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또래랑만 친구 하란 법 있나요

조회수 2021. 2. 6.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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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는 데에는 나이도, 국적도, 언어도 중요하지 않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한국에서 새로운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어색하게 이름을 교환하고 나면, 나는 더 어색하게 서로의 나이를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나이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지고 위계가 서기 때문에 상대의 나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특히 상대가 내 또래인 경우엔 그게 더 중요했다. 얼굴만으로 나보다 어른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가 없으니까.


스웨덴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나이를 물어볼 일이 없었다. 서양에서는 나이를 묻는 것이 예의가 아니기도 했지만, 평등이 스웨덴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이다. 인종, 직업, 나이 등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개인 대 개인으로서 평등하게 관계를 맺었다. 


특히 서로의 나이를 묻지 않으니, 낯선 상대와 관계를 맺기가 한층 더 수월했다. 나이로 위계를 따지지도 않으니 훨씬 더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진심으로 서로가 관심 있는 것을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스웨덴에 사는 동안 나에게는 가족만큼 친한 친구들이 생겼다. 그중 나보다 15살 정도가 많은(사실 나는 아직도 안나의 나이를 정확히 모른다) 


안나는 우정을 나누는 데 나이도, 출신 나라도, 자라온 환경도, 사용하는 언어도, 하는 일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려준 친구다. 안나를 만난 건 스웨덴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언니, 안나가 저녁에 엘크 고기 요리해주신다고 오래!"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그 날은 우메오가 1월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영하 21도. 스웨덴에서 친하게 지내던 한국인 동생 해린이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스웨덴 가족네 집에 초대해주었다. 새로운 스웨덴 친구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해주고 싶어 양손 가득 한국 음식 재료와 기념품을 들고 건네받은 주소를 찾아갔다.


오후 3시에 지평선 너머로 숨어버린 해를 뒤로하고, 하늘에서 은은하게 비춰주는 별빛 달빛의 인도를 받으며 눈길을 지나 안나의 집에 도착했다. 우메오 강가에 위치한 안나의 집은 작은 조명들과 촛불들로 집 자체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띵동 하고 벨을 누르자 익숙한 생김새에 개성 넘치는 헤어 스타일을 한 여인이 환영의 인사와 함께 문을 열어줬다. 바로 안나였다.

"Välkommen! Welcome Dohee."

40대 중반의 안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 스웨덴에 입양된 친구였다. 유머 감각이 넘치는 헤비메탈을 좋아하는 남편과 동서양의 미가 오묘한 외모의 사랑스러운 두 딸과 함께 우메오에 살았다. 해린이는 안나를 3년 전 학교에서 운영한 호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고 했다. 자신이 태어난 한국에 대해 더욱 궁금해지던 때, 안나는 해린이를 소개받았고 해린은 나를 안나에게 소개해줬다.


매주 우리는 안나네 집에 모여 테이블을 둘러싸고 음식을 준비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스웨덴 생활, 연애사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가족, 인생, 삶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까지,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몇 년의 우정을 쌓아온 듯 서로가 편안해졌다. 15년 이상의 세대 차이도 없었다.


한국에서 내가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친구는 모두들 내 또래였는데, 40대 아줌마와 이렇게 친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왜 한국에서는 나이 차이가 나는 친구가 없을까? 확률적으로 학교에서 또래를 만나는 것이 쉽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언니, 오빠, 선배 등 한두 살 나이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뚜렷한 위계가 생기기도 했고, 나이로 구분 짓고 나니 나이를 뛰어넘는 공통점을 찾을 기회조차 없었다.

안나와의 첫 만남 2017년 1월.

하지만 나는 스웨덴에서 친구가 되는 데는 나이뿐 아니라 자라온 환경도, 사용하는 언어도, 하는 일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에서 우리가 인연을 맺었다는 것만이 의미가 있었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공통점을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나이를 묻지 않으니 우리는 서로를 더 편하게 대할 수 있었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니 연결점을 찾는 것이 더 쉬웠다.


우리가 더 많은 공통분모를 발견할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고, 우리가 보내는 시간만큼 우리의 관계는 깊어졌다. 나이, 모국어, 자라온 환경 등 우리에겐 차이점이 무수하지만, 이 사소한 차이는 우정을 쌓는 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에겐 우리의 차이를 뛰어넘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의 아지트가 돼버린, 안나네 집에서 한국 음식을 나누는 이상의 무엇.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치열한 전장에서 사람과 삶을 더욱 사랑하려 노력하는 인간일 뿐이었다. 이 사실은 우리의 다름을 포용했고, 다름은 다양성이 되었다.


