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그리고 삶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사람들

조회수 2021. 3. 27.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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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해.

배우 윤여정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 <미나리> 촬영을 위해 미국을 떠날 당시, 몸이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주변에서도 이를 만류했는데, 자신은 굳이 그런 만류를 뿌리치며 미국까지 나섰다고 했다. 그 이유는 ‘도전’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이미 자신은 어떤 촬영장에서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일종의 왕이나 다름없어서 감독한테도 “너 이렇게 오래 찍으면 나 나간다.”라고 말해도 상관없을 정도라고 한다. 사실, 이 나라에서는 다들 자신의 눈치를 보지, 자기를 ‘연출’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기에게 그것은 매너리즘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으로 애써 떠난 것은, 자신이 ‘Nobody’인 상태를 다시 경험해보고 싶어서라는 것이었다. 외국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놓이고, 그러면 오로지 연기력 하나로 긴장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그런 환경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해, 좋지 않은 몸을 이끌고 일부러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집어 던진 것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사실 윤여정 정도 되는 배우라면 드라마든 영화든, 어느 감독과 PD와 작업하든, 충분히 대접받으면서 편한대로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드라마 쓰는 작가와 이야기해 보아도, 사실상 촬영장의 왕은 탑급 주연배우이고 드라마의 성패도 그런 주연배우를 어떻게 섭외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을 둘러보면 자기 마음대로 권위와 권력을 휘두르고, 어디를 가나 대접받으며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그 위치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사서 고생’하는 일도 당연히 없다. 정치, 문단, 학계, 회사, 어디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윤여정은 자기의 그런 ‘편안한 권위’를 매너리즘이라 느꼈다. 그것을 벗어나 온전히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연기에 몰입하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을 어쩐지 알 것 같다.

세상살이라는 게 어느 단계에 이르면, 하던대로 적당히만 해도 나의 위치나 경력이 반쯤은 해결해주는 측면이 있다. 


처음처럼, 초심자의 시절처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시간과 노력을 퍼붓지 않더라도, 내가 가진 후광이나 사회적 위치 때문에 적당히 세상에 ‘먹혀’ 들어가기도 하고, 주위에서도 더 비판하거나 쪼아대는 일이 없다.


글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등단을 하거나 책을 몇 권 쓰면, 주위에서 솔직하게 비판해주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 그렇게 많은 작가들이 작품 초기의 매력을 잃어버리고 권위와 매너리즘 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사실 그쯤 되면, 자신의 권위를 버린 채 새로운 마음으로 뛰어들 용기도 사라진다.


얼마 전, 한 작가를 만났는데 그는 기존의 장르가 아닌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느라 매일 죽을 맛이라며, 참 힘들게 글을 쓰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말했다.

편안하려고 사는 게 꼭 좋은 건 아니죠.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편안함은 죽음이지. 제일 편안하고 싶으면 죽으면 돼.

그는 매번 자기 삶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나도 지난 몇 년간 다른 분야에서 새로이 시작하고자 부지런히 애써왔고, 요즘에도 새로운 장르의 글쓰기에 초심자처럼 도전해보고 있어서인지 그의 말에 왠지 모를 위안을 받았다. 윤여정의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출처: Photo by Tim Marshall on Unsplash

삶이라는 게 자기가 밟아 선 대지 위에 안정된 성을 쌓아가면서, 결코 그 성을 무너뜨리지 않고, 그 안에서의 평안을 누리는 방식이어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나는 마음이 그렇게 굳어가기만을 바라지는 않는 것 같다.


일정한 패턴 속에 잠들어가는 뇌를 깨우고, 나에게 주어진 하나뿐인 삶에서 가능한 것들이 무엇인지 부지런히 탐색하고 싶다.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을 때와 같은 설렘과 낯섦으로, 어느 새로운 땅도 사랑하고 싶어진다. 모험과 도전 같은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살아가는 게 더 ‘살아있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진정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몰입하고 사랑할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나가는 일을 게을리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용기가 필요하다.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는, ‘Nobody’로 돌아가려는 마음먹음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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