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비합리적이고, 늘 경제학 이론을 무시하는 쪽으로 행동한다

조회수 2021. 3. 16. 14: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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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 수상자의 발칙한 일침, 『행동경제학』

“인간은 비합리적이고, 늘 경제학 이론을 무시하는 쪽으로 행동한다”

왠지 사진이 X파일 같은 분위기가 난다

이건 썩 당황스러운 문장이다. 우리는 현대 경제학이 ‘합리적 인간’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배웠다. 모든 경제학의 기초인 ‘보이지 않는 손’이나 ‘수요 - 공급 곡선’부터 시작해서, 거시와 미시, 금융과 법경제 등 거의 모든 경제학 분야는 합리적 인간들이 입수 가능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효용을 극대화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전제 위에 세워져 있다.


물론 리처드 탈러가 단순히 “인간은 비합리적이므로 우리는 인간을 이해하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더라면, 그 이론이 아무리 전복적이라 한들 노벨 위원회가 그를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그런 불확실성을 지지리도 넌더리를 내는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리처드 탈러의 ‘행동경제학’도 어디까지나 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의 핵심은 “사람이란 비합리적”이라는 게 아니라, 사실 어쩌면 “항상 경제학 이론을 무시하는 쪽으로 행동한다”는 데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즉, ‘한결같이’ 합리성에서 벗어나서 행동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을 현실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그 행동을 예견할 수 있고 모델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한결같이’ 합리성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행동경제학’이라는 적잖이 재미없는 제목의 책에는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선택 설계의 힘’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사람의 비합리성이 ‘어떻게 한결같이 비합리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안다면, 우리는 시장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시장의 움직임을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행동경제학이라는 용어가 낯설다면, ‘넛지’라는 용어는 어떨까? ‘넛지’라는 용어조차 낯설다면, 화장실 소변기에 그려진 파리 그림은 어떨까? 인간의 제한적 합리성을 이용하여 인간의 행동을 유도하는 개념이다. 


한때 ‘넛지’는 낯선 용어였지만 이제는 사회과학에 반드시 필요한 개념이 되었고, 미국의 ‘정보규제국’을 비롯하여 전세계 정부가 넛지를 정책 설계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넛지’는 무려 70만 권 이상이 팔려나갔다.

‘넛지’를 상징하는 소변기의 파리 그림. 파리 그림이 그려진 것만으로도 소변기가 80%나 더 깨끗하게 사용되었다나…

‘행동경제학’ 안에는 합리적으로 보였던 인간들이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가에 대한 수많은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경제학은 세상 재미없는, 인간의 영혼이 없는 학문으로 일컬어지곤 하지만, 그래서 행동경제학의 세계에 입문하는 건 무척이나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세상에 바보 구경을 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 바보에 나 또한 포함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경제학이 소개하는 몇 가지 재미있는 사례들을 살펴보자.


행동경제학이 말하는, ‘예측할 수 있는 인간의 비합리성’ 들

1.


심지어 경제학도들도 예외는 아니다. 탈러 교수는 변별력 강화를 위해 시험문제를 어렵게 냈고, 이 때문에 학부 평균 점수가 100점 만점에 72점에 불과하게 되었다. 학점 자체는 어차피 상대평가에 따라 부여하게 되어 있었음에도, 학생들은 이 낮은 점수에 불만을 가졌다.


이에 탈러 교수는 만점을 137점으로 조정하고, 평균 96점 정도가 나오게 만들었다. 그러자 불만은 놀라울 정도로 사그러들었다. 사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할 경우, 평균점수가 사실상 더 낮아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137점이라는 애매한 만점 기준으로 인해 내 점수가 백분위로 따져서 어느 정도에 위치하는지 감이 바로 안 오는데다, 평균 90점대 후반이라는 숫자가 심리적으로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조삼모사의 현대판 버전이지만, 심지어 경제학도들조차 다들 좋아했다.

탈러 교수는 ‘이콘’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전통 경제학이 제시하는 ‘합리적 인간’을 뜻한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그런 인간은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적당한 수준에서만 합리적이다. 


우리는 시간과 정보를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어림짐작으로, 즉 휴리스틱에 따라서 판단을 내리기 마련이다.


2.


희망소비자가격이란 개념은 사실 가짜 가격이며, 기업은 쿠폰과 세일 행사를 감안해 희망소비자가격을 ‘과도하게 높게’ 책정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JC 페니는 거짓된 ‘희망소비자가격’을 낮추고, 대신 쿠폰북을 없애고, .99 달러 같은 식으로 책정된 가격표도 모두 없애는 실험을 감행했다.

가격 끝 단위를 .99로 책정하여 마치 더 싼 것처럼 보이게 하는 속임수는 유통업계에선 이젠 너무 당연한 것이 되었다

사실 소비자들이 합리적으로 소비 활동을 한다면, 이런 JC 페니의 ‘정직한’ 판매 전략은 마땅히 환영받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실험은 대실패해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CEO는 1년 만에 쫓겨났다. 


