소리나는대로 알아듣는 음성인식기술


청각장애인이 올바르게 발음하지 못하는 건 상대는 물론 본인 발음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올바른 발음이 뭔지 알 수 없다. “일반인은 들리는 대로 발음합니다. ’먹었어’를 ‘머거써’로 발음하는 거죠. 반면 청각장애인은 보이는 대로 발음합니다. ‘먹었어’를 ‘먹.얻.어’라고 발음하는 겁니다. 일반인이 듣기에 어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출처: 딕션
바름 전성국 대표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에 차이가 나는 것은 ‘한글’과 ‘한국어’가 완전히 동일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한글’은 소리나는대로 옮겨 적을 수 있는 완벽한 소리문자다. 단 ‘완벽’이란 표현은 1음절 단어일 때만 유효하다. 밥, 산, 강 등이 대표적이다. 2음절 이상의 단어와 문장이 되면 연음화, 격음화, 자음동화 등 한국어가 가진 발음 현상이 나타난다. ‘국물’을 ‘궁물’로 읽는 식이다. 그러면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에 차이가 발생하고, 한글은 불완전한 소리문자가 된다. 그래서 보이는 대로 읽는 청각장애인의 발음은 한글적으론 맞지만, 한국어적으론 어색해진다. 일반인이 편안히 들을 수 없는 것이다.


‘바름’은 자체 개발한 음성인식기술로 청각장애인이 들리는 대로 발음하도록 도와준다. 앱에 접속해 연습하고 싶은 문장을 선택하면, 올바른 발음이 표시된다. ‘밥 맛있게 먹었어’란 문장을 선택하면, ‘밥 마시께 머거써’란 발음이 표시되는 것이다. 이를 그대로 소리내서 읽으면 된다. 그러면 올바른 발음과 내 발음을 비교해서, 어떤 부분이 틀렸는지 알려준다. ‘밥 마디께 먹어떠’라고 발음했다면, 전체 문장 중 ‘디’와 ‘먹어떠’의 발음이 틀렸다고 알려주고, ‘시’와 ‘머거써’라고 올바르게 발음할 때까지 연습을 돕는 것이다. “어디를 틀렸는지 빨간 글씨로 표시됩니다. 빨간 글씨가 사라질 때까지 연습하다 보면, 해당 문장의 발음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명 ‘바름’은 이런 서비스를 상징합니다. ‘발음’을 소리나는대로 ‘바름’이라 해서, 말하는대로 인식하는 서비스란 걸 나타내는 거죠.”  


사용자들과 비교해 내 발음 정확도가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고, 주로 틀리는 발음 정보를 통해 집중 연습할 수 있게 돕는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30개 문장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가운데 골라 연습할 수 있다. 고급 어휘가 들어가는 문어적 표현까지 여러 문장을 확보해 가고 있다. 지속적으로 DB를 확대해 연말까지 두꺼운 책 한 권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의 문장을 확보할 계획이다. 연습할 수 있는 문장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웬만한 문장은 다 들어갈 겁니다.” 


홈페이지(https://mybareum.com/)에서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구글플레이 등에도 공개할 예정이다. 월 사용료 3만3000원의 멤버십으로 구성했다. 3개월, 6개월, 1년의 가입 기간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가입해서 24시간 무료로 사용해본 뒤 마음에 들면 유료 전환하면 된다. 


한국어 발음을 돕는 서비스니,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도 유용하다. 영문 사용법 등이 포함된, 외국인을 겨냥한 버전은 연말 께 출시 예정이다. 

출처: 딕션
바름 서비스 화면
출처: 딕션
바름 서비스 화면

◇32만 청각장애인 시장


기존 음성인식 기술과 비교하면 궤를 달리 한다. 기존 음성인식 기술은 발음이 어떻건 정확한 문장으로 해석해서, 의도한 바를 알아차리고 그대로 실행하는 데 목적이 있다. ‘복음밥’ ‘보금밥’ ‘보끔밥’ ‘보끔빱’ 등 뭐라고 발음하건 ‘볶음밥’이란 정확한 단어로 알아듣는 것이다. 불명확한 발음도 정확하게 알아들을수록 좋은 기술이 된다. 그래야 뭐라고 발음하건 명령에 따라 볶음밥을 배달시키거나 대신 조리하게 할 수 있다. 


‘바름’의 음성인식 기술은 맞건 틀리건 그대로 알아듣고 글로 구현하는 데 목적이 있다. ‘복음밥’ ‘보금밥’ ‘보끔밥’ ‘보끔빱’ 등 뭐라고 말하건 발음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야 사용자의 발음이 어디서 틀리고 맞았는지 알 수 있다. 


바름은 딥러닝을 통해 인식률을 높여 가고 있다. DB에 없는, 사용자가 원하는 아무 문장이나 말해도 틀린 발음을 짚어내는 수준까지 도달하는 게 목표다. 굳이 DB를 구축할 필요 없이 내가 원하는 아무 표현이나 연습할 수 있는 것이다. “즉시 구현이 언제 가능할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음성인식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저도 모르거든요. 당장 내일 될 수도 있어요. 언제 가능할지 예측하기 어려우니 일단은 DB 구축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사람의 예상 수준을 뛰어넘어 기술이 스스로 진화하는 걸 보는 게 재밌습니다.” 


-서비스의 시장성은 얼마나 될까요. 

“우리나라 청각 장애인이 32만명에 이릅니다. 1차 타깃은 5%인 1만6000명입니다. 청각 장애인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바우처를 쓸 수 있는 기업으로 선정되면 큰 부담없이 우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선정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전세계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이 1억명에 이릅니다. 시장 규모는 3조원에 달하구요. 차근 차근 공략해 나가겠습니다.”

