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 대한 원망에 갇힌 사람들

조회수 2018. 11. 9. 08: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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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의 집은 매우 삭막하다. 


그들은 따뜻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찬장 문짝을 쿵 하고 닫는 엄마와 북을 두드리는 형, 샌드백 치는 의사 아빠까지 모두 뭔가를 치고 있고 화가 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엄마는 조용히 거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데이비드에게 소리를 지르고 한숨을 쉰다. 데이비드는 목에 혹이 생겼지만 엄마는 돈 쓸 데가 많다며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다. 3년 후에야 데이비드는 수술을 받아 혹을 제거했지만 목소리를 잃는다. 그리고 목에 바늘땀이 흉터로 남는다.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데이비드는 엇나가기 시작하다가 결국 학교를 그만둔 후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 부모는 데이비드를 상담실로 보낸다. 상담실에서 데이비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처럼 생긴 상담사를 만난다. 시계 토끼가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이끌었듯이 상담사는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갈 사람이었다. 


상담사는 데이비드에게 진실을 말한다.

“어머니는 널 사랑하지 않아. 

미안하다, 데이비드. 하지만 사실이야. 

넌 말이 안 되는 세상에 갇혀 살아온 거다. 

누구도 네게 사실을 얘기해준 적이 없었지.”

어쩌면 데이비드도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없었던 그에게 상담실은 안식처가 된다. 상담사는 그가 너무 말랐다고 걱정하기도 하고 부모에게 듣지 못한 칭찬과 지지도 해준다. 그리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쥐어준다. 데이비드는 스스로 수준 미달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담사는 그가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데이비드는 가족에 관한 진실을 맞닥뜨린다. 엄마는 이성애자가 아님에도 남자와 결혼해서 불행했고, 데이비드가 좋아하던 아주머니와 엄마는 애인 관계였다. 그에게 험한 말을 하던 외할머니는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 또한 아버지는 병약한 데이비드에게 잦은 방사선 치료를 해서 암에 걸리게 했고 목에 바늘땀까지 남겼다.


데이비드는 열여섯 살에 가족을 떠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예술가들을 만나서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 그들은 결함도 있고 엉뚱한 구석도 있지만 데이비드의 가족이 된다.

마음이 아프더라도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모를 미워하면서도 익숙한 환경을 떠나지 못하고 부모곁을 맴돌거나, 결혼해서 부모를 떠났지만 정서적으로 밀착되어 원망을 퍼붓는 이들도 많다. 힘든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단번에 뛰어넘을 수는 없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야 하는지는 경험한 사람만이 안다.

《바늘땀》에서 데이비드는 내면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을 모두 그의 것으로 통합했다. 그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네 가지 단계를 차례로 밟는다.


첫째, 부모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단계.

둘째, 부모와 대립하는 단계.

셋째, 부모와 결별하는 독립적인 관계.

넷째,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단계.


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이는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거나 부모와 대립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에 대한 미움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독립적인 내 삶을 살 수 없다. 부모는 나이가 들어가는데 여전히 원망만 하고 있다면 어린아이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부모를 벗어나 자기실현을 한다는 건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세상이 밝고 따뜻할 수도 있음을 경험하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것 또한 자기실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늘땀은 누구에게나 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상처를 기억해야 할 수도 있다. 삶에 바늘땀처럼 아픈 증거가 있더라도 나는 나로서 살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부모에게 이해받고 사랑받아야 독립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부모의 잘못을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부모는 부모의 삶을,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바늘땀》의 주인공처럼 힘든 시간을 겪었어도 자기 길을 걸어간 이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을 보면서 부모와의 관계가 풀리지 않더라도 정서적인 거리를 충분히 두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아픈 과거가 있더라도 삶에 다른 그림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가 어떤 삶을 살았든, 당신이 어떤 고통을 겪었든 데이비드처럼 그 길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부모는 어떤 사람인지, 그런 부모가 있다면 나는 어떻게 달라질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내가 나에게 그런 부모가 되어주자. 내 삶은 그 누구도 아닌 내게 달려 있다는 것을 믿고 걸어가기 바란다.


마음달 안정현 선생님의

<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툰 당신에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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