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연상 유부녀를 사랑한 셀럽

조회수 2018. 11. 16. 15: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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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작곡가 중에 가장 마음이 ‘짠해지는’ 작곡가를 고르라면 슈 베르트와 브람스Johannes Brahms,1833~1897를 꼽겠다. 슈베르트는 순 수함으로 가득한 음악 안에서 고통과 외로움이 묻어나기 때문이 고, 브람스 역시 함부로 범접하지 못할 심오하고 처절한 슬픔을 담 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브람스는 슈만의 부인 클라라를 오랫동안 흠모하며 바라보기만 했던 사람이기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브람스의 아버지도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음악가였다. 브람 스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7세 연상으로 41세에 브람스를 낳았 다. 브람스가 14세 연상의 클라라를 흠모했던 것에 부모님의 영향 도 있지 않았나 싶다. 브람스의 아버지는 일찍이 그의 재능을 알아 보고 음악교육을 받도록 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형 편을 도와야 했던 브람스는 카페나 선술집에서 연주를 하거나 편곡을 하는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했다. 그러던 중 그 의 재능을 알아본 연주자들이 그가 만든 곡을 연주하고 그가 작곡 활동을 활발히 해나갈 수 있도록 도왔는데, 당시 유명했던 바이올 리니스트 요아힘이 바로 슈만에게 브람스를 소개했다고 전해진다.

브람스는 스물한 살에 처음 슈만을 찾아갔다. 뒤셀도르프관현악단 의 지휘자를 맡고 있었던 슈만에게 자신의 작품을 들려주기 위해 서였다. 그때 클라라의 나이는 35세, 슈만은 44세였다. 슈만은 이 젊은 음악가의 연주를 듣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신 슈만은 작 곡활동 외에도 <라이프치히 음악신보>를 창간하고 펴냈는데, ‘새 로운 길’이라는 글을 통해 ‘제우스의 머리에서 완전무장한 미네르 바처럼 갑자기 나타난 거장’이라는 극찬과 함께 브람스의 작품을 알리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듯 슈만은 평생 우울증으로 고통받다, 상태가 점 점 악화되면서 결국 지휘자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 시기에 라인 강에 투신하는 자살 소동을 일으켰다. 결국 슈만은 정신병원에 입 원하게 되었고, 남겨진 클라라는 임신 중이었던 데다 여섯 명의 아 이를 홀로 돌보아야 했다. 


이때 클라라의 곁에서 가족처럼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 브람스이다. 남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내는 한 여인으로서의 클라라와, 피아니스트로서 브람스의 작품을 멋지게 해석해 연주하는 연주자로서의 클라라에게, 그는 사랑을 넘어 존 경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클라라에 대한 사랑을 평생 ‘플라토닉’으로만 간직했다. 브람스에게도 20대에 약혼을 한 연인이 있었 다. 하지만 막상 결혼 날짜를 잡을 때가 되자 속박당하는 것이 싫 다며 돌연 파혼을 선언했다. 클라라에 대한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 3번Piano Quartet No.3>은 그가 아주 오랫 동안 작곡한 곡이다. 20대 초반에 작곡하기 시작해 마흔이 넘어서 야 완성했으니, 그의 삶과 심경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베르테르 4중주’라고도 불린다. 이 곡을 발표할 당시 브람스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한 장면을 악보 표지에 넣어줄 것을 요구한 데서 붙은 이름이다. 


남편 이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베르테르의 모습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 하다고 생각되어 그 슬픔에 크게 공감했던 듯하다. 바로 권총을 자 신의 머리에 겨누고 있는 장면을 넣어달라고 했으니 말이다. 슬픈 운명의 수렁에 빠져 갈 길을 잃은 청년의 아픔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피아노의 묵직한 울림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하지만 브람스는 베르테르처럼 자살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클라 라는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뒤 40년을 더 살았는데 브 람스와 이어지지는 않았다. 브람스는 클라라와 함께 슈만의 작품 을 알리고 연주하는 데 힘썼다. 발표되지 않은 슈만의 피아노곡 중 하나의 선율로 변주곡을 만들어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쓰 기도 했다. 그것이 브람스의 사랑이었다. 


브람스의 음악이 하나같이 아련하고 슬플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클라라가 죽은 후 이듬해 브람스도 세상을 떠났다. 최고의 음악가들에게 이런 사연이 있다 는 것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일 수도 있 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 한 발짝 다가가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보면, 슬픈 가요를 듣는 것보다 더욱 강렬한 감정과 만나게 될지 모른다.


위 내용은 <왠지 클래식한 사람>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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