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생에게 해고를 고했다

조회수 2020. 10. 20.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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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르바이트생은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너와 함께 할 수 없어.

목구멍에서 한참을 맴돌던 말이 그제야 튀어나왔다. 함께 할 수 없다니. 무슨 오디션 프로그램의 대사도 아니고. 수십 번 곱씹었던 대사는 생각보다 식상하고 담담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도 담담했다. 되려 그녀는 나의 선택에 응원을 하며, 이제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첫 아르바이트생, 노밍에게 해고를 고했다.

“내게 일자리를 줄 수 없을까?”

노밍과 알게 된 것은 햇수로 따지면 2년 정도 된 듯하다. 그녀는 몽골에서 온 유학생이었는데, 처음 그녀를 알게 된 것은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부업으로 운영한 셰어하우스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우리 집의 세입자였고, 처음에는 그녀가 내게 월세를 냈었다.

그렇게 약 삼 개월 정도 살다가 그녀는 돌연 집을 나가겠다고 했는데, 이유는 심플했다. 월세를 지불하면서 내 집에서 지내기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던지,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주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 것이다.

그렇게 아쉽지만 미련 없는 이별을 하고,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반년 만이었다. 그녀가 반년 만에 한 첫 번째 질문은 꽤나 당황스러웠다.

내게 일자리를 줄 수 없을까?

그리고 그녀는 지난 반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형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했다고 한다. 6인실 도미토리 침대의 한 칸을 쓰는 조건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청소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악덕 업체였다. 일정 때문에 일을 빠지게 되면 그녀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겨우 6인실 방에서 단 한 칸을 제공하는 일자리치고, 부과되는 일도 너무 많았다. 그 외에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갖은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그녀는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움을 청할 누군가를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감사하게도(?) 나였던 것이다. 자기와 의사소통이 되면서, 왠지 돈도 많을 것 같고(그 셰어하우스가 월 50만 원짜리 월세라는 것은 세입자들이 몰랐다) 나이가 비슷해 종종 고향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사람. 그녀가 나에게 연락하게 된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정말 필요에 의해 나에게 연락을 했던 꼴이다. 하지만 그 갑작스러운 부탁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솔직하게 도움을 청한 그녀를 거절할 수 없기도 했고, 내가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기뻤던 것 같다. 문제는 내가 그녀에게 줄 만한 일자리도, 월급을 줄 만한 넉넉한 벌이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당차게 일자리를 약속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내 첫 번째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청소 일을 맡게 됐다. 한 달 동안 번 돈에서 월세를 제하고 그녀에게 월급을 주고 나니 남는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제대로 된’ 노동 조건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 나 역시도 지나친 업무에서 해방된다는 사실이 충분히 기뻤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는 아주 훌륭한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녀의 청소를 보고 나는 무릎을 탁 치며 말하곤 했다.

역시 경력직은 달라!

그녀는 내가 먼저 이야기하기도 전에 집 구석구석을 살펴봤고, 내가 놓치는 부분을 염려하며 먼저 제안했다. 덕분에 내가 그녀에게 주는 페이 이상으로 그녀는 나의 일과 걱정을 덜어 주었다. 


무엇이든 혼자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던 나는 그제야 ‘누군가에게 위임하는 것’ 혹은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것’의 감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카드 점을 봐주던 이상한 아르바이트생

그녀의 장점은 똑 부러지는 일 처리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 특유의 낙천성은 비범하다 못해 참으로 별났다. 내가 가끔 고민에 빠져 의미 없는 넋두리를 하면, 그녀는 나를 위해 점을 봐줬다.

그녀에게는 몇 종류의 운세 카드 팩이 있었다. 내가 우문을 던지면, 답변에 우선해서 그녀의 카드 자랑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얼마나 점 보는 것을 좋아하는지, 그녀 역시 100% 믿지는 않더라도 카드 점이 얼마나 위안을 주는지 등등.

노밍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즉석에서 카드 점을 쳐 이렇게 사진을 보내주곤 했다.

