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부터 임금까지 모두 사용했던 '소반' 만드는 남자

조회수 2023. 1. 11. 14: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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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인정하는 전통 기능을 만나다. 국가 무형 문화재 제 99호 김춘식 선생
출처: 사진작가 서헌강

나주반

우리나라는 문화재의 종류를 크게 2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숭례문이나 불국사와 같이 형체가 있는 문화재는 유형문화재로, 형체 없이 옛 기능을 익혀 전통을 잇는 사람들은 무형 문화재로 분류하고 있다.유형 문화재의 경우 사람들에게 관광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어 관심이 높은 편이지만, 무형 문화재는 관람 가능한 형체가 아닌 무형이 되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고 관심도 적은 편이다.

출처: 김춘식 소반장

전북 나주에서 태어난 김춘식 선생은 국가 무형 문화재 제9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던 나주반을 복원시킨 국내 유일의 소반장(나주반장)이다.원래는 막상을 만드는 공방의 주인이었던 그는 ‘헌 상을 고쳐주던 것을 계기로 전통 나주반을 복원하게 됐다’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출처: 사진작가 서헌강

나주반

서민부터 임금까지 모두 사용했던 ‘소반’소반은 과거부터 조상들이 사용했던 밥상으로 부엌에서 음식을 담은 후 방으로 옮겨가 식사를 하는데 주로 쓰였다. 쟁반과 상, 두 가지의 기능을 모두 갖추어야 했기 때문에 무게는 가벼우면서도 다리가 길고 튼튼하게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소반은 제작되는 지역에 따라 형태나 규격을 정형화 시켰는데, 만든 고장의 이름을 소반에 붙여 이름을 불렀다. 간결하고 부드러움이 특징인 나주반의 기본 형태는 사각형이며, 각 귀퉁이가 잘려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출처: 김춘식 소반장

우연히 시작하게 된 나주반 복원소반장은 전통 소반을 만드는 장인으로 나주반을 만드는 사람은 김춘식 선생이 유일하다. 그는  19살부터 목수 일을 배우며 나무를 다뤄왔는데, 주변의 권유로 나주반의 전통기법을 익힌 장인태 장인에게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상 만드는 기술을 배우게 된다.군에 다녀온 후 김춘식 선생은 생계를 위해 영산포에 자신의 공방을 차린다. 그런데 서울에서 종종 전통 나주반을 찾는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그도 그럴 것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던 나주반은 엉터리로 만든 싸구려가 대부분이었고, 나주반의 제작법은 소멸되고 있었기 때문에 미숙한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찾아 올 수 밖에 없었다.

출처: 김춘식 소반장

나주반

사람들은 김춘식 선생에게 옛 모양 그대로 나주반을 제작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완벽하게 나주반을 만들어 본적이 없었던 그는 대신 만들어 줄 뛰어난 기술자를 찾게 된다.하지만 이미 대부분 고인이 된 이후였고, 김춘식 선생은 이때의 일을 계기로 나주 소반의 원형을 찾기로 결심하게 된다.그러나 나주반은 참고로 삼을 유물이 없었을뿐 아니라 제작 방법에 대한 기록 역시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복원을 위한 다른 방법을 생각하게 되는데, 바로 소반을 수리하는 일이었다.집집마다 망가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전통 나주반을 해체를 통해 묵은 때를 벗겨내고 재 조립 하면서 필요한 부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출처: 김춘식 소반장
내게 망가진 나주반은 보물이었어. 옛날 전통 기법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스승이기도 했으니까

나주반을 수리하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이었지만 전통 기법에 다가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김춘식 선생은 소반 수리를 통한 연구를 20년 동안 이어가며, 과거 나주 소반의 명성을 살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출처: 사진작가 서헌강

나주반

손이 많이 갈수록 빛이 나는 나주반전통 나주반은 하나의 작품을 제작하는데 60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대패질이나, 옻칠의 정도에 따라 변동이 있긴 하지만 손이 많이 갈수록 작품에서 더 빛이 난다고 한다.김춘식 선생이 만드는 나주반은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를 사용하여 제작하는데, 옹이가 없이 매끈한 부분만을 사용한다.

출처: 김춘식 소반장

나주반의 제작은 나무의 판에 밑그림을 그린 후 재단하는 상판 제작을 시작으로 진행되는데, 전반적인 소반의 디자인을 좌우하는 것은 운각이다. 운각은 구름문과 당초문이 많이 쓰이는데, 4각 소반이든 12각 소반이든 반드시 두 쌍이 들어간다고 한다.나주반의 다리는 상의 크기에 따라 굵기와 길이가 정해지며, 상부는 타원형으로 하부는 원형에 가깝게 디자인 한다. 전반적인 백골이 완성된 후 마지막에는 묽게 탄 옻을 발라서 이틀 정도 건조시키는데 이 과정을 8번 이상 반복해주면 작품이 완성 된다.

출처: 김춘식 소반장

전통 나주반을 복원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장으로써 무력한 경제력’김춘식 선생이 나주반 복원에 몰두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경제적은 측면이었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수익이 필요 했지만 나주반 복원 작업을 통해 얻는 이득은 없었다. 게다가 복원에 필요한 재료도 구입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빚을 내기까지 이른다.

미쳐야 해, 나주반에 미치지 않고서 하기 힘든 일이야

지금도 돌이켜보면 자신이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한 건지 모르겠다’는 김춘식 선생은 5남매의 학교 등록금을 내기 힘들 만큼 어려웠지만 전통 계승의 사명감과 나주 소반에 대한 굳은 의지로 계속 복원에 힘써왔고 결국 2014년, 소반장으로 인정받게 된다.

출처: 김춘식 소반장

김춘식 선생과 아들 김영민씨

가업으로 밖에 이어져 내릴 수 밖에 없는 전통기능전통 기능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작업이 사람의 손이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재료 손질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해야 진정한 작품이 나온다. 어느 과정에서든 하나라도 실패하게 되면 완성을 해도 결과는 실패작이 나올 수 밖에 없다.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김춘식 선생의 소반은 더욱 그렇다. 전동 드릴이나 톱 같은 간편한 도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 방식만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구멍 하나를 뚫으려면 오랜 시간을 매달려야 한다.소반을 배우려는 수강생들은 있지만 전통 방식을 통한 제작 과정을 견디는 사람이 없어, 막내아들인 김영민씨가 가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나주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앞으로 100년, 아니 1000년 동안 이 기술은 지속될 수 있어. 하지만 그게 없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사라질지 모르지
출처: 김춘식 소반장

한평생 소반을 만들어온 김춘식 선생은 현대 생활에 의해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는 전통 기능을 다른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지속적인 관심과 애정만이 우리 전통 문화를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손에는 지난 세월의 노력이 새겨 있었다. 앞으로도 그의 나주반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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