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난 쓰지도 않을 '별다방 다이어리'에 집착할까?

조회수 2020. 11. 25. 18: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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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는 '나만의 연례행사'입니다.

굳이 달력의 날짜를 보지 않아도 연말이 왔다는 걸 느끼는 시그널이 몇 가지 있다. 핼러윈 장식이 빠지기 무섭게 크리스마스 장식이 선수 교체를 한 상점의 쇼윈도를 볼 때. 또 올해가 가기 전에 얼굴을 보자며 송년회 약속을 잡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을 때.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영화의 예고편을 볼 때. 나는 올해가 또 마무리되어가는구나 느낀다. 동시에 쓸쓸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묘한 상태가 되곤 한다.


사실 연말을 알리는 여러 시그널 중 내 마음의 살갗에 확 와 닿는 신호는 따로 있다. 바로 별다방의 다이어리 이벤트가 시작을 알리는 앱의 알람. 커피를 한 잔 마실 때마다 프리퀀시라는 이름의 스티커를 주고, 17개의 스티커를 모으면 다이어리 혹은 다른 이벤트 아이템으로 교환할 수 있다. 


열성 팬이라 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연말이 되면 좀 더 자주 별다방에 가게 된다. 이왕 먹는 커피, 스티커를 모아 다이어리를 받을까? 하는 마음이 자꾸 날 그곳으로 끌어당긴다.

난 다이어리를 쓸 만큼 계획적이거나 꼼꼼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매해 연말이 되면 17잔의 별다방 커피를 마시고, 어김없이 다이어리를 손에 넣는다. 스티커와 다이어리를 교환하고 처음 받았을 때를 제외하면 1년 내내 다이어리를 한 번도 펼쳐 보지도 않는다. 


책장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다이어리를 볼 때면 숙제 안 한 기분이 밀려든다. ‘내년에는 글로벌 대기업의 이따위 상술에 놀아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하지만 매번 물거품이 된다. 다시 다음 해 연말이 되면 다이어리를 갖겠다는 집착에 커피를 마셔댄다.


매년 쓰지도 않을 다이어리에 왜 이리 집착을 할까? 생각은 하면서도 연말이 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별다방으로 향한다. 뭐 대단한 기능이나 소장 가치가 있는 다이어리도 아님을 알면서도 멍청하게 또 커피를 마신다. 사실 커피 몇 잔 값이면 돈 주고도 살 수 있는 다이어리를 왜 17잔이나 마셔가며 돈 쓰고, 몸 써가며 다이어리를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쓸까?


매해 연말이 되면, 헛헛함이 차오른다. 한 것도 없이 한 살 나이만 더 먹는 것 같은 불안함. 이뤄놓은 성과도 없이 연차만 찬다는 걱정. 연초에 세워둔 계획 중 제대로 목적 달성한 게 없다는 두려움. 여러 감정이 회초리가 되어 나의 양심을 때린다. 이맘때쯤이면 자아 성찰과 반성의 날들을 보낸다. 이럴 때 별다방 다이어리는 내게 비교적 쉽게 초과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약간의 돈과 시간, 그리고 애정만 있다면 가능하다. 마음만 먹으면 두 달 안에 17개의 커피를 마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1년 내내 게으름을 부리다가도 연말이 닥치면 다이어리와 교환할 수 있는 스티커 모으기에 열중한다. 마치 벼락치기 숙제를 하듯. 


다이어리를 손에 넣으면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이거라도 이뤘다는 얄팍한 성취감에 취한다. 비교적 작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기 위로 중 하나다.

언제 가도 방금 바버샵 다녀온 듯 날렵하고 단정한 헤어스타일의 바리스타가 있는 사무실 근처의 개인 카페. 그를 꼭 닮은 깔끔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 그곳에도 당분간은 가지 못한다. 기운 달릴 때마다 마시던 지하철역 근처 모 프랜차이즈 카페의 대용량 꿀 아메리카노도 한동안은 안녕이다. 


어디를 가든 똑같이 찍어낸 듯한 인테리어와 음악, 그리고 적당한 커피가 있는 별다방에 발 도장을 찍어야 한다. 한정판 다이어리라는 이름의 ‘연말 전용 불안 해소제’를 구하기 위해 올해의 끄트머리에 또 별다방에 간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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