그렇게 그녀의 별난 점은 대체로, 개연성 없는 뜬금없는 카드로 끝나곤 했다. 길거리 사주카페 사장님들은 말발이라도 있지, 그녀와 내 서툰 영어로 주고받은 나의 운세는 어처구니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와의 이 신비로운(?) 대화가 끝날 때쯤이면 어느새 나는 나 스스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렸다. 그것이 때론 정답이건 아니건 말이다.

사업을 확장하는 순간에도, 휴업을 결정하는 순간에도, 그리고 정리를 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나를 위해 점을 봐주었다. 그녀의 점은 엉터리였지만, 나의 단호한 결정 뒤에는 점과 별개로 나를 응원해주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그녀는 감사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업무가 너무 지나치게 많은 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끔씩 5000원짜리 커피 기프티콘을 보냈다. 이 작은 선의에도 그녀는 연신 ‘감사합니다’를 내뱉었다. 어느 순간부터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쓰기 시작하더니, 대화의 끝에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촌스러운 이모티콘까지 덧붙였다. 뜬금없이 보름달이 뜬다거나, 첫눈이 올 때도 그녀는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니까 그녀는, 이 세상 너무 많은 것들에서 설레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그 설레고 기쁜 감정을 나에게 선물하듯 전해주는, 그런 고마운 사람이기도 했다.

노밍에게 나는 “BEST BOSS”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감사한 마음을 자주 표현하는 만큼, 나 역시 그녀에게 좋은 사장이자 좋은 친구가 되고자 최선을 다했다. 휴업을 했을 때도 내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녀에게만큼은 지낼 곳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그동안 나를 위해 일해준 보답이면서,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지금 우리가 헤어져도,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할 때 가장 먼저 스쳐 갔던 사람이 노밍이었다.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온 나의 혼란스러운 시기를 이겨내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 요소를 하나씩 제거해야만 했다. 코로나 이후 완전히 멈춰버린 게스트하우스는 내가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였다.

나는 손님이 뚝 끊긴 그곳에서 노밍을 무료로 재워주고 있었다. 간간히 그녀에게 집 관리를 부탁하면서,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영업을 재개하게 되면 함께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몇 주의 고민 끝에 게스트하우스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 이상 그녀와 함께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줄 다른 일자리가 없을까 수백 번을 고민했다. 하지만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이었다. 어설픈 걱정과 동지애로 나 외의 누군가를 책임지기엔, 내가 가진 짐이 지나치게 컸다.

그렇게 그녀에게 해고를 통보하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일을 못 해서도, 부족한 사람이어서도 아니었다. 나의 상황이, 나의 역량이 그녀와 함께하기에는 부족한 탓이었다.

알 수 없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이전에 나를 고용했던 무수한 사장님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나는 그들과 이별할 때 좋은 직원이었을까. 나는 노밍에게 좋은 사장님이었을까.

이제 너와 함께할 수 없어.

그렇게 해고를 고했다. 지금 나의 사정을, 내가 앞으로 하려는 것들을, 그리고 그녀에게 얼마나 고마워했는지를 계속 말했다. 마지막에는 미안하다는 말 대신, 굵고 짧게 “감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Thank you too.

나도 고마웠어.

그리고 내 긴 변명 끝에, 그녀는 본인도 감사했노라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나에게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악덕 업주로부터 해방시켜 줬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내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않았던 것, 일이 힘들 때에도 최대한 보상을 주려 노력했던 것, 그리고 그녀가 내 넋두리를 들어주었듯이 나 역시 그녀의 엉뚱한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그녀가 어떻게 지낼 것인지, 무엇을 꿈꾸는지 한참을 이야기했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서툰 영어로 수다를 떨었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 우리는 더 이상 사장님과 아르바이트생이 아니었다. 각자 꿈이 있고, 서로를 너무나 응원하는 좋은 친구이자 동료였다.

슬프거나 미안한 감정으로 가득 찰 것 같던 나의 첫 해고 통보는, 의외로 담담하고 따뜻했다. 언젠가 그녀에게 다시 연락해 함께 하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고용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녀만큼 나에게 도움이 되거나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내 새로운 인연도 갑작스럽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새로운 인연에 감사하며, 조금은 기대볼 수도 있겠지.

원문: 아직 어려서 그렇습니다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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