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은 스토리 보물창고.. 집 짓고 책 펴내는 건설사 대표

조회수 2017. 11. 25. 06: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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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을 꼽는다면 바로 믿고 맡길 만한 시공사를 찾는 일입니다. 비용과 시간을 아끼려다가 곤욕만 치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땅집고는 한국건축가협회와 새건축사협회가 매년 발표하는 ‘건축 명장(名匠)’에 뽑힌 시공사들을 골라 그들이 전하는 건축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명장을 만나다] 이정우 사람중심건설 대표 “시공사진에 현상소장의 생각 담아야”

이정우(39) 사람중심건설 대표는 건축가들이 설계한 집을 주로 짓는다. 2012년 대형 건설사에서 나와 창업할 때 사업아이템은 건축시공이 아니었다. 건축주에게 믿을 만한 시공회사를 소개해 주고, 집짓는 과정을 모니터링해주는 ‘건축 컨설팅’이었다.

“철근 제대로 넣는지 감독하는 감리(監理)가 아니라 주택이 완성될 때까지 건축주 옆에서 코치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잖아요. 시공사가 기술적인 문제가 생기면 도움도 주고요. 꼭 필요한 일이라고 주변에서 격려를 많이 받았어요.”

이정우 사람중심건설 대표

이 대표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에 컨테이너 사무실을 차렸다. 이 무렵 판교에선 1년에 100여개의 단독주택 공사가 이뤄졌다. 발품을 팔아 괜찮은 시공사 목록을 추리고 나서 온라인으로 먼저 홍보에 나섰다. 주말에 판교 주택 투어에 나선 수요자들에게 전단지도 돌렸다. 설계도를 들고 고객들이 찾아왔지만 시공회사 연결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공회사가 보통 영세하거든요. 시공회사를 알아갈수록 ‘이 회사가 정말 잘하는 회사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현장소장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는데 회사만 믿고 소개해도 되는 지도 망설여졌구요.”

고민이 깊어질 즈음 건축주와 시공회사 중계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사업 시작 6개월 만이었다. 공사가 시작됐지만 공사를 모니터링하던 이 대표는 곧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고 느꼈다. 자신이 주로 맡았던 아파트 등 대형 현장은 제때 완공하는 공정관리가 업무의 90%를 차지했다면, 단독주택에선 품질관리 비중이 90%였던 것이다.

출처: 사람중심건설
벽돌의 세로를 붙여 가로선이 강조된 판교신도시 운중동의 '탱고레드 하우스'.
출처: 사람중심건설
외벽의 재료가 내부로 이어지는 '1층 주방.

집 한 채 지으면 책 한권이 뚝딱


이 대표는 컨설팅 사업을 1년만에 완전히 접었다. 대신 자신과 최초이자 마지막인 프로젝트를 함께 한 시공회사에 들어갔다. 주로 영업과 현장관리를 맡다가 2년여 만에 다시 회사를 나왔다. 그는 “제대로 된 집을 짓는 것과 사업은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며 “자금 문제, 특히 손실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회사를 이끌어 가는지에 관한 관리 측면을 배웠다”고 했다. 

이 대표가 시공회사에서 나오기 전까지 현장소장으로 지은 집은 두 채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떻게 2015년 종합건설사를 차리고 3년만에 한국건축가연합으로부터 ‘건축 명장’에 선정될 수 있었을까. 2016년 지은 판교의 단독주택은 각각 경기도건축문화상과 신진건축사대상을 받았다.

그 비결은 이 대표의 기록노트에 있다. 공사 과정을 매일 사진 찍어 정리하고 협력사와 가진 회의 결과다. 현장에서 디테일한 작업을 하는 과정에 자신의 해석을 덧붙여 놓은 보물 같은 기록이다. 꼼꼼한 기록과 학구열이 건축가들과 건축주들에게 알려지면서 연 매출 50억원을 넘겼다.

기록노트는 상가주택, 단독주택 등 2편의 ‘아키테일 노트’ 시리즈로 출판돼 현재 3쇄까지 나왔다. 책을 들고와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는 학생, 집을 지어달라는 건축주도 많이 찾아왔다. 책이 영업상무 역할을 했다.

출처: 최락선 기자
3쇄를 찍은 아키테일 노트 시리즈(왼쪽)과 내년 출간 예정인 책.
출처: 사람중심건설
서울 성북구 삼선동 '에스하우스(S house)'.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 연면적 89㎡(27py) 협소주택으로 외벽 두께를 최소화하기 위해 벽돌을 얇게(20mm) 켜서 붙인 것이 특징이다.
출처: 사람중심건설
에스하우스(S house)의 2층 거실과 주방.

“건축가마다 디테일이 있거든요. 시공회사가 도움을 주면 매끄럽게 풀릴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 과정은 현장에 있지 않으면 알수 없죠. 도면에는 벽돌 사이즈나 매지간격이 모두 적혀 있는 것은 아닌데, 저는 그런 것들을 다 적어놨죠.”


이 대표는 내년 초 기록노트 3권, 하반기에 추가로 3권을 더 출판할 예정이다. “매일 진행되는 현장상황을 일기처럼 기록해요. 쌓이면 컨텐츠가 되거든요. 사실 시공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현장 하나를 마치면 꼭 출판할 생각입니다.”


그는 시공회사에서 건축주들에게 보내는 현장사진에 아쉬움을 털어놨다. “의미없는 사진들이 많아요. ‘시공회사가 놀지 않고 있구나’ 이 정도 수준 밖에 안돼요. 저는 현장소장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고 봐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 건축주가 사진을 보는 조횟수가 급격하게 떨어져요.”

출처: 사람중심건설
베이스패널과 징크, 목재를 사용한 분당신도시 구미동 단독주택.
출처: 사람중심건설
지하에서 지상 2층까지 거실과 동일한 바닥으로 마감된 계단.

“1000만원 재료로 500만원짜리 시공할건가”

  이 대표는 현장의 기록을 토대로 준공보고회도 연다. 건축가나 다른 시공회사를 초청해 건축과정에서 티테일의 완성도를 높인 부분을 공유한다. 내용이 전문적이어서 건축주가 참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자신의 노하우를 이렇게 공개해도 될까. 이 대표는 손사래를 쳤다. “케이스마다 방법이 다 달라요. 하나의 사례를 보여주는 정도입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마감을 했다는 거죠. 시공사가 노하우나 기술력을 갖고 있더라도 기술 전수가 잘 안되는 이유는 기록이나 정리를 잘 못해서 그래요. 엔지니어들이 포장을 잘 못해서....”


이 대표는 설계를 잘 받아놓고도 공사비를 줄이려다가 집을 망치는 경우를 우려했다. “설계도만 있으면 누가 공사하더라도 똑같이 나올거라는 생각은 잘못됐어요. 중요한 디테일을 설계에 넣었는데, 돈 많이 들어간다고 다 빼고 쉽게 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많아요. 비싸게 지으면서 잘못 짓는 집들도 많아요. 재료비는 평당 1000만원을 쓰면서 시공법이 500만원짜리인 셈이죠. 결과적으로 돈만 바른 집밖에 안됩니다.”


그는 건축주가 주택의 시공법에 집착하면 손해가 많다고 지적했다. “건축실무 공부를 많이 한 건축주가 책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집을 짓고 싶다고 할 때가 있어요. 그걸 구현하는 방법은 열 가지가 넘어요. 시공사에게 자율성을 줘야 해요. 시공사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소득없이 분쟁만 생기기도 합니다. 시공사도 책임감을 가져야죠. 건축주는 공간활용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최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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