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최고 레스토랑에 한국인 셰프가 있다?

조회수 2018. 3. 9. 10:56 수정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2년 만에 수셰프 @.@

 

남미 1위 레스토랑(월드베스트레스토랑50 2014)

- 전 세계 4위(월드베스트레스토랑50 2015) 

- 미쉐린스타


전 세계 미식가가 몰려드는 페루 리마의 센트럴(CENTRAL) 레스토랑. 



출처: 페루 리마에 위치한 센트럴 레스토랑 [사진=리얼푸드]
통유리 너머 주방의 제일 앞자리에 선 동양인 셰프는 유독 눈에 띕니다. 주방 안 유일한 한국인. 차분하고 정교한 셰프의 움직임으로 사람들의 시선도 향하곤 하죠. 손님들은 종종 그의 국적을 궁금해합니다. 몇 번쯤 같은 답변이 들려오기도 합니다.

“히 이즈 코리언(He is Korean)”
출처: 센트럴 레스토랑의 정상 셰프 [사진=리얼푸드]
바로 센트럴 레스토랑의 정상(31) 셰프입니다 !

페루 리마에서 정상 셰프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정상 셰프가 센트럴에 입성한 스토리도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당시는 2015년 1월. 호주 시드니의 파인다이닝 키(Quay)에서 일하던 정상 셰프는 페루와 덴마크로 이메일을 한 통씩 보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기 높은 레스토랑 중 하나인 센트럴(CENTRAL)과 덴마크 노마(NOMA)로의 인턴 지원 메일이었죠. 노마는 세계 최고 레스토랑에 4번이나 선정, 해마다 100만명이 예약하는 곳입니다.
“그 때 센트럴은 세계 15위, 남미 1위 레스토랑이었어요. 플레이트가 굉장히 독특한 곳이었죠. 두 달을 기다렸는데 답장이 안오더라고요. 스토리를 바꿔 다시 이메일을 보냈죠.”

3주 뒤 답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2015년 3월. 때마침 뜬 ‘프로모션 항공권’을 구매해 리마로 날아왔습니다.
그 때 ‘세계 1위 레스토랑’인 노마에서 답장이 왔죠. 인턴 지원 합격 메일.

“그런데 저도 알고 있었어요. 노마에 가면 제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요. 전 세계 유명 레스토랑의 수셰프들이 인턴을 하겠다고 오는 곳이 노마니까요. 덴마크로 가면 정식 비자를 가지고 일할 수 없을 지도 몰랐죠. 그러면 3개월 후 한국으로 올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페루에 가면 4년은 돌아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출처: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 센트럴 오너 셰프와 4명의 메인 셰프 [사진=리얼푸드]
정상 셰프는 인턴 2주 만에 정직원으로 채용됩니다. 채용 3일 뒤 센트럴은 ‘2015 월드베스트레스토랑50’에서 4위에 올랐습니다. “그 때 셰프한테 가서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어요. (웃음) 센트럴에 온 건 지금까지 했던 여러 결정 중 손 꼽을 수 있는 잘 한 결정이었어요.”
출처: 센트럴 레스토랑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 셰프 [사진=리얼푸드]
“인턴에서 수셰프까지”…주방은 정글
센트럴 입성 2년 2개월.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Virgilio Martínez) 셰프는 처음으로 함께 일해 본 한국인을 수셰프(Sous-Chef) 자리에 앉혔습니다. 수 셰프는 부주방장으로 주방에선 헤드셰프 아래 2인자죠. ‘초고속 승진’입니다. 그간 별별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상, 너 여기서 잔다며?”

일벌레였던 정상 셰프에게 따라다닌 소문의 실체입니다.
“여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어요.”
출처: 센트럴 레스토랑 [사진=리얼푸드]
주방은 ‘정글’입니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도 서로의 포지션을 빼앗아야 하는 곳이라고 하죠.

“주방에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해요. 내가 빼앗지 않으면 내 자리를 먼저 뺏기는 곳이죠. 저도 예전엔 몰랐어요.”

해외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정상 셰프에게 타국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인의 정서’로 ‘정글의 법칙’에 적응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죠.
출처: 정상 셰프 [사진=리얼푸드]
“셰프들이 뭔가를 이야기하면 무조건 내 잘못인 것처럼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외국에선 내 잘못이 아닌데 미안하다고 하면 무슨 잘못이 생길 때마다 계속 그 사람을 지적해요. 그 땐 반드시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의사 표시를 해야해요. 그게 한국인의 정서로는 너무나 어려웠어요.”

이후 센트럴의 모든 파트(콜드, 핫, 가니쉬, 그릴, 소스, 스낵)을 거쳤고,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수셰프가 됐습니다.
출처: 센트럴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 [사진=리얼푸드]
기회는 언제나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고 하죠.

정상 셰프는 그러나 “실력만 보고 수셰프가 된 건 아니”라며 자신을 낮췄습니다. “성실함이나 우직함을 많이 봐줬던 것 같아요. 남미엔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캐릭터가 있어요. 그래서 리스크가 없는 캐릭터를 원해요. 일관성 있는 사람이요.”
 
지난 2년, 정상 셰프의 세계엔 센트럴과 집 밖에 없었다. 이 곳은 페루였지만, 그에겐 곧 ‘센트럴’이기도 했다. 수험생처럼 ‘직장’과 ‘집’만 오갔다. “가끔 바다를 바라보면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웃음)”
출처: 센트럴 레스토랑의 ‘푸드 연구소’인 마테르 이니시아티바(Mater Iniciativa)
"언젠가는 한국으로"
정상 셰프가 있는 센트럴 레스토랑은 페루의 다양한 생태계를 접시에 담아내는 독특한 레스토랑입니다.

고도(高度) 개념을 활용한 천재적인 코스 메뉴엔 페루 사람들도 알지 못 하는 식재료가 오릅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스토리텔링과 경험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곳이죠.
출처: 센트럴의 코스 요리 [사진=리얼푸드]
“센트럴에 온 건 독특한 식재료를 찾는 시스템이나 요리 과정, 셰프가 생각하는 방식과 철학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센트럴의 코스는 하나의 새로운 스토리예요.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전통적인 이야기를 꺼내놓고 있어요. 하지만 절대로 연관이 없는 스토리를 담지 않아요. 영리한 스토리텔러죠. 요즘엔 셰프도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흥미롭게 연출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죠.
출처: 센트럴 레스토랑 [사진=리얼푸드]
식재료의 천국이며, 미식 도시인 페루에서의 경험은 ‘요리하는 사람’에겐 축복입니다. 이 곳에서의 경험을 발판 삼은 정상 셰프의 최종 목적지는 ‘한국’으로 향해있습니다. 경력을 쌓은 뒤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항상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한국에도 실력자들이 굉장히 많아요. 어느 나라 셰프들 못지 않게 요리를 사랑하고 지식이 방대해요. 지금 한국에 돌아간다면 센트럴이 정점에 있으니 주목을 받을 지도 모르죠. 하지만 바로 내려와야 할 거에요. 더 실력을 쌓아야죠. 조금 더 배운 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출처: 정상 셰프 [사진=리얼푸드]
페루를 담아낸 센트럴에서의 경험은 그의 목표를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것을 하고 싶어요. 전통 한식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단 한국에서 나는 식재료만을 이용해 한국적인 감성이 묻어나는 요리를 하고 싶어요. 한국만이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을 찾아 그것을 확립시킬 수 있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리얼푸드=고승희 에디터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