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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어하우스에서 안 싸우고 살아남기

조회수 2020. 12. 8. 1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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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들은 집에 없는 세입자를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첫 번째 집, 한강뷰 아파트

어렵사리 합격한 한강뷰 아파트 생활이 시작됐다. 한집에 모르는 두 언니와 지내는 것쯤은 나에게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안방에는 면접관 주인장 언니, 큰 방에는 외국물 먹은 언니가 살았다. 주인장 언니는 본인이 쓰는 밥솥과 식기류를 제공해 주었고, 냉장고 칸을 3등분 해서 각자 반찬 넣을 공간도 나눠주었다.


한집에 살지만 철저한 공간 분리와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하메의 룰이었다. 대학 때처럼 방순이들과 사이좋게 밤새 수다 떨고 그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나는 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둔 직장인 하메가 썩 마음에 들었다.

오늘의 집 @he._.ej 님의 주방

게다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나는 첫 직장에서 대부분 야근을 해야 했다. 기본으로 오후 10시 퇴근, 일이 많으면 새벽 1–2시에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헤엑? 운이 나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고른 회사는 핀테크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예상한 일들이었고 스스로도 많이 성장해야 하는 시기여서 굉장히 즐겁게 일에 몰입하며 지냈다. 이렇게 늘 야근을 하다 보니 한강뷰 아파트에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집에 들어갔고 내가 출근할 때쯤에는 집에 언니들이 없었다.


결국 처음 면접 볼 때 내가 말한 대로 나는 정말 조용히 잠만 자고 나왔다. 그렇기에 집순이 언니들과 마주치는 날은 주말밖에 없었다. 


반면에 큰 방에 사는 외국물 먹은 언니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집주인 언니랑 약속한 영어도 알려줘야 했기에, 두 언니는 꽤나 긴 시간을 함께 보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건지, 언니들 두 명은 입주한 지 두 달 사이에 서너 번 정도 크게 갈등을 겪었다. 싸우게 된 이유는 굉장히 사소한 것들이었다.

"물을 마시고 나서 물을 채워 놔야죠…!

방을 좀 더 깨끗하게 써주세요.

쓰레기 분리수거를 왜 이렇게 해요?

음식물 처리를 제때 안 하면 집에 냄새가 나잖아요!

에어컨을 끄고 다녀야죠. 왜 켜고 다녀요?

노래 소리 좀 줄여줄래요? 같이 사는 공간이잖아요."

6개월 계약이 끝나자 결국 집주인 언니는 큰방 언니에게 연장하지 말고 방을 빼라고 했다. 그 집이 시세가 아주 낮고, 좋은 집이었기 때문에 금방 다른 사람이 들어오곤 했지만 집주인 언니가 바라는 하메의 조건에 맞는 사람이 없었던 건지 내가 있던 시기에 한번 더 큰방 하메가 바뀌었다. 주인장 언니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하우스메이트를 하면서 꽤 스트레스를 받는 듯했다.


하루는 본인의 생활방식이 많이 깐깐한 편이냐며 주인장 언니가 내게 물어왔다. 음. 나는 아주 잠깐의 고민을 하고서는 언니 집이니 언니 방식에 따르는 게 맞다고 돌려 얘기했다. 


물론 욕실 청소할 때 수도꼭지에 물 자국이 남지 않게 닦아주라는 등의 깐깐한 요구사항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집주인으로서 요구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고 무엇보다 30만 원에 이 집에 살려면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야근을 밥 먹듯 하며 배운 사회생활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휴.


언니도 당시의 나처럼 독신주의였는데, 본인은 10년이나 만난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결혼하면 간섭받고 피곤할 것 같아서 오래 혼자 지내려고 이 아파트를 장만했는데 방이 남다 보니 결국 이렇게 하우스메이트들이랑 같이 살게 됐다고 했다. 안 쓰는 빈방을 두기에는 아까우니까. 


하지만 몇 개월 뒤 큰방 하메를 한번 더 떠나보내며, 언니는 이런 얘기를 했다. 독신주의인데 어차피 누군가와 이렇게 맞춰가며 살 거라면 그게 ‘독신’이 맞는 건가? 하. 차라리 10년간 서로에 대해 잘 아는 남자친구와 지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다만 그게 결혼이 아닌 ‘동거’라는 사회적 시선들이 있으니 고민스럽다며.


그때 당시에는 언니가 어떤 얘기를 하는 건지 크게 공감하진 못했다. 나도 3년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나이도 어렸고, 그냥 이렇게 일하는 게 너무 좋았고, 뭐 언니나 친구들과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나도 36살이 되면 지금의 남자친구와 쭉 연애만 하면서, 이 정도의 경제력을 쌓아놓을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부터는 똑똑하게 돈을 모아야 내 한 몸 잘 건사할 집을 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언니가 큰방 하메와 다투며 생활방식을 맞추는 스트레스와는 별개로, 나에게는 꽤나 이 하우스메이트가 만족스러웠다. 나만의 영역이 존재하는 공간임과 동시에 함께 사는 안정감과 주거환경의 쾌적함이 좋았다. 하지만 직장이 여의도 63빌딩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한강뷰 아파트를 떠나야 했다. 아쉬움으로 짐을 쌀 때 언니가 그랬다.

가은 씨처럼 잘 맞는 하메가 없었는데… 아쉽네요.

문득 든 생각. 글쎄… 내가 잘 맞는 하메였을까. 음. 난 그냥 집에 거의 없는 하메였을 뿐이다…


두 번째 집, 물기 없는 집이 될래요

스타트업이었던 핀테크 회사가 63빌딩으로 이사를 갔다는 건 시리즈 B 투자유치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이고. 나는 한화 사람처럼 63빌딩 16층에 일하게 됐다. 


