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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부동산 폭락 시그널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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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떨어진 한국 아파트값 …원인은 무엇?

반포1단지 3주구가 분양가 360만원에서 50년만에 26억원을 넘긴 지금까지. 한국 아파트 가격은 우리 경제규모가 성장한 속도만큼이나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그러나 하늘 모르고 치솟던 한국 아파트도 떨어진 적이 있는데요. KB부동산 시계열 자료를 분석해보면 2000년대 이전에 두 번, 이후에 두 번 있었습니다.


원인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국가적인 경제위기, 그리고 대규모 신도시 아파트 공급입니다.


1990년대 초반엔 분당신도시를 시작으로 1기신도시 입주가 본격 시작됐고, 1997년 11월, 드디어 IMF 외환위기가 터지며 전국 집값이 폭락하게 됩니다. 이후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다시금 폭등했던 집값은 뉴욕 발 금융위기 여파로 ‘휘청’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집값 급등 시기에 계획됐던 판교, 동탄 등 2기신도시 물량이 뒤늦게 쏟아지면서 다시 한번 타격을 받게 됐죠.


생각해보면, 신도시는 애초에 집값을 잡기 위해 다분히 계획되었기에 아파트 공급 시기 및 집값 하락 시점을 대략 가늠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1998년, 그리고 2008년 갑작스런 집값 폭락의 경우 예상이 쉽지 않았죠. “진짜 위기는 소리 없이 온다”는 말도 있는데요.


예전 사례를 통해 집값 폭락의 징조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공급ㆍ미분양 함께 증가…집값ㆍ경기 미스매치 심화

각종 통계와 당시 언론보도를 분석한 결과, 집값 폭락 직전인 1997년과 2007년 부동산 시장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폭락 직전에 아파트 공급 물량이 ‘반짝’ 올랐습니다. 주택분양보증 통계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분양보증은 건설사 부도 등의 이슈로 분양 계약이 지켜질 수 없을 때 수분양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현행법상 30가구 이상 주택을 지을 때 분양보증에 반드시 가입해야 하며, 보증기간은 2개월이므로 해당 시기 전국 공동주택의 공급 현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관련 자료를 보면 집값 상승 초기와 하락 초기에 공급 증가 현상이 반복해서 일어났습니다.


주택 인허가 실적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는 매년 주택공급 수치가 워낙 좋았던 시절이었지만, 1995~6년부터 건설사 부도가 이어지며 다소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요. 1997년은 경기가 더욱 안 좋았지만 인허가 주택 수가 3만호가량 살짝 반등했습니다.


2007년에도 인허가 실적이 갑자기 10만 호 가까이 늘었습니다. 2000년대 초와 2015년은 부동산 호황기에 들어서서 그렇다고 치지만, 위기를 앞두었던 1997년과 2007년에도 아파트 분양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직도 집값이 한창 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폭락 직전까지 아무도 폭락이 올 거란 사실을 예측할 수 없었던 이유죠.


1997년 당시 기사를 보면, 비수기인 1996년 말부터 1997년 초 겨울철에도 집값이 올랐으며 1997년 상반기까지도 그 추세가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연구원 및 전문가들은 주택보급률이 낮아 부동산 거품이 없다고 진단했으며, 하반기가 다가오며 집값이 주춤한 이후에도 일명 ‘바닥론’을 펴며 반등을 점쳤습니다. 심지어 2007년엔 월가 발(發) 금융위기가 왔음에도 한국 부동산은 2008년 상반기까지 상승을 거듭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선 2009년에 들어서야 집값이 떨어졌죠.


이렇게 집값이 오르다 보니 공급을 늘리기 위한 부동산 규제완화도 이어졌습니다. 1997년엔 아파트 재당첨 제한 폐지, 토지거래허가구역 조정 등이 이어졌습니다. 2007년 12월 경향신문은 국내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CEO들이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세제 완화로 인한 집값 급등을 염려하고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대 초중반엔 IMF 외환위기 이후 주택공급이 줄었던 동시에, 경기회복으로 국민 소득이 늘면서 더욱 주택 가격이 폭등했습니다. 건설업계 입장에선 호황기에, 그것도 분양가 자율화 시대에 계획했던 공급을 굳이 미룰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그러나 막상 시장에선 미분양이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달이 가득 찼으니 기우는 일만 남은 징조였죠.


2001년에서 2020년까지 국토교통부 전국 미분양 현황을 보면 2007년 연간 미분양 물량이 급속히 늘며 10만호를 넘어섰습니다. 미분양 물량은 위기가 본격 부동산 시장으로 번지기 시작한 2008년 16만 5,599호로 정점을 찍은 뒤, 10만호를 넘긴 적이 없습니다.


1997년 역시 이런 현상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당시 보도에 따르면 1997년들어 서울에서도 미분양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호황기에 주택 공급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서히 주택 소비자의 지갑이 닫히던 시점이었던 것입니다. 신문지상에선 집값 폭락을 걱정하는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한편, 우리 경제의 어두운 미래를 전망케 하는 기사가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폭락 직전, 집값과 경기 간 미스매치가 심화하고 있었던 셈이죠.

흥하는데 흥하지 않는 법원 경매

세 번째, 법원에선 경매 시장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부동산 시세 상승으로 흥했던 법원경매의 매각율과 매각가율이 2006년 피크를 찍은 후 2007년부터 하향선을 긋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8년 본격적으로 급락합니다.


법원경매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에도 집값 폭락기를 앞두고 비슷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오히려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이후인 1998년보다 경매 처리 비율이 낮았습니다.


당시 외환위기를 앞두고 부도 기업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경매물건이 늘었고, 그로 인해 경매 중개 및 투자업이 처음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낙찰을 받으면 주택을 시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그럼에도 이러한 유행은 매각 대상이 쌓이는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지금까지 과거를 통해 집값 폭락의 징조들을 알아봤습니다. 그동안 규제 등 시장환경이 변화하였기 때문에, 이를 대입해 앞으로의 하락기를 점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3기신도시 공급, 금리인상 같은 요인을 중요한 변수로 보고 있는데요. 최대한 집값이 쌀 때 사고자 하는 것. 우리 모두의 꿈이겠죠. 자신만의 방식으로 폭락 징조를 미리 알아볼 수 있는 시야를 갖춘다면, 불안한 패닉바잉 대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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