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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를 가져왔으니 전투기를 내놓으시오

조회수 2021. 1. 27.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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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돈 주고도 사기 힘든 전투기를 펩시를 모으면 준다고요?

돈 주고도 사기 힘든 전투기를 펩시를 모으면 준다고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는 게 아니랬다. 안타까운 사실은 약속을 외칠 때는 분명히 지켜질 줄 알았다고 착각하는 것인데. 덕분에 나는 7, 8살 때 아빠에게 벤츠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빠를 피해 다니고 있다(반대로 아빠는 나를 쫓고 있다). 저는 그때 그게 사탕 예닐곱 개만 모으면 살 수 있는 건 줄 알았죠!


세상은 넓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말하는 이들은 참 많다. 이번 시험은 쉽게 냈다는 선생님 말씀이라거나, 내일부터 다이어트라는 다짐이거나, 이것만 먹으면 키도 크고 머리도 좋아진다는 홍보나(…) 오늘 마시즘은 상품을 잘못 준다고 했다가 대학생에게 전투기를 사 줄 뻔한 ‘펩시 해리어 전투기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티셔츠부터 해리어 전투기까지?
아낌없이 주는 펩시 스터프(Pepsi Stuff)

세계 최고의 이인자 펩시(Pepsi)의 고군분투는 언제나 재밌다. 1995년 펩시의 고민은 건강음료 열풍으로 콜라의 소비가 줄어들어 가는 것과 다음 해에 개최될 애틀랜타 올림픽이었다. 올림픽은 코카콜라가 꽉 잡고 있는 시즌이자 애틀랜타는 그 코카콜라 본사가 있는 고향이니까. 또 말도 안 되게 크게 이벤트를 하겠지. 그때까지 우물쭈물 대다간 완전히 잊히는 거야!


1995년 11월, 펩시는 전대미문의 프로모션을 시작한다. 이름하야 ‘펩시 스터프(Pepsi Stuff)’. 펩시 한 박스를 사면 10포인트를 주고, 모은 포인트로 멋진 상품을 교환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한 것이다.

펩시만 있으면 티셔츠부터 전투기까지 살 수 있다

선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티셔츠를 사려면 75포인트를 모으면 되고, 색이 들어간 안경을 사는 데는 125포인트, 가죽재킷은 1,450포인트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1등 상품이었다. 700만 포인트를 모으면 미국 항공 제조업체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에서 만드는 ‘해리어 수직이착륙 전투기(AV-8 Harrier II)’를 건 것이다.


해리어 전투기를 타고 등교를 하는 학생이 “버스보다 훨씬 빠르군”이라고 말하는 광고 대사는 텔레비전을 보던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렸다. 와 미쳤다. 콜라만 마시다 보면 살림살이도 장만하고 전투기까지 받을 수 있잖아?


하지만 700만 포인트는 일반 소비자에게는 너무 큰 장벽이었다. 펩시는 이 허세 가득한 광고가 제법 멋지게 느껴졌다. 700만 포인트를 클리어한 학생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21살의 대학생, 펩시에게 전투기를 달라 요청하다

펩시 스터프 광고를 보던 21살 존 레너드(John Leonard) 역시 멋지게 등장하는 해리어 전투기에 넋을 놓는다. 모두 펩시가 원하는 대로였다. 700만 포인트를 모은다는 것은 1,680만 캔의 콜라를 산다는 것을 의미했고,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걸 매일 10캔씩 마셔도 4,602년이 넘게 걸려서 차라리 태양까지 걸어가는 게 빠른 시간을 의미했다. 


문제는 이를 본 존 레너드는 광고 담당자보다 숫자 계산이 빨랐다는 것이다.

오늘부터 펩트코인 가즈아

그렇다. 펩시 스터프의 1포인트는 돈으로 10센트로 환산할 수 있다. 즉 700만 포인트는 70만 달러가 필요한 것인데 당시 해리어 전투기의 가격은 대략 2,300만 달러였던 것이다. 


32분의 1의 가격으로 전투기를 살 수 있는 초특가 세일을 하다니. 1996년 3월, 존 레너드는 펩시콜라를 사서 모은 15포인트와 투자자를 모집해 만든 700,008.5달러의 수표를 펩시에 보낸다. 이를 합치면 700만 10포인트. 10포인트는 배송비였다고.


뒤늦게야 자신들이 콜라는 알고, 수학을 몰랐었다는 생각을 한 펩시는 곧 수표를 반송했다. 유머러스한 자신들의 조크(joke)에 재치 있게 맞받아 쳤다면서 무료 쿠폰까지 포함하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수표가 펩시에 돌아왔다. ‘계약위반, 사기, 허위광고 및 불공정한 상거래 혐의로 펩시를 고소할 것이라는’ 외침과 함께.