한강뷰 아파트는 없어졌지만, 여의도 한강뷰를 보며 일할 수 있으니 이것으로 나의 전망 좋은 생활은 잘 유지되었다. 그러나 1년 스타트업에서 쌩 신입으로 일을 했다는 건 내 월급이 아주 작고 귀여웠다는 것이고. 여의도 근처 괜찮은 집의 보증금을 마련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첫번째 하우스메이트 생활이 너무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난 이번에도 아파트 하우스메이트를 찾아다녔다. 이번에는 방 크기가 좀 더 넓은 영등포 푸르지오 아파트에 살게 됐다. 


월세 40만 원에 넓은 거실과 부엌과 큰 방을 하나로 쓰면서 치안까지 안전한 아파트에 사는 것은 꽤나 좋은 조건이었다. 그 집도 주인 아주머니가 안방을 쓰고, 남는 두 방을 하메들이 쓰는 구조였다. 첫 번째 집과 다른 점은 아주머니가 하우스메이트 운영을 꽤 오래 해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정말 놀랍게도… 다른 방에 있는 언니와 집주인 아주머니가 또 싸우기 시작했다…

이 주인 아주머니는 특이하게도 ‘물기’를 병적으로 싫어하셨는데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거나 세수를 하고 나면 반드시 물기를 모두 제거하고 나와야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수나 샤워를 하면 거울에도 세면대에도 욕조에도 물이 튀지 않는가. 항상 걸려 있는 물수건으로 이 물기들을 최대한 제거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이렇게 해야 다른 사람들이 쓸 때도 쾌적하고 곰팡이도 안피기 때문에 꼭 이렇게 해달라시며.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하메를 받으시면서 정한 룰이었기 때문에 그 룰을 최대한 잘 지키며 생활했다. 늘 물기와의 전쟁을 벌여야 했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세입자였다. 가끔은 ‘아니 화장실에 늘 존재하는 물기까지 치우며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팍팍한 서울 생활 중 포근하고 쾌적한 아파트 방 한 칸을 위로 삼아 열심히 물걸레질을 했다.


하지만 건넛방 언니는 이 물기 제거의 룰을 자주 지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도 야근이 많았던 나는 늘 마지막 주자로 화장실을 사용했는데 둘만 쓰는 화장실엔 늘 물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한테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불편하다고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매의 눈 집주인 아주머니는 그런 점들을 눈여겨보고 계셨던 것 같다. 물기는 내가 마지막으로 치우기 때문에 이래저래 넘어갈 수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보일러 사건이 터지면서 아주머니와 언니가 아주 크게 싸우기 시작했다.

겨울이 되자, 집주인 아주머니는 룰을 하나 추가했는데 바로 난방을 트는 시간이 정해놓자는 것이었다. 


하우스메이트를 많이 운영해오시면서 아주머니는 난방비에 굉장히 예민하셨다. 춥게 지내게 하지 않겠지만, 회사에 나가 있는 낮과 초저녁 시간에는 난방이 꺼지도록 잘 조정해달라고 하셨다. 그 보일러는 켤 때 8시간 타이머를 맞추면 알아서 그 시간만 돌아가고 꺼지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집에 거의 없는 유령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보일러를 내 손으로 켜고 끈 적이 없었다.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는 누군가 보일러를 틀어놓은 채 모두 잠든 상태였고, 출근할 때는 이미 보일러가 꺼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아주머니가 낮 시간에 집에 돌아올 때마다 보일러가 계속해서 돌아가자 아주머니는 건넛방 언니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너무 피곤해서 반차를 내고 오전에 자는데 부엌에서 아주머니와 언니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넌 대체 왜 보일러를 네 멋대로 트는 거야?

아니 제가 안 틀었다니깐요?

그럼 여기 너 말고 보일러를 트는 사람이 누가 있어? 쟤는 여기서 잠만 자는데!

그럼 제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예요? 아주머니?

그럼 이게 왜 돌아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그 보일러는 고장이 났던 것 같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언니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평소에 물기도 제거 안 하는 걸 보면 보일러도 자기 맘대로 트는 게 분명하다며 씩씩대셨다. 


하루는 일찍 퇴근한 나를 보자마자 언니가 방으로 달려와 하소연을 했다. 회사에 있을 때도 그 아주머니가 본인에게 전화를 해서 ‘네가 또 보일러를 틀었다, 물기를 제거하지 않았다’는 등의 잔소리를 해댔다는 것이었다. 언니는 이 집에 살면서 너무 스트레스받는다며 돈 더 주고서라도 혼자 살겠다고 집을 나갔다.


그 시즌에 아주머니는 자기도 하우스메이트 관리하느라 힘들다며 다른 방 하메를 몇 개월간 받지 않았고, 심지어 같은 달 아주머니의 손녀가 태어나자 아주머니는 아기를 봐주러 주중에는 아예 집에 들어오시지를 않으셨다. 


아주머니가 오시는 날은 일주일에 딱 한 번, 쓰레기나 집 청소를 하러 들르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그 큰 아파트 전체를 월세 40만 원을 주고 독차지하며 살았다는 거다. 언니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가 등 펴고 잘 잤다.


하메를 하면서 누군가와 함께 살 때 드는 이익과 수고로움 중 어떤 게 더 클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같이 살지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그, 서로의 룰을 따라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7개월 정도 지냈을 때, 나는 강남에 있는 광고회사로 이직을 하게 됐고 이 물기 없는 집과도 작별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내가 떠날 때 아주머니께서 이런 얘기를 하셨다.

아흉 아쉬워서 어떡해. 난 정말 이런 하메만 있었으면 좋겠어~

음… 그러니까 집주인들은 집에 없는 세입자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원문: 앤가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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