감사히도 우리가 살아온 세월과 환경이 다른 점은, 익숙한 집단에서 벗어나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이 많은 친구인 안나는 연륜을 바탕으로 내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지혜를 나눠주었다. 어른들의 지혜가 필요했지만 가족들에겐 걱정할까 봐 털어놓지 못했던 고민을 안나에게 털어놓을 때마다, 안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내 이야기가 정답도 아니고 정답이 될 수도 없지만, 내가 조금은 너보다 오래 살고, 다른 환경에서 자란 만큼 다른 관점에서 의견을 나눠줄 수 있을 것 같아."

특히, 불명확한 미래와 커리어 때문에 고민할 때마다 안나의 조언은 늘 큰 힘이 되었다.

"젊을 때 무엇이든 도전해봐. 나름대로 젊을 때 여행이나 다양한 직업에 도전해봤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더 여러 가지에 도전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 무엇보다 가족이 생기고 나니 나만 신경 쓸 겨를은 없더라고. 한국이나 스웨덴에서 삶의 양상이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아. 나는 네가 불안해하기보다 나는 너의 꿈을 펼쳐나가면 좋겠어."

내가 믿는 사람의 진심 어린 조언은 나의 선택에 큰 힘이 되어준다. 안나는 내게 처음으로 친구가 되기 위해서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많이 없음을 깨닫게 해 준 사람이다. 내가 그녀보다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안나는 내게 단 한 번도 조언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나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자신의 지혜를 조금 더해주었을 뿐이었다.


내가 주변 친구들에게서 얻을 수 없는 관점을 전해준 친구. 안나 덕분에 나는 마음을 열고 나이, 국적 등 우리 배경에 상관없이 더욱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력하게 되었다.

스웨덴에서 돌아온 후, 꼭 안나와 같은 친구를 만났다. 나보다 스무 살 많은 L은 브라질에서 왔다. 불명확한 미래와 커리어 때문에 고민하는 나와 L의 조언은 늘 큰 방향을 제시해 준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할 때마다 그녀는 ‘Let it go. 삶이 주는 모험을 받아들여.’라고 거듭 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려주었다.


교사가 되기로 했던 그녀는, 교사가 되는 길을 포기한 뒤 15년여 간의 회사생활을 끝내고 4년 전 한국에 정착했다. 한국에서 번듯한 직업도 없던 그녀지만 지금은 꽤나 잘 나가는 1인 기업가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기 일을 사랑한다.

"L, 40대 중반에 들어서 1인 기업을 혼자 시작할 때 두려움은 없었어? 지금도 매일 새로운 일을 꾸며내고, 실행하는 널 보면 항상 자신감에 차 있는 것 같아. 나이에 관한 스트레스도 없고."

현재의 나의 모든 고민이 녹아든 질문이었다. 늘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하고 국경을 넘어 거침없이 나아가는 그녀의 행보가 나는 마냥 부럽고 본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두려움이란 내 사전에 없어!’ 따위의 상투적인 대답을 기대한 나와 달리, 그녀는 “그렇게 보일 뿐이야“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보일 뿐이야. 그렇게 보일 뿐이야. 그렇게 보일 뿐이야."

그녀의 한 마디가 대화하는 내내 내 마음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L은 현재 삶의 중반부에 서서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 보면, 그녀의 삶도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할 때도, 수년간 일한 직장을 떠나 한국으로 올 때도,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도, 결혼할 때도 그리고 심지어 비행기를 타는 문제까지도.

"늘 두려움은 여기 존재해. 사라지지 않지. 하지만 그저 그 두려움이 있음을 직시하고 품으려고 해. 그리고 그 순간 내 마음이 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어. 그럼 삶이 길을 보여주더라고."

L이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보다 훨씬 길고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나보다 스무 살 정도 많은 친구들의 조언은 단순한 위안을 넘어 통찰로 느껴졌다. 또래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와는 주제도 깊이도 다른 피드백. 어른 친구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입이 아닌 심장에서 나왔다. 삶을 최선을 다해 버텨냈기 때문일까.


한국에서도 이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가 나눈 대화는 내 머리가 아닌 심장 깊숙이 닿았다. 안나와 L 그리고 나는 살아온 환경도, 나이도, 언어도, 하는 일도 너무나도 다르지만, 우리가 저녁에 함께 나눈 대화는 내 삶을 관통했다.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치열한 전장에서 사람과 삶을 더욱 사랑하려 노력하는 인간이었고, 비슷한 인생길 위에서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것. 친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그것뿐이었다. 나이도, 국적도, 언어도 중요하지 않았다. 또래랑만, 한국인이랑만 친구 하란 법 있나!


원문: 검은머리 왜국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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