출처: 딕션
전성국 대표(왼쪽)와 바름 서비스 시연

◇메신저 음성 입력 서비스에서 힌트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재능이 있었다. 4학년 때 프랑스에서 열린 ‘칸 국제 광고제’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국내 예선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해야 대표로 뽑힐 수 있다. 졸업과 함께 당연히 대기업에서 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이란 이유로 면접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스타트업에서 승부보기로 했다. “스타트업이라면 제 능력만 봐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스타트업은 그에게 편견을 갖지 않았다. 소셜커머스 ‘루크리에이티브’에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기업평판 사이트 ‘잡플래닛’의 황희승 대표가 잡플래닛을 만들기 전 꾸렸던 회사다. 다양한 상품 런칭에 참여하면서, 대표 자리까지 경험했다. 게임회사 ‘로캣’으로 옮겨 여기서도 대표를 맡아 일하다가, 황희승 대표가 잡플래닛을 차리자 서비스 전략과 기획 담당으로 합류했다. 오프라인 판매전략이 궁금해서 ‘편강한방피부과학연구소’로 옮겨 화장품 마케팅을 맡기도 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팀장, 대표까지. 할 수 있는 경험은 다 한 것 같습니다. 업무도 디자이너로 시작해 마케팅, 웹기획 등 다양하게 경험했습니다. 스타트업을 경험한 덕에 창업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에 가지 못한 게 기회가 된 셈이죠.” 


바름은 카카오톡의 음성인식 서비스에서 힌트를 얻었다. 카카오톡 대화창에서 말을 하면 그대로 문자화해서 상대방에게 보낼 수 있다. 운전할 때 유용하다. “발음 연습에 좋았습니다. 내 발음이 정확하지 않으면 제대로 문자화되지 않으니, 문자화될 때까지 연습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거죠.”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일반인에게는 유용한 AI의 딥러닝이다. 어느 순간 내가 틀리게 발음해도 알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데이터가 쌓이면서 안좋은 발음도 알아듣게 되더라고요. 제 발음이 틀려도 문자화되는 겁니다. 사실 당연했습니다. 기존 음성인식 기술 딥러닝의 목표니까요.” 


카카오톡으로는 더 이상 발음 연습을 못하게 됐다. 대체 서비스를 찾았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내가 잘못 발음한 걸 알아먹는 서비스는 많았지만, 내가 잘못 발음한 대로 표기하는 서비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상인에게는 필요없는 서비스라서요.” 


순간 절망이 아닌 가능성이 보였다. ‘나한테 필요하다면 32만 청각장애인 모두에게 필요한 서비스 아닌가. 내가 직접 만들어 보자.’ 바로 음성인식기슬 공부에 들어갔다. “다 뒤져봤는데 발음한 대로 문자화하는 기술은 개발 자체가 되지 않았더라고요. 어려워서가 아니라 필요를 못느껴서였죠. 시장이 제한돼 있으니 대기업이 관심가질만한 기술도 아니었구요. 선점만 하면 대단한 경쟁자 없이 내 시장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음성인식기술 전문 업체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뜻이 좋다며 함께 해준 파트너 기업이 많습니다. 무척 감사한 일이죠. 빨리 좋은 기업이 돼서 모두 갚고 싶습니다.” 

출처: 딕션
전성국 대표(왼쪽)와 바름 홈페이지 화면

◇이를수록 좋은 게 타이밍


스스로 바름의 CEO이자 최고의 충성 고객이다. 매일 바름을 통해 발음 연습을 한다. 그래서 오래 얘기해도 발음이 안정적이고 자연스럽다. “바쁘면 단 5분이라도 쓰려고 노력합니다. 예전 생각하면 이렇게 편할 수 없습니다. 대학 수업 때 발표할 일이 있었어요. 5분 정도 되는 발표였는데, 저한테는 무척 난관이 많은 일이었죠. 대본을 적어서 계속 연습하는 방법 밖에 없었어요. 부모님이나 친구 앞에서 발음을 하면, 하나 하나 틀린 부분을 지적받아 고치고. 또 고치고. 발표하기까지 무척 오랜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바름 앱만 있으면 혼자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이용하면 좋겠습니다.” 


-예비창업자들이 참고할만한 성공 비결 하나 알려주세요. 

“스타트업에 있으면서 창업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일을 이미 경험해 본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 언제나 상의할 수 있는 어드바이저가 꼭 있어야 합니다. 가급적 모든 걸 경험해본 분일수록 좋습니다. 초보 창업자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예견하고 도움줄 수 있습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길잡이 역할도 해줄 수 있고요. 코파운더 없이 혼자 시작한 분이라면 특히 필요합니다. 겸연쩍어 하지 마세요. 선배 창업가들 만날 일 있으면 그냥 얼굴 들이밀고 인사 나누세요. 창업가들 모인 카톡방 끼워달라 하시구요. 그런 커뮤니티 꾸준히 참여하다 보면 저절로 어드바이저가 생깁니다. 저는 그런 조언해주는 분이 3~4명 계셔서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창업하고 보니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좀더 빨리 창업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는 딸이 4개월 때 창업했습니다. 돈이 많이 필요하기 시작할 때 창업한 거죠. 생활비 마련하느라 아르바이트 병행하고, 모아놓은 돈 다 쓰고, 개인대출까지. 창업 초반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었습니다. 가족 생계 부담이 없을 때 창업했다면 훨씬 더 일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겁니다. 심리적 부담도 없구요. 어차피 할 창업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게 좋습니다. 늦을수록 부담만 커집니다. 이를수록 좋은 게 타이밍입니다. 아직은 팀을 운영하는 기술이 부족한 것도 아쉽습니다. 일상 경영 업무에 신경 쓰느라, 서비스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얼른 숙달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 = 박유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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