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최고 부촌 평창동, "이젠 집 팔아도 강남 못가"

조회수 2017. 9. 10. 12: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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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품 리포트] 흔들리는 1세대 부촌 "수요가 없어"
출처: 심기환 인턴기자
우리나라 1세대 부촌인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단독주택촌.

지난달 31일 서울시청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광화문, 경복궁을 지나 자하문로를 따라 약 30분을 달리자 북한산 자락 아래로 종로구 평창동 단독주택촌이 보였다. 정류장에서 내려 북한산 방향으로 10여분을 더 올라가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저택이 즐비한 1세대 전통 부촌(富村) 평창동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집 팔아도 강남 아파트 못 사”

평창동은 1970년대부터 서울 성북구 성북동과 함께 우리나라 양대 전통 부촌으로 군림했다. 강남구 압구정동과 대치·도곡동 등 신흥 부촌이 등장하기까지 20년 넘게 유일한 부촌으로 꼽혔다. 평창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와 명예를 상징했다. 1980년대 전후반 제작된 드라마를 보면 부잣집 사모님이 “평창동입니다”라며 전화받는 모습이 단골처럼 등장했다.

출처: 서울시
1996년 촬영한 평창동. 뒤편으로 북한산이 보인다.

평창동에 둥지를 튼 정·재계, 문화·연예계 유명인사들은 수두룩하다. 이낙연 국무총리,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몽준 현대중공업 이사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가수 서태지, 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등이 평창동에 거주했거나 지금도 살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 정몽준 아산재단이사장, 차범근 전 축국 국가대표팀 감독(왼쪽부터)


그러나 최근 평창동은 예전 명성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지난달 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400명에게 향후 5년 내 어떤 지역이 부촌이 될 것 같냐고 물었더니, 성북동·평창동 등 전통적 부촌 비중은 감소하고 반포동과 송파구 잠실동 비중이 높아졌다.

출처: 심기환 인턴기자
평창동에는 골목 사이로 고즈넉한 분위기의 단독주택이 즐비하다.

평창동 단독주택 주민 장영아(66)씨는 “20년 전 평창동에 왔을 때는 (강남이랑 집값이) 비슷했다”면서 “지금은 (집을) 팔아도 강남에 못 간다”고 했다. 그는 “요새는 오히려 강남 사람은 아파트 하나를 팔면 평창동 집을 사고도 돈이 남는다”고 했다. 

강남 집값 35% 뛰었는데
평창동은 “3년전 그대로”

출처: 부동산114(매년 연말 기준. 올해는 9월 1일 기준)

평창동에서 실거래가 25억원 이상 단독주택의 최근 3년간 실거래가를 살펴보면, 대체로 대지 3.3㎡(1평)당 1200만~2200만원대에서 거래됐다. 평창동 단독주택은 거래량이 많지 않고 물건별로 입지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평창동 공인중개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집값은 최근 3년 큰 변화가 없다. 평창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주택이 산자락에 있어 도로가 좁고 경사가 있다 보니 수요자들은 주차하기 편리한지를 중요하게 고려한다”면서 “도로가 널찍한 평창30길 근처 등은 매매가가 꽤 올랐지만, 나머지는 약보합세”라고 말했다. 그는 “알짜배기 입지를 제외하면 수요가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출처: 국토교통부
최근 3년간 25억원 이상에 거래된 평창동 단독주택 3.3㎡당 매매가격.

다른 평창동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20억원을 넘는 비싼 집이 많긴 하지만, 대체로 대지가 150평 이상으로 넓어서 그렇다”면서 “반포동 아파트는 40~50평짜리가 30억원도 넘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이어 “단독주택만 비교해도 평창동은 옆 동네인 성북동보다 3.3㎡당 매매가가 600만원 정도 저렴하다”고 했다. 


실제로 부동산114에 따르면 평창동 집값이 정체한 동안 반포동 아파트의 3.3㎡당 매매가는 2010년 3788만원에서 올해 4915만원까지 35% 올랐다. 저점인 2013년(3355만원) 이후부터 4년 동안엔 46%나 뛰었다.

출처: 조선DB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

전문가들은 과거 부자들이 당연히 단독주택에 살았다면, 2000년대 초반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필두로 최근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까지 초고가 주상복합과 아파트가 등장하면서 수요가 분산돼 부촌 지도가 바뀌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평창동 고가 단독주택은 매물이 별로 없고 고정 수요층이 있어 향후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과거 부자들은 무조건 저택에 살려고 했다면, 지금은 고급 아파트를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그래도 평창동은 일반 부동산 시장과 다른 ‘그들만의 리그’여서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 가격에 그리 민감하지 않아 가격 변동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위원은 “부촌이 다양화되고 확대되면서 전통 부촌이 과거에 비해 위축되는 모습”이라며 “그러나 부촌은 쉽게 대체되지 않고 확대되고 분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력이 주춤할 뿐이지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글=고성민 기자, 이지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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