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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인정하는 전통 기능을 만나다. 중요 무형 문화재 제 110호 윤도장 김종대 선생

조회수 2023. 1. 11. 14: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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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철 십장생 조각 윤도

우리나라는 문화재의 종류를 크게 2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숭례문이나 불국사와 같이 형체가 있는 문화재는 유형문화재로, 형체 없이 옛 기능을 익혀 전통을 잇는 사람들은 무형 문화재로 분류하고 있다.유형 문화재의 경우 사람들에게 관광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어 관심이 높은 편이지만, 무형 문화재는 관람 가능한 형체가 아닌 무형이 되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고 관심도 적은 편이다.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김종대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1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4대째 윤도 제작을 이어나가고 있는 한국 유일의 윤도장이다.조부인 김권삼 선생에게 윤도의 제작 방법을 배웠다는 그는 “밥은 챙겨 먹고 왔느냐”며 손주를 반기듯 인심 가득한 미소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대로 내려오는 윤도 관련 책자들

우리에게 너무 생소한 윤도
윤도는 대추나무를 원반 형태로 만들어 놓은 일종의 전통 나침반이다. 표면에는 24방위가 나누어져 있고, 음양과 오행, 팔괘 등을 칸마다 새겨 넣는다.가운데에 위치한 자침은 항상 남쪽을 가리키기 때문에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길을 나설 때 방향을 알려주기도 했고, 풍수지러 적으로 집터나 묘자리를 고르는데도 많이 사용했다.

4대째 이어 내려오는 가업
윤도장은 전통 나침반 윤도를 만드는 장인으로 우리나라에는 김종대 선생이 유일하다. 그의 집안은 가업 대대로 윤도를 제작하고 있는데, 조부인 김권삼 선생이 같은 마을에 살던 한 씨에게서 윤도 제작의 기능을 물려 받으면서 처음 시작됐다.김종대 선생은 군대를 다녀온 후 백부를 통해 이익이 없더라도 가업으로 윤도를 계승하라는 유언을 듣고 물려 받게 되는데, 정식으로 기술을 전수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능을 이어 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김종대 선생은 처음부터 윤도 제작에 몰두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12년간 농협을 다니며 사회 생활과 기능 계승을 겸업했는데 윤도 제작에만 몰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세세한 과정까지 익히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농협을 그만두고 더욱 윤도 제작에 몰두한 그는 마흔이 넘어서야 재료준비부터 완성까지 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윤도 제작 도구

윤도 제작은 오랜 집중과 시간이 필요하다우리나라의 전통 나침반 윤도를 제작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적게는 5일부터 많게는 8달까지 걸린다. 김종대 선생이 만드는 윤도는 200년은 훌쩍 넘는 대추나무를 이용해 제작되는데 과거에는 재료를 조달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으나 최근에는 많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건조중인 대추나무 원목

어렵게 구한 대추나무 고목은 갈라지거나 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2~3년간 건조시키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잘 건조시킨 나무는 원반 형태로 모양을 만들게 되는데, 작두를 이용해 가장자리를 비롯한 표면을 깎아 나간다. 그리고는 걸음새라는 도구를 통해 동심원을 그리고 일정하게 칸을 나누는 정간 작업을 한다.동심원이 1개 있으면 1층이라고 말하는데 보통 5개나 9개의 층으로 구성된 윤도를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층수가 많을수록 새겨지는 내용도 많아지는데 10간부터 12지, 24절기까지 확장되고 세분화된다.

자침에 자성을 입히는 과정

김종대 선생은 자침을 만드는 것이 윤도를 제작하는데 있어 핵심이라고 했다. 철판을 두드려 펴고 줄을 이용해 갈아 만드는 세침의 중앙에는 주석봉을 올려놓는데, 정확히 가운데 구멍을 뚫어서 무게의 균형이 맞도록 하는 과정은 무척 어렵다.형태가 만들어진 자침은 숯을 이용해 강도를 높이고 천연자석이라는 운석에 30분 정도 붙여 자성을 입히고 먹을 입혀 검게 칠해진 바탕 위에 백옥 가루를 뿌려 글씨를 도드라지게 한 윤도판 위의 둥근 홈에 놓여진다

좌측부터 평철 윤도, 선충 윤도, 면경 윤도

전통 나침반 윤도를 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전수자의 부재와 경제적인 어려움김종대 선생이 윤도 제작을 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기능을 전수할 스승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백부에게 정식으로 기술을 전수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세세한 과정까지는 알지 못했고 어려서부터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연구하여 서서히 익혀 나갔다.

배우긴 배웠지만 정확하게 배우질 못했어요.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많은 연구를 해야만 했죠

경제적인 어려움도 그를 힘들게 하는데 한몫을 했다. 과거에는 윤도의 인기가 많았고, 값이 많이 나갔기 때문에 전업으로 삼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김종대 선생이 제작에 몰두할 즈음에는 이미 많은 것들이 현대기기로 바뀌기 시작할 무렵이었다.그렇지만 ‘윤도를 만들어 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의 명맥을 유지하겠다’는 마음 가짐으로 임했고 윤도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작업중인 김종대 선생과 아들 김희수 선생

가업으로 밖에 이어져 내릴 수 없는 전통 기능.. 관심과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전통 기능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작업이 사람의 손이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재료 손질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해야 진정한 작품이 나온다. 어느 과정에서든 하나라도 실패하게 되면 완성을 해도 결과는 실패작이 나올 수 밖에 없다.깨알 같은 글씨를 일일이 손으로만 새겨야 하는 윤도는 더욱 어렵다. 하나의 획이라도 잘못 긋게 되면 전체 표면을 다시 갈아내고 처음부터 작업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배우겠다고 나서는 전수자가 없어 큰아들인 김희수 선생과 손자인 김상만씨가 전수 교육 조교와 전수 장학생으로 가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전통 기능에 문외한 우리들도 문제다. 윤도가 어떤 것인지, 어디에 사용하는 물건인지 아는 사람은 찾기조차 어렵다. 김종대 선생은 “윤도장 전수관을 찾는 사람들은 있지만 윤도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면서 도장을 만드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김종대 선생이 개발한 거북 모양 윤도

잊혀져 가는 전통 기능. 숨길 수 없는 아쉬움한평생 윤도를 만들어온 김종대 선생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는 전통 기능을 생각하면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400년 이상을 이어온 명맥 있는 기능이지만 지금은 그저 잊혀져 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이야기 하는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주름진 그의 손만큼, 오래된 그의 도구들이 앞으로 계속 사용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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