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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집 지으려면 훈수에 흔들리지 마라"

조회수 2018. 2. 11. 16: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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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 멘토-조성욱] 서판교에 듀플렉스 주택 '무이동(無異同)' 지어 화제..건축주 취향과 건축가 스타일, 대지 특성 다 맞아야

'부동산의 중심' 땅집고가 실패하지 않는 집짓기로 가는 바른 길을 제시하는 '제2기 조선일보 건축주 대학'이 오는 22일 문을 엽니다. "좋은 집은 좋은 건축주가 만든다"는 말처럼 건축주 스스로 충분한 지식과 소양을 쌓아야 좋은 건축가와 시공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2기 과정을 이끌 멘토들을 미리 만나 그들이 가진 집짓기 철학과 노하우를 들어봤습니다.

조성욱 조성욱건축사사무소 대표

[집짓기 멘토] 조성욱 조성욱건축사사무소 대표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디테일에 대해 많이 고민해야 합니다.”


조성욱 조성욱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좋은 집의 조건’을 묻자, 주저없이 디테일을 꼽았다. 가족들이 하루 종일 생활하기 때문에 ‘맞춤형’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만족도도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조 대표는 10여 년의 직장생활을 접고, 2011년 경기도 성남시 서판교에 가족만을 위한 집을 짓기로 했다. 의기투합한 친구 가족도 함께 했다. 대지 70평에 연면적 50평짜리 2동(지하 1층, 지상 3층)을 지으며, 듀플렉스 주택으로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무이동(無異同)’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다르지도 같지도 않다는 뜻이다. 조화를 이루지만, 존재감은 드러내겠다는 의지를 그대로 담았다.


그는 이후 경기도 건축문화상 동상, 특별상, 신진건축사대상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판교에 지은 듀플렉스 주택 '무이동'. /조성욱건축사사무소

무이동을 짓고 나서, 이를 보고 찾아 든 이웃들의 집을 더 짓게 됐다. 글로벌 기업 임원의 집 등을 포함해 총 52건의 프로젝트를 맡았다. 그 중엔 지난해 1월 작업을 시작한 경기도 김포 지역의 타운하우스도 포함됐다.


설계를 의뢰했던 중견 시행사는 조 대표의 섬세한 작업을 높이 평가했다. 설계 과정의 디테일을 마케팅 전략으로 내세울 정도였다. 인근 대기업 건설사의 타운하우스보다 분양가를 올렸음에도 더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하지만 조 대표는 여전히 건축보다는 획일적인 건설 문화가 팽배하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실례로 건축과 학생들조차 ‘도면을 친다’는 표현을 쓰며 자신의 일을 비하하고 있다. ‘도면을 그린다’가 맞다”고 했다.


그는 “해외공보관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싱가포르와 노르웨이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면서 “건축을 공부하며 우리 삶의 환경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건축은 삶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려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판교 운중동 단독주택 ‘하얀돌집’. 대지의 두 면이 도로에 접해 있어 중정 중심으로 대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집을 구성했다. 이 집의 가족들은 매우 활동적이어서 거실에서 바로 중정으로 나와 농구나 암벽을 탈 수 있도록 정원과 운동공간을 혼용했다. /윤준환

Q.

판교를 시작으로 단독주택을 많이 설계했다.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뭔가?

A.

주택은 다른 건축과는 다르게 그 공간에 거주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삶이 담기는 곳이다.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는 색깔, 향기, 온도 등이 다 다르다. 불특정 다수를 위해 만들어진 아파트와는 달리, 단독주택은 그 집에 사는 사람의 개성을 200% 반영해 만들어진 우리 가족만의 삶의 그릇이다. 집주인의 취향과 건축가의 스타일, 그리고 대지 특성의 삼박자가 잘 어우러진 집이 좋은 집이다

Q.

대부분 건축주는 건축사무소가 아닌 시공회사부터 찾아서 계약한다. 

A.

세상의 모든 일은 ‘기획과 실행’의 단계를 거쳐서 이뤄진다. 각 단계별로 전문가들이 있다. 건축물도 건축주가 설계(기획) 전문가인 건축가와 함께 설계안을 만든 후 그것을 실행할 시공사를 찾는 것이 맞는 과정이다. 주택 정도의 규모에서는 집주인이 직접 설계하고 짓기도 하고, 그것을 둘 다 하는 업체에 일임하기도 하지만,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것이 내 몸에 더 걸맞은 맞춤옷을 만들 수 있다.

Q.

최근 주택에서 프라이버시(사생활) 공간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A.

