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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며 눈물을 흘려본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진이 서울대 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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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랩 작성일자2018.07.27. | 499 읽음

국민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는 것과 비례해서 동반 상승하는 지표들이 있다. 평균 수명, 성인 문자 해독률, 취학률, 주택보급률, 의료서비스율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 선진국이 대체로 문화 선진국임을 떠올린다면, 여기에 문화 콘텐츠 소비율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해지면 인간은 자연스레 음악, 미술, 스포츠, 레저 등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박물관, 미술관 등 전시 공간 또한 소득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박물관 780곳, 미술관 202곳(2015년 현재)이 운영 중이다. 2008년에 박물관 579곳, 미술관 128곳이었던 걸 감안하면 불과 7년 만에 각각 35%, 58%나 늘어난 수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작품을 수집하거나 관리하는 일을 하는 이가 큐레이터(curator)다. 요즘은 패션 큐레이터, 푸드 큐레이터, 심지어 디지털 큐레이터라는 표현까지 사용되고 있다. 큐레이터는 ‘보살피다, 관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큐라(cura, 영어의 care)’에서 유래한 용어로 감독인, 관리인을 뜻하였다. 지금은 ‘미술관 자료에 관하여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을 지칭한다.


‘서울대학교 미술관’(관장 윤동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오진이(43)씨는 2006년 이 미술관이 개관할 때부터 근무하고 있는 원년 멤버다. 서울대 동양화과(현 한국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으로 석사를 받은 뒤 도미, 컬럼비아 대학에서 중국미술사로 석사를 받고 서울대 미술관에 합류했다.

큐레이터가 하는 일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전시 관계의 업무를 주로 담당하지만, 그 기능에 따라 연구를 담당하는 직종, 교육 및 홍보를 담당하는 직종 등으로 세분됩니다. 연구, 교육 실무 외에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도 있지요. 작품의 수집과 보존, 그리고 전시 기술과 더불어, 작품 관련 도서나 문헌에서부터 녹음, 녹화에 이르는 모든 자료에 관한 조사를 토대로 이를 수집, 구입, 교환, 제작, 수여, 기탁과 같은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전시, 보존, 복원, 보호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오 선생님은 전시 기획 담당이지요?

“미술작품을 어떻게 대중에게 알릴 것인가, 즉 전시 내용과 구성 방법을 기획합니다. 흔히 도슨트와 헷갈려 하시는데, 미술관에서 관객들이 접하는 도슨트는 전시 해설사입니다. 저희는 전시 최소 1년 전, 길게는 2년 전에 기획을 마쳐야 합니다. 그래야 실제 전시가 가능하지요. 전시는 보통 1~3개월 가량 진행합니다. 서울대 미술관은 서울대 산하 기관 중 유일하게 유료 관람인데요, 3000원을 받습니다. 재정 도움이 목적이 아니라 ‘(돈 낸 만큼) 열심히 보시라’는 의미에서입니다.”

서울대에 미술관이 있는 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서울대 정문 옆에 2006년 개관했습니다. 지상 3층, 지하 3층으로 연면적 1,357평의 미술관에 2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이니만큼 구조도 예술적이겠습니다.(웃음)

“철골 트러스 구조가 노출된 미술관 건물은 언덕의 지형을 이용하면서도 공중에 떠있는 거대한 조각 작품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구조이지요. 미국 하버드대 건축대학원의 렘 콜하스 교수가 설계했습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2000)한 세계적인 건축가입니다.”

동양화를 전공했으니 전공을 제대로 살린 경우입니다.

“제가 94학번인데 입학 동기 19명 가운데 전공 관련 직업을 찾은 이는 50% 정도 됩니다. 이는 문화재단 직원이나 미술 교사 등도 포함된 수치입니다.”

전업 작가, 즉 창작가의 길을 가지 않고 일종의 ‘안내자’ 내지 연구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한국적 추상회화를 추구한 곳이 서울대 동양화과입니다. 먹, 붓, 물, 이 3소재가 가진 표현의 잠재성을 학부 때 원 없이 실습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재료로 이렇게까지 다양하게 쓸 수 있구나, 라고 많이 느꼈습니다. 어느 순간 어떤 예술작품이 가치 있는 것일까, 내 작품을 설득력 있게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등의 고민에 빠졌고, 스스로 확신이 없으니 일단 공부를 더 하자고 마음먹었던 겁니다. 공부가 재미있어서 유학까지 가게 된 거고요.”

레오 카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1991)에는 시력을 잃어가는 가난한 줄리엣 비노쉬가 몰래 미술관에 들어가 촛불을 밝혀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 작품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 순간들이 누구나 있을 겁니다.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사람일 거예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맞지만, 아무 사전 지식 없이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는 것 또한 미술이라고 봅니다.”

큐레이터로서 보람은 어떤 것인지요.

“예술작품에 내재한 가치를 미술계와 일반에 알리는 일이지요. 내가 가진 재능을 다 쓰게 만드는 직업입니다. 공부도 많이 해야 하기에 자기 성장의 보람도 큽니다. 월급도 받으면서, 좋은 작가를 아주 많이 알 수 있어서 좋습니다. 남편도 큐레이터로서 그림 설명하다가 만났으니 멋진 남자와 결혼할 수도 있다는 장점도 있겠네요.(웃음)”

직업적 애환이나 애로사항이 있다면?

“미술의 경우, 전통 미술은 박물관에서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은 미술관에서 담당하는데, 시간과 일정에 쫓겨서 허겁지겁 일을 처리해야할 때가 많습니다. 높은 수준의 전시를 요구하면서 정작 연구 인력에는 투자 안 하는 경우가 태반이지요. 저희만 해도 1년에 4회, 즉 분기당 1회꼴로 전시를 하고 있는데, 더 잘하고 싶어도 시간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큐레이터를 지망하는 분들에게 도움말을 주신다면.

“연구 능력이 있어야 하고, 작가와 작품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석사과정에 준하는 미술사나 미학 지식이 필수입니다. 여기에 외국어 능력이 아주 중요하지요. 영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큐레이터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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