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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한 살에 시작한 건축.. 인생이 바뀌었다

조회수 2017. 11. 18. 06: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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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을 꼽는다면 바로 믿고 맡길 만한 시공사를 찾는 일입니다. 비용과 시간을 아끼려다가 곤욕만 치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땅집고는 한국건축가협회와 새건축사협회가 매년 발표하는 ‘건축 명장(名匠)’에 뽑힌 시공사들을 골라 그들이 전하는 건축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명장을 만나다] 신재호 도시건축종합건설 대표 “작품하듯 집짓고 싶다” 


신재호(55) 도시건축 대표는 마흔 한 살에 건축일을 배웠다. 이전까지 건축과 무관하게 살았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고, 고등학교 정규교육도 마치지 못 했다. 풍족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그는 열 여덟 살에 집을 뛰쳐나왔다.

“스스로 일어서고 싶은 욕망이 컸어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도 많이 해서 손이 찢어져요. 그러면 자기 전에 바세린을 손에 바르고 비닐 장갑을 끼고 잤어요. 잘 곳이 없어 공사판에서 잠을 잔 적도 수두룩했죠.”

출처: 도시건축종합건설
신재호 건축가

고된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20대 초반, 서울 남대문 의류 도매시장에 디자인한 옷을 팔면서 술술 풀렸다. 그는 “돈 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로 큰 돈을 만졌다”고 했다. 20대 후반에는 홍대 주변에 카페를 차렸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시도한 것이 대박을 쳤다. 신 대표는 “1990년대 후반 홍대 문화를 이끌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하지만 큰 돈을 일찍 만진 것이 독이 됐다. 신 대표는 “영화처럼 살았다”며 말을 아꼈다. 방황하던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아버지였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작은 건설회사로 들어오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마흔이 넘어 건축과 인연이 시작됐다.

그는 “내가 했던 패션 디자인, 카페 운영이 건축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내 감각과 건축 기술을 접목시켰을 때 시너지가 날 것으로 믿었다”고 했다.

“디자인·설계·시공 삼위일체로 완성도 높여”

신 대표는 2005년부터 2년 동안 악착같이 배웠다. 낮에는 현장을 누볐고 밤에는 전기팀, 설비팀 같은 부문별 팀장들로부터 ‘과외’를 받았다. 자정 이전에 집에 들어갈 생각은 꿈도 못꿨다. 그렇게 지독하게 배웠더니 건축의 윤곽이 잡혔다.

2012년 신 대표는 자신의 회사를 세우고 경기도 성남시 서판교에 자리를 잡았다. 시공사로 참여한 서울 논현동 ‘d’A 프로젝트’로 올해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건축명장)을 받았다. 한국건축가협회와 새건축사협회가 주는 건축명장에도 올해 처음 뽑혔다. 벽돌 40만개를 쌓아올린 운중동 ‘1010빌딩’은 2015년 경기도 건축문화상을 받았다. 출발은 남들보다 늦었지만 남부럽지 않은 성과를 냈다. 그 사이 회사는 연 매출 80억원 안팎으로 성장했다.


출처: 도시건축종합건설 제공
벽돌 40만장을 사용한 판교신도시 운중동 '1010 빌딩'.
출처: 도시건축종합건설 제공
이면도로에서 바라본 운중동 1010 빌딩.

신 대표는 시공도 하지만 디자인과 설계도 함께 한다. 신 대표가 건물의 디자인을 하면 파트너들이 전기설비와 토목, 구조 같은 실측 설계를 한다.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자신이 시공해 건물을 완성한다. 시공까지 연결되지 않고 디자인과 설계만 하기도 한다.


“디자인, 설계, 시공을 함께 하면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사무실에서 그림만 그리면 잘 모르거든요. 설계할 때부터 시공을 염두해 두기 때문에 마감 디테일 시공에 강점이 있습니다. 디자인에 관해선 건축주를 설득해서 끌고 나가는 편입니다. 튀지않고 비우는 디자인을 좋아하죠. 멋을 내서 멋쟁이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멋스러운 것처럼 말이죠.”

 

신 대표는 1년에 3개 현장 이상을 하지 않는다. 현장이 많아지면 자신의 스타일대로 진행이 안되기 때문이다. “옷을 대량 생산한 것과 서울 소공동의 부티끄샵에서 만드는 것은 다르잖아요. 작품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하다보니까 다작(多作)은 힘드네요.”


출처: 도시건축종합건설 제공
판교 운중동 갤러리 하우스.

“내 가치 인정해 주는 사람과 일하고 싶다”

  그렇다면 신 대표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뭘까. 신 대표 사무실이 있는 ‘운중동 1010’을 꼽았다. 이 건물 지하 1층 주차장 옆에는 그의 사무실이 있다.  

“벽돌이 40만 장이 들어갔어요. 벽돌을 갈아내고 깎고 가공을 해서 모양이 다 달라요. 옛 느낌을 살리면서 빈티지한 느낌을 복원했어요. 벽돌 한장 한장은 소박하지만, 수십만장을 쌓아올렸을 때 매스(Mass)가 주는 묵직한 느낌이 좋습니다.”

신 대표는 시공비는 최저가를 고집하면서 높은 퀄리티(품질)를 바라는 건축주들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집짓는 과정이 힘들고 속썩는 이유는 건축주에게 있어요. 너무 저가 공사를 하려고 해요.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시공사 마진이라는 것이 뻔합니다. 이윤 포기하고 관리비만 나와도 공사하는 곳이 있지만, 손해보고 공사할 건설사는 없어요. 같은 목수를 쓰더라도 20년차 목수와 1년차 목수는 실력차가 납니다. 같은 금액의 공사라도 완성도에서는 차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출처: 도시건축종합건설 제공
서울 논현동 근린생활시설 '246'. 스페이스연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하고 도시건축종합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출처: 도시건축종합건설 제공
가라앉은 회색톤의 시멘트 고압 벽돌로 외부를 마감한 '아이를 위한 집' 단독주택 906.
출처: 도시건축종합건설 제공
서울 중구 황학동 '2152 빌딩'. 신재호 대표와 이상대 스페이스연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설계하고 시공은 신 대표가 맡았다.

신 대표가 공사를 직접 맡을 때는 어떻게 할까. “(건축주들이)여러 곳에서 견적서를 받고 공사를 진행하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저는 건축주의 재산 가치를 늘려주는 사람입니다. 저를 인정해주는 분들과 일하고 싶어요. 경쟁을 부쳐서 명품을 만들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계약할 때 양보를 잘 안 합니다.”

그는 일반적인 건축가, 시공사 대표와 다른 경로를 거쳐 건축업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건축주들이 오히려 신뢰를 많이 해준다”며 “사고방식이 자유롭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글= 최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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