아름다운 주택가의 모습은 대지가 여유 있어 적당한 수목들 사이에 집이 놓이는 것이다. 그럴 경우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요구가 그리 크지 않은데, 서울과 같은 밀도 높은 도시에서는 쉽지 않아 결국 집들 사이에 나무 몇 그루 놓는 정도다. 갈수록 밀도는 높아져 최근에는 이웃집들 간에 서로 들리지 않고 들여다보이지 않게 설계 때부터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판교 운중동 단독주택 ‘고래등’. 3면이 도로로 둘러싸여 내부가 들여다 보이지 않도록 1층 내부의 창은 눈높이보다 높게 설치했다. 대신 집의 가운데 중정을 둬 마당을 만들었다. /윤준환
중정에서 지하로 직접 내려가는 계단을 두고 자연 채광 및 환기 유입에 집중했다. /윤준환

Q.

집짓기 설계 단계에서 주부들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A.

주택의 중심은 L-D-K, 즉 거실-식당-주방의 배치다. 그 배치의 중심에는 주부의 동선이 있고 당연히 주부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설계 시 집 전체에서 주방의 배치에 따라 다른 공간들도 연쇄적으로 구성되며, 그런 과정에 따라 전체적인 집의 형태와 공간이 구성된다.

판교 운중동 단독주택 ‘임소재’. 대지 앞으로 도로가 지나고 있다. 주방,거실을 1층에 배치해 큰 창을 냈을 경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커튼을 치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밖에서는 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으면서도 내부에서는 녹지를 즐길수 있도록 LDK(거실-식당-주방)를 2층에 배치했다. /진효숙

Q.

다양한 건축주를 만나는 과정에서 터득한 커뮤니케이션 노하우가 있나.

A.

너무나 쉬운 얘기지만, 건축주의 이야기를 잘 들으면 된다. 어떤 생각으로 새로 지어질 집을 대하고 있으며, 어떤 마음으로 건축가에게 그걸 전하는지에 따라 집의 방향은 정해진다. 건축가의 일이 설계를 하고 완공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집에 살고 있는 집주인으로부터 집에 대한 후기를 들으면서 이론이 아닌 집에 대한 실제적인 경험치가 쌓여있으면 설득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강원도 양양 단독주택 ‘고래바위집’. 바닷가 근처에 지은 이 집의 건축주는 대지에 있는 큰 바위들을 어떻게 버릴까를 고민했다. 바위들의 모양을 보니 새로 구하기에도 비싸 보이는 매우 아름다운 모습들이여서 버리는데 돈 쓰지 말고 다양하게 이용하자고 설득했고, 건축주는 매우 만족했다. /남궁선
거실 창 밖으로 고래 모양 바위가 보인다. 조 대표는 이 집의 이름도 ‘고래바위집’이라 지었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기획 단계부터 서로 소통하며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사례로 꼽힌다. /남궁선

Q.

일반적으로 건축주들이 가장 실수하는 부분은.

A.

가장 큰 실수는 내가 의뢰를 맡긴 건축가를 신뢰하지 않는 경우다. 의사, 변호사에게 의뢰할 때에도 그 사람을 신뢰하지 않으면 병도 낫지 못하고, 송사도 이길 수 없다. 일단 내 집을 설계할 건축가를 정했다면 주위 사람들의 여러 가지 훈수에 흔들리지 말고 우리 건축가를 믿고 가야한다.

Q.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건축 재료는 무엇인가.

A.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벽돌은 질리지 않고, 외부 오염에 대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으며 유행도 잘 타지 않는 재료다. 벽돌시공 기술이 더 발전해 고층 건물에도 습식이 아닌 건식으로 많이 시공되고 있다. 가격대비 세련되게 사용할 수 있는 벽돌은 색깔이나 쌓는 방식에 따라 자유롭게 디자인을 할 수 있어 특히 요즘에 건축가들 사이에서 더 많이 애용되고 있다.

김포한강신도시 타운하우스 ‘라피아노’. 174세대의 타운하우스 외벽은 일부 노출콘크리트를 제외하고는 전부 벽돌을 사용했다. 자연과 제일 가까운 벽돌은 북유럽풍의 부드럽고 따뜻한 주택의 느낌을 연출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조성욱건축사사무소

Q.

이번 강의에서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A.

우리 사회에서 건축가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근대화 과정에서는 주택의 물량 조달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삶의 질이 단연 화두인 시대다. 사람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요구하는 삶의 수준도 높다. 거기에 맞춰 라이프스타일 전문가인 건축가들도 소양을 더 갖춰야 하고, 건축주들도 높은 수준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좋은 건축가와 시공자를 선택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글=오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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