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이 짓지 말라는 '성냥갑 아파트'의 변명

조회수 2019. 5. 12. 07: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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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재건축은 일방적으로 서둘러서 강남 개발 시대와 같이 난개발로 ‘성냥갑 아파트’를 지으면 안된다."

출처: /뉴시스
박원순 서울시장.

지난 4월 17일 열린 서울시의회 시정질의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른바 ‘성냥갑 아파트’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서울 시내 주택 286만여 채 중 58%(약 166만 채)가 아파트인데, 대부분 하나같이 성냥갑 아파트, 즉 판상(板狀)형으로 지어 도시 경관을 망쳤다는 주장이다.

출처: /서울시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도시건축혁신안.

서울시는 최근 재건축·재개발 아파트를 지을 때 따라야 할 용적률·높이·구획·디자인 등에 대한 지침을 담은 ‘도시 건축 혁신안’을 발표했다. 박 시장 성향상 앞으로 서울에 ‘성냥갑 아파트’를 새로 짓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와 건설업계에선 ‘성냥갑 아파트가 왜 나쁘냐’는 주장이 나온다. 소비자들도 유독 판상형 아파트만 금기시하려는 서울시의 지침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성냥갑 아파트’만큼 선호도가 높고 효율적인 상품도 없기 때문이다.



■살기 좋은 ‘남향’ 최대한 많이 지을 수 있어

출처: /금강주택
판상형 아파트는 디자인이 단순해 단지 전체를 남향으로 배치할 수 있다.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의 금강펜테리움 센트럴파크2차 아파트 조감도.

판상형 아파트가 소비자와 건설사 양측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우선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살기 좋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판상형 아파트를 보면 대부분 일조량과 채광, 통풍이 좋은 남향이다. 외관 디자인도 일(一)자로 단순해 최대한 많은 아파트를 남향으로 배치할 수 있다.

출처: /한양
'청량리역 한양수자인'는 1순위 청약에서 같은 주택형이라도 판상형의 경쟁률이 타워형보다 높았다.

판상형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는 청약 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 4월 19일 분양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한양수자인 192’는 판상형 구조인 84㎡E(이하 전용면적) 31가구 모집에 601명이 청약해 경쟁률이 19.39대 1이었다. 반면 타워형인 84㎡K 주택형은 72가구 모집에 120명만 접수했다. 경쟁률이 1.67대 1로 면적이 같은 판상형 주택에 비해 성적이 저조했다.

출처: /국토교통부
서울 은평구 '삼성래미안9단지' 84㎡ 실거래가 추이. 판상형이 타워형보다 시세 상승폭이 컸다.

시세 상승폭도 판상형 아파트가 더 크다. 선호도가 높아 거래가 잘되고, 환금성도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아파트에서도 판상형이냐, 타워형이냐에 따라 집값 상승에 차이가 난다. 은평구 진관동 ‘삼성래미안9단지’를 보면, 판상형인 84㎡A 형은 2018년 2월 5억9000만원(9층)이던 실거래가격이 올 2월 6억9500만원(6층)으로 올랐다. 1년만에 집값이 1억500만원 뛰었다. 반면 84㎡B는 2018년 1월 6억원(7층)에서 지난 1월 6억6000만원(5층)으로 6000만원 오르는 데 그쳤다.



■주택 공급에도 가장 효율적인 판상형


건설사 입장에서도 판상형 아파트를 분양하는 것이 좋다. 수요와 공급 원리에 따라 잘 팔리는 주택을 짓고 파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비용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대형 건설회사 관계자는 “정량적인 수치를 내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판상형 아파트는 다른 구조로 된 아파트보다 단위 면적당 공사비가 적고 공사 기간도 짧다”고 했다. 그 이유는 외부에 노출하는 건물 외벽 면적을 최소화할 수 있고, 내부 설계도 정형화돼 있기 때문이다.

출처: /서울시
서울시의 도시건축혁신안에서 제시하는 아파트 디자인 가이드라인.

그렇다면 서울시가 판상형 아파트를 억제하는 대신 새로 짓고자 하는 아파트는 어떤 것일까. 서울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도시 경관이 획일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혁신안을 발표한 것”이라면서도 “지역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설계안이나 조감도는 준비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성냥갑 디자인 때문에 도시가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최근 아파트가 담장이나 녹지, 커뮤니티 시설로 둘러싸인 대규모 단지 형태로 지어져 주민들이 고립돼 생활하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함인선 한양대 특임교수는 “문을 열면 바로 보도와 맞붙은 형태로 지어진 파리의 가로형 주택 같은 것을 대안으로 삼으면 아파트를 짓더라도 충분히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단순히 외관 디자인만 규제하면 된다는 건 넌센스”라고 했다.



글=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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