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의대생, '베트남 커피왕'이 되기까지

조회수 2021. 1. 8.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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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해외의 커피 브랜드들이 베트남의 가능성을 다 가져가지?"

어린 시절 부모님 심부름으로 시작해 매일 출근 후에 마시는 한 잔까지. 인스턴트커피 외길을 사는 마시즘. 그에게 도전장을 내민 커피가 있다. 바로 베트남 국민커피라고 불리는 ‘G7 커피’다. 스페셜티 카페들의 커피 원두는 몰라도 인스턴트커피의 세계에서만큼은 바리스타와 소믈리에 못지않은 까다로움을 자랑하는 나를 뭐로 보고!


…라는 생각은 따뜻한 물과 함께 사르르 녹았다. 이 고소한 향기는 뭐지? 내가 아는 인스턴트커피의 향도 아니고, 도도한 원두커피도 아니다. 마치 한겨울 군밤장수가 집 앞에서 뜨끈뜨끈한 밤을 굽는 듯한 냄새 같달까? 누가 커피에 참기름을 둘렀나 싶어 마셔보았더니 진하디진한 풍미가 느껴진다.


이런 독특한 풍미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오늘은 G7 커피에 들어 있는 ‘커피왕’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가난한 의대생, 베트남 커피 산업을 일으키다

시작은 베트남 커피의 도시 ‘부온마투옷(Buon Ma Thuot)’에서 열렸다. 가난했던 의대생 당레웬부(Dang Le Nguyen Vu)는 학교를 다니다 자연스럽게 커피를 접한다. 하지만 공부를 할수록 그가 도전해보고 싶은 것은 의사의 길이 아닌 커피의 길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6년 동안 다니던 의대를 포기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님에게는 청천벽력의 소리였다. 당시의 베트남 커피산업은 별 볼일이 없었으니까.


물론 베트남은 세계적인 커피 산지다. 하지만 산업적으로 판매되는 대부분의 커피(95%가량)는 로스팅이 되지 않은 초록색 생두(Green Bean)이었다. 특별한 가공을 거치지 않은 생두로는 큰돈을 벌어들일 수는 없었다(커피농부는 커피산업이 벌어들이는 돈의 20분의 1밖에 가져가지 못한다). 하지만 당시 베트남 내에는 대량으로 가공과 로스팅, 유통까지 책임질 곳이 없었다.

왜 해외의 커피 브랜드들이 베트남의 가능성을 다 가져가지?

그가 가진 것은 낡은 자전거 하나였지만, 당레웬부는 커피를 가공하고 로스팅하는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1996년 ‘쭝웬(지금의 쭝웬 레전드 그룹)’의 시작이었다.


제로에서 히어로로: 베트남 커피왕의 탄생

커피 가공으로 시작한 ‘쭝웬’의 다음 숙제는 유통이었다. 쭝웬은 이를 위해 카페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베트남 전역에 500여 개의 카페를 만든다. 사람이 많이 오가고 모이는 장소에 카페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레웬부는 베트남 사람이라면 베트남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당시 베트남 사람들은 해외에서 온 것들에 더욱 환호했다. 결국 이대로라면 그 벽을 깨기가 어렵겠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해외에서 먼저 인정을 받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커피가 G7 커피이다.


그렇다. G7은 우리가 뉴스를 보면 자주 나오는 선진국 그룹 G7(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에서도 인정을 받겠다는 각오로 만들어졌다. 


맛 또한 우수했다. 베트남 호치민 통일궁에서 열린 커피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다른 유명 커피들을 누르고 89%의 사람들이 G7을 택한 것.

베트남의 1등 커피 G7의 등장이요!

사람도 가수도 음료도 이름을 따라간다고 할까? 결국 G7은 유럽과 미국에도 당당하게 문을 두드렸다. 2012년 포브스는 쭝웬의 당레웬부를 인터뷰하며 그를 ‘베트남 커피의 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베트남 커피의 왕은 거기서 만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인스턴트커피의 종주국인 대한민국에 진출했으니까.


커피의 왕국 한국에서 사랑받는 인스턴트커피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인스턴트커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임과 동시에, 커피믹스라는 것을 최초로 발명한 나라다. 커피 산지는 아니어도 다년간의 내부 경쟁 끝에 좋은 품질의 커피믹스를 만든다. 대한민국이라는 견고한 성에 쭝웬 레전드 그룹의 G7 커피가 어떻게 진출을 할 수 있을까? 사실 이미 진출을 하기도 전에 G7 커피의 팬들이 많았다.


그렇다. G7 커피는 한국 사람들이 이미 좋아하는 인스턴트커피였다. 딱 짚어 그것은 언제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2000년대 이후 베트남 노동자들이 고향을 방문해 가져온 G7을 한 개 두 개 맛본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고, 한국인들의 베트남 여행이 활발해지자 국내에 돌아올 때 반드시 챙겨야 할 베트남 특산물에 G7 커피가 있었던 것이다. 더 고소하고 진한 맛의 G7 커피는 커피믹스 한 개로 모자라 두 개씩 타는 한국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할 녀석이었던 것.


알음알음 구해야만 했던 G7 커피는 이제 마트와 편의점, 온라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또한 ‘G7 커피 믹스 3 in 1’ 외에도 G7 블랙커피, 카푸치노 헤이즐넛과 카푸치노 모카 등 종류가 다양하다. 전체적으로 시큼한 산미보다 고소하고 진한 맛을 강조한 G7 커피 시리즈들은 맛과 향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국내에서도 이제 다양한 버전의 G7을 만날 수 있다!

한 마디로 규정하자면 구수하고 진한 맛으로 미각을, 깊은 향기로 후각을, 감각을 자극하여 몸과 마음을 깨워주는 것 같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주는 커피 같다고 할까?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커피를 바라보는 G7의 철학

자전거 한 대를 타고 다니며 베트남 커피의 세계화를 외쳤던 의대생은 베트남 커피산업을 책임진다. 그의 바람이 가득 담긴 이름의 G7 커피는 세계경제포럼(WEF)이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등의 국제행사에 제공되는 유일한 커피 브랜드가 되었다. 과거에는 꿈처럼 들리던 ‘세계 최고의 커피그룹을 만들겠다’는 꿈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것이 G7 커피가 왜 그렇게 강렬한 풍미를 가졌는지에 대한 힌트가 된다. G7 커피가 말하는 커피는 열정이자 어떠한 염원에 가깝다. 모두가 커피를 휴식으로 즐기는 이 시대. G7 커피는 커피를 통해 당신이 사랑하는 것, 그 꿈을 향해 전진하라’는 메시지를 준다. 


현실이 힘들고 꿈은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될 때 함께 뛰어주는 친구처럼. 고소하고 진한 G7 커피를 즐기다 보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이 글은 유료 광고를 포함합니다.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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