사람들은 희망 소비자 가격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고, ‘좋은 거래’를 했다는 것 자체에서 효용을 느꼈던 것이다.


3.


더블 침대를 가진 리승환이 침구 세트를 사러 침구 매장에 방문했다. 원래 킹 사이즈 침구는 30만원, 퀸 사이즈는 25만원, 더블 사이즈는 20만원에 판매한다. 그런데 매장에서 ‘오늘만 특별 할인 행사’라며, 모든 시트를 15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리승환은 필요도 없이 크기만 한 킹 사이즈를 고른다. 세일 행사를 이유로 굳이 필요 없는 대용량 제품을 사거나, 한계효용을 초월하다 못해 불쾌감을 줄 정도의 대용량 음식을 사서는 꾸역꾸역 먹는 경우도 지극히 흔하다.

굳이 뷔페에서 ‘무작정 많이 먹기 위한’ 팁이 공유될 정도.


4.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인 ‘이콘’ 소비자는 매몰비용을 무시해야 한다. 매몰된 돈은 어떻게 해도 매몰된 것일 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맞지도 않는 구두를 발 뒤꿈치가 까지도록 신는다. 테니스 엘보우가 왔는데도 테니스 회원권이 아깝다며 레슨을 받으러 갔다가 병원 신세를 진다. 매몰비용은 물론 추가적으로 병까지 얻는 선택지인데도 말이다.


5.


프프스 스키장은 스키장을 10회 이용할 수 있는 시즌권을 6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마치 스키장이 40% 손해를 본 것 같지만, 보통 이런 시즌권 구매자들은 시즌 후 확인해보면 평균 6회 정도밖에 방문하지 않는다.


10회 시즌권을 사고도 4번밖에 방문하지 못한 리승환 씨. 다음 시즌에 방문해 “혹시 남은 6회를 이번 시즌에 사용할 수 없겠느냐”고 스키장에 묻는다. 이에 스키장은 “그렇게는 안 되지만, 이번 시즌에서 10회 시즌권을 재구입할 경우 지난 번 쓰지 못한 6회까지 모두 16회 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리승환 씨는 이 거래를 통해, 지난 시즌의 손해까지 벌충했다고 만족해한다.


그러나 지난 시즌에 4번밖에 안 온 사람이 이번 시즌이라고 16번이나 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 평균적으로 볼 때, 아마 이번 시즌에도 4번, 5번 정도나 오는 게 고작일 것이다. 프프스 스키장에게도 이 제안은 결코 손해보는 제안이 아닌 것이다.


이건 스키장 뿐 아니라, 헬스장 등 운동시설 회원권이 자주 사용하는 판매 전략이다.


헬스장의 낙전수입은 헬스장의 주된 수입원으로 여겨질 정도.


6.


경제학 이론은, 가격이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성수기, 크리스마스의 숙소 요금이 그렇게까지 치솟지는 않는다. “크리스마스에 바가지를 쓴 손님은, 불쾌감을 느끼고 그 숙소에 (비수기인) 3월에는 절대 방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합리적 인간은 임금이 오를 때 더 많이 일하고, 임금이 줄면 더 적게 일해야 한다. 이건 노동 시장을 설명하는 가장 기초적인 수요 – 공급 곡선이다. 


그러나 택시 기사들은 그 반대로 움직인다. 손님이 붐비는 성수기에 더 많이 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목표 소득을 달성하고 집으로 바로 가 버리는 것이다.

출처: 머니투데이
이런 점이 택시의 수요 – 공급 불균형을 더 강화할지도?

7.


빈티지 와인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경제학적으로 전혀 타당하지 않은 사고를 한다. 리승환이 와인 선물 시장에서 와인을 400달러에 구입했으며, 이 와인은 출하될 시점에는 500달러 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리승환은 내가 400달러를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즐거움을 위해 400달러를 투자했다고 생각하거나, 혹 심지어 100달러를 아꼈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어쩌면 리승환은 이 와인을 10년간 마시지 않고 묵혀 두었다가, 절반을 팔아 400달러를 메꾸고, 절반은 내가 마셔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 리승환은 아마 절반의 와인을 공짜로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경제학적으로 볼 땐 말이 안 되는 생각이다.


8.


이는 심지어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피도 눈물도 나지 않을 것 같은 경제학자들만이 모인 저 전설적인 ‘시카고대’ 비즈니스 스쿨조차도 그랬다. 비즈니스 스쿨이 새로운 건물에 입주하게 되면서 교수들은 연구실 배분을 두고 다투기 시작한다.


교수들은 평면도상의 구조와 면적을 두고 더 나은 사무실과 그렇지 않은 사무실을 나누고, 엄청난 대혼란을 일으켰다. 착오로 190제곱피트짜리 연구실을 뽑은 사람은 난동을 부렸고, 210제곱피트짜리 연구실로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실제 입주 후 교수들은 190제곱피트와 210제곱피트가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의 차이가 아니었으며, 실제 연구실 환경에 그건 그리 중요한 변수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전망, 엘리베이터 사용 등 훨씬 중요한 복합적 변수가 많았던 것이다.