레너드 VS 펩시, 전투기는 상품인가 아닌가

펩시는 장난이었지만, 레너드는 진지했었다. 그는 실제로 700만 포인트를 모으면 전투기를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법적 자문을 마쳤었고, 펩시가 가볍게 대응하자 이를 고소해버리는 전대미문의 이벤트 고소전이 펼쳐졌다. 펩시 측은 광고적인 표현이었으며 실제 상품 안내 카탈로그에는 전투기가 없다고 말했다. 존 레너드는 광고에 표현된 ‘700만 포인트를 모으면 해리어 전투기를 받을 수 있다’는 자막을 강조했다.


4년을 주고받던 법정공방은 1999년 뉴욕 맨해튼 연방 법원에서 마무리되었다. 이 사건을 맡은 킴바 우드(Kimba Wood) 판사는 펩시가 허위광고를 했지만 전투기를 줘야 할 의무는 없다고 판결했다.


그는 ‘진정성’에 방점을 두었다. 가격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부모의 허락이 있어도 학생들이 차를 타고 등교를 못 하는데, 아이가 제트기를 타고 등교하는 모습은 시청자가 봤을 때 진짜가 아닌 연출된 허위로 생각할 것이라는 것’이다. 전투기가 아니라 2300만 달러짜리 킥보드를 걸었다면 이겼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지.

전투기 사건은 잘 끝난 편이지만, 필리핀에서는 1등 당첨 번호를 80만 개나 잘못 생산해서 시위사태가 나기도

승자 없는 승부였을 수도 있었지만, 사실은 모두가 승자였다. 존 레너드는 수표로 보낸 투자금 이상의 위로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펩시의 역사에 잊어선 안 될 이름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일의 단초를 제공한 펩시는? 어그로 덕분에 마케팅 하나는 톡톡히 한 것. 담당자들은 자신의 수학 실력을 한탄하며 광고 속 해리어 전투기의 포인트를 100배 올려 7억 포인트로 조정했다.


어쩌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 넓은 미국 땅에 700만 포인트의 결함을 찾아낸 게 존 레너드뿐이었다는 사실이. 여러 명이었다면 펩시는 콜라가 아니라 전투기를 만드는 회사가 되어야 했을지도 모르니까.


사실 그전에 펩시콜라로 잠수함을 바꾸던 이들이 있었다

펩시로 전투기를 바꾸는 데는 실패했지만, 잠수함은 바꿀 수 있었다. 냉전시대 소련에 처음 판매된 미국산 제품이 바로 ‘펩시’인 것이다. 


미국의 상징 자체인 ‘코카콜라’가 발을 들일 수 없는 땅인 소련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펩시는 1959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 박람회에서부터 고위층들이 펩시를 마실 수 있도록 판을 깔아 놓았다.

출처: ⓒIvtorov
소련에는 코카콜라보다 펩시가 먼저 들어왔다

그렇게 소련에 펩시가 들어오고, 곧 펩시는 인민(?) 콜라가 된다. 안타까운 것은 냉전 시대이기 때문에 소련의 루블을 펩시가 받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펩시는 물물거래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콜라 원액을 주고 ‘토마토 페이스트’를 받아 ‘피자헛(은 펩시코의 것이다)’에 뿌렸다. 다음에는 콜라 원액을 주고 ‘보드카’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소련 내의 펩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콜라와 잠수함을 바꾼 펩시는 도대체…

1989년 소련은 펩시콜라 공장 늘리기 위해 대담한 딜을 한다. 가지고 있는 17척의 잠수함과 3척의 군함(프리깃, 구축함, 순양함)을 펩시에게 준 것이다. 졸지에 펩시는 세계 6위의 해군력을 보유하게 된 콜라 해적단이 되었다…는 잠깐이고 모두 한 달 안에 고철업자에게 팔아 돈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념의 싸움은 한 치의 양보도 없지만, 콜라에 있어서는 교환과 대화가 가득한 이 시대. 펩시코의 CEO였던 ‘도널드 켄달’은 백악관 국가 안보 보좌관에게 이런 조크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당신들보다 더 빨리 소련을 무장해제시키고 있다.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파격적인 이벤트는 파국적인 결과를 맞이한다

펩시 스터프는 전설이다, 한 번 더 했으니까

역사는 반복되고, 펩시 해리어 전투기 사건과 같은 파국(?) 역시 계속해서 일어난다. 한국에서는 파맛첵스 사건(초코첵스와 파맛첵스의 출시를 두고 소비자 투표를 했다가 파맛첵스가 압도적 1위를 한 사건)이 있었다. 


팝스타인 저스틴 비버는 2010년에 월드투어 첫 국가를 온라인 투표로 한다고 말했다가 북한으로 갈 뻔했다. 압도적인 참여자들이 “저스틴 비버를 북한으로!(Send Justin Bieber to North Korea!)”를 외치며 투표했으니까.


어그로(Aggro, 도발) 아니면 관심조차 얻기 힘들어지는 시대라지만, 한 번쯤 지르기 전에 생각을 해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잘못했다가 졸지에 전투기를 사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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