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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인정하는 전통 기능을 만나다. 국가 무형 문화재 제 47호 궁장 권영학 선생

조회수 2023. 1. 11. 14: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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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인정하는 전통 기능, 무형문화재"

2017년 제 3회 예천 세계 활 축제  10월 13일 ~ 16일

출처: 권영학 궁장

부린활

우리나라는 문화재의 종류를 크게 2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숭례문이나 불국사와 같이 형체가 있는 문화재는 유형문화재로, 형체 없이 옛 기술을 익혀 전통을 잇는 사람들은 무형 문화재로 분류하고 있다.유형 문화재의 경우 사람들에게 관광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어 관심이 높은 편이지만, 무형 문화재는 관람 가능한 형체가 아닌 무형이 되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고 관심도 적은 편이다.무형 문화재는 기능과 예능 분야로 분류하는데 옛 기능이라고 하면 땀을 뻘뻘 흘리며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를 떠올리기 쉽지만 과거 조상들이 썼던 갓이나 전통 나침반, 활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유형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출처: 권영학 궁장

활의 고장이라 불리는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권영학 궁장은 국가 무형문화재 제 4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명궁(대한 궁도 협회 인정)과 명무(전주대사습놀이 장원)까지 모두 보유한 한국 유일의 3대 공인 기능 보유자다.아버지인 권태진 궁장(경북 무형문화재 6호 예천 궁장)의 영향으로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활을 접했다는 그는, 낯선 우리의 방문을 웃음으로 반겨주며 한평생 전통 활 제작에 몸담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공무원을 그만두고 활을 잡다”
권궁장은 부모님의 바람대로 대학 재학 중 총무처 4급 고시에 합격했다. 공무원은 적성에 맞지 않아 재직 얼마 후 사표를 냈다. 1964년 6.3 한일 회담 반대 운동 중 재적과 수배, 군 제대 후 당시 정부의 모든 회유를 뿌리친 결과 공적 활동을 차단 당했다.

출처: 권영학 궁장

부각 작업 (물소 뿔을 대나무에 붙이는 작업)

사회 활동이 차단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활 제작 가업 전수였다. 활을 제작하고 있는 아버지를 따라서 활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고 고향으로 돌아갔다.하지만 집에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못마땅해하셨다. 대학까지 나온 아들이 자신을 이어 활을 만들겠다고 하니 얼마나 심란했을지 상상이 된다. 하지만 활을 제작하는 권 선생의 능력은 나무랄 것이 없었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버지는 그에게 제작 방법을 전수한다.

출처: 권영학 궁장

활 제작 재료

활 제작 기간은 약 1년 정도 소요된다

우리나라의 전통 활은 재료의 준비 과정부터 완성까지 걸리는 기간은 약 1년정도 걸린다. 권 궁장이 만드는 각궁은 대나무와 물소 뿔을 비롯한 6가지 천연재료로 만들어지는데, 6월부터 9월까지 재료의 처리 과정을 거치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본 제작을 완성한다.각궁의 제작은 대나무와 뽕나무를 연결하여 활의 몸체를 만드는 노루발 과정을 시작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활의 전반적인 모양이 생겨나며 사용 하는 사람에 따라 강약을 달리한다.그후에는 활의 유연성과 탄력을 만들기 위해 몸체에 물소 뿔을 부착하는데 이 과정을 부각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소 힘줄을 민어 부레로 만든 풀을 혼합하여 내면에 6회 내지 7회 붙여준다.전통 활은 대나무와 물소 뿔, 소 힘줄이 삼위일체가 되어, 강약과 유연성을 유지한다.

출처: 권영학 궁장

해궁작업 (활의 강약과 균형 조절 작업)

전통 활 제작을 배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직업이다

권 궁장이 활 제작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부모님의 ‘걱정’이었다. 공직자가 되기를 원했던 그의 부모님은 공무원을 그만두고 활 제작을 배우는 권영학 선생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미래에 대해 걱정스러워했다.당시에도 전통 활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고, 특정 상류층만이 스포츠로 즐기기 위해 사용하거나 민속공예품 선물로만 인기가 있었다.점차 식어가는 전통 활에 대한 관심이 권 궁장을 멈춰 세우려 했지만 그는 전통 활 제작에서 미래성을 보았고 더욱 끈질기게 연구 노력 하였다.

전주대사습놀이 장원 기록

권영학 궁장은 활 제작뿐만 아니라 활을 쏘는 것에도 능통하다. 그는 활을 만드는 데나 쏘는 데 마음가짐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버지를 통해 처음 배웠다는 활 쏘는 법으로 1979년 전주대사습놀이에 참가하여 당당히 장원을 차지할 정도로 국내 최고 기량 소유자가 되었다.전주대사습놀이는 판소리, 무용, 민요, 궁도 등 10개 부분에 걸친 명성 높은 대회로 이 대회를 통해 권 궁장은 국가공인 명무 칭호를 받았고, 대한 궁도협회로부터 명궁 공인 칭호도 획득하게 된다.

출처: 권영학 궁장

후계가 없는 전통기술..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전통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작업이 사람의 손이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재료 손질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해야 진정한 작품이 나온다. 어느 과정에서든 하나라도 실패하게 되면 완성을 한다고 해도 결과는 실패작이 나올 수 밖에 없다.특히나 활을 만드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제작하는 과정에만 1년이 걸리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전수한다 한들 10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된다.과거의 경우에는 집안 대대로 가업을 이어가며 생활을 유지했지만 현재는 경제적으로 풍족하기를 바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전수해 주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왜냐하면 활 제작은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지 못해서다전통기술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도 문제다. 무형문화재의 종류는 얼마나 되는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조차 찾기 힘들다. 실제로 무형문화재 분들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으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봤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가짐이다

오랜 시간 활을 만들어온 권 궁장은 사람들에게 ‘마음가짐’에 대해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활 제작과 활 쏘기를 통해서 가장 중요하게 느꼈던 것은 마음이었는데,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일을 하던 간에 발전되고 성장할 수 없다고 했다.그에게 있어 활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인생관을 바꿀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으며, 지금의 자신을 만든 촉매가 되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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