시카고의 부스 비즈니스 스쿨은 ‘시카고학파’의 명성에서 볼 수 있듯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모인 곳인데도…

9.


NFL은 드래프트권을 서로 사고 팔 수 있다. 선순위 드래프트권을 후순위 드래프트권 두개를 받고 팔 수 있는 식이다. 이 경우, 각 팀은 선순위 드래프트권에 지나치게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이는 여러 비합리적 판단에 의한다.


1) 선수들의 능력 차이를 구분하는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며, 2) 이 선수가 ‘슈퍼스타’가 되리라는 극단적 예상에 빠진다. 3) 드래프트에 나선 선수들은 그 선수를 가장 과대평가한 팀에 낙찰될 수밖에 없고, 4) 내가 A란 선수와 사랑에 빠진다면, 다른 팀들도 다 마찬가지로 A와 사랑에 빠졌으리라 확신하고 지나치게 빨리 지명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5) 또 모두가 ‘지금’의 승리, 우승에 집착한다.


‘효율적 시장’은 존재할 수 있는가?

이는 금융경제학이나 법경제학과 같은 분야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한다.


금융경제학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가설은 ‘효율적 시장 가설’이라 불린다. ‘가격은 옳으며’ (즉, 자산의 가격은 그 내재 가치와 동일하며), ‘공짜 점심은 없다’ (즉, 당신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폐쇄형 펀드는 일물일가의 법칙(효율적인 시장에서, 같은 상품은 하나의 고정적인 가격을 가져야 한다)을 종종 거스른다. 


어떤 폐쇄형 펀드는 종목코드가 CUBA라는 이유만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발표한 날 가격이 70%나 급등했다.

CUBA 펀드의 비이성적 과열 현상

사실 금융만큼 내재적인 설명이 어려운 분야도 또 없을 것이다. ‘애플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주식 가치’란, ‘애플의 내재 가치’란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계산되는 개념인지, 이건 사실 굉장히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그 답을 제시할 수 있는 경제학자는 잘 없을 것이다. … 별로 그럴듯하게 설득되기도 힘들 것이고.


법경제학에 있어서는 어떠한가? 코즈 정리는 거래가 쉽고 자유롭다면, 자원은 결국 가장 가치있게 활용되는 쪽으로 흘러간다는 개념을 제시한다. 따라서 정부의 개입 없이도, 민간 이해당사자들은 협상을 통해 자연스레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50명의 사람들에게 “머그잔 한 잔을 얼마까지 주고 살 생각이 있는가”라고 질문한 뒤, 이들을 일렬로 줄세운다. 그리고 이들에게 무작위로 머그잔을 나눠준 뒤, 이를 서로 거래하도록 한다. 코즈 정리에 따르면, 결과적으론 머그잔의 가치를 더 높게 본 사람들이 대체로 머그잔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머그잔의 가치를 낮게 평가했던 사람들조차도 머그잔을 갖고 있기를 고집하고 머그잔 거래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머그잔을 손에 쥐게 되면 생각이 바뀌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은 값을 제시 받아도 머그잔을 갖고 있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경제학은 행동경제학이 될 수밖에 없다

리처드 탈러에 의하면, 경제적 인간들은 경제학자 이상으로 경제적인 판단을 내린다. 그들은 완벽한 예측을 하고, 자기통제도 완벽한데다, 완벽하게 사악하기까지 하다. 상황이 허락하고 경제적으로 우월한 전략이라면 당장 남의 돈을 훔쳐서 도망칠 사람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지 않다. 위에서 본 수많은 ‘경제적으로 바보같은 행동’들이 사실 우리의 경제적 판단 대부분을 차지한다.


리처드 탈러는 이것이 경제학이 철저하게 수학적으로 공식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철저히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모델링하는 것이 수학적으로 훨씬 간단하다. 수학적으로 최선의 모델, 수학적으로 만들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데 전력하다가, 그것을 신봉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경제학을 이루는 수학적 모델은 원래 경제학을 설명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였지만, 지나치게 신격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모델들이 무용한 것은 아니다. 일종의 ‘기준점’을 잡는데 있어 이런 모델들은 현실적으로 여전히 유용하다. 다만 이 모델이 ‘기준점’이 아니라 진짜 ‘현실’을 곧이곧대로 반영한다고 보면 곤란하다는 것 뿐이다.


경제학이 수학적 모델로서 일종의 ‘기준선’을 만들고, 심리학 등 다양한 과학적 방법론을 접목한 행동경제학이 여기에 현실성을 불어넣는다.


탈러 교수는 행동경제학이 이미 젊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혁명’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종국에는 행동경제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도 예언한다. “모든 경제학이 필요한 주제에 따라 결국 행동경제학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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