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는 선진국이 내뿜고 피해는 약소국이?

조회수 2020. 10. 16. 11: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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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자 중심 개발로 '에너지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나라 피지(Fiji)는 알고 보면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 최대 피해국 중 하나다. 그들이 지구에 내뿜는 탄소 배출량은 선진국에 비하면 극소량이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떠안는다.

​영농형태양광 시설이 들어설 피지의 오발라우섬.

2016년 피지에는 5등급 초대형 사이클론(태풍)이 몰아쳤고 건조 기후가 점차 심화해 농작물 재배가 더 어려워졌다. 홍수도 잦아졌다. 피지 정부는 대응책으로 2030년까지 화석 연료인 디젤발전기를 100%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사이클론으로 좌초된 배. 2016년 피지는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큰 사이클론 ‘윈스턴’이 강타해 6,0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산화탄소는 선진국이 내뿜고 그 피해는 약소국가가 떠안는 모순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소셜벤처 엔벨롭스(ENVELOPS)는 지난 19일 큰일을 해냈다. 엔벨롭스가 개발하고 기획재정부· KOICA (한국국제협력단)· KEITI(환경산업기술원) 등이 지원한 ‘피지4메가와트급 영농형태양광 사업’이 녹색기후기금(이하 GCF) 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것이다. 


이번 사례는 한국 정부가 민·관협력으로 공동 개발한 사업이 GCF 재원을 유치한 첫 사례이자 GCF 차원에서도 영농형태양광사업을 승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제26차 GCF 이사회는 코로나19로 화상회의로 진행됐다. GCF는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는 국제기구로 인천 송도에 사무국을 두었다.

국내 유일한 해외 신재생에너지 사업개발 전문 기업인 엔벨롭스의 공동창업자 윤성 대표와 한승연 이사· 조영재 이사를 만나 앞으로의 청사진을 물었다.


농사도 짓고 깨끗한 전기도 생산하고

영농형태양광이 들어설 피지 오발라우(OVALAU)섬은 인구 1만 명의 작은 섬입니다. 이곳의 항구도시 레부카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현재 그 안에는 디젤발전기가 24시간 돌며 소음과 매연을 내뿜는데 이번 사업으로 섬 발전량의 약 57%가 신재생에너지로 대체됩니다.

윤 성 엔벨롭스 대표
출처: 백선기
​엔벨롭스 공동창업자 3인. 맨 왼쪽부터 윤성 대표, 한승연 이사, 조영재 이사.

이번 사업은 GCF가 500만 달러(차관 및 융자)를 지원하고 KOICA (400만 달러=에너지저장장치 공여), 피지개발은행(100만 달러 융자) 그리고 민간투자 210만 달러 등 총 1210만 달러(약 144억 원)의 규모로 진행된다. 


주 개발사인 엔벨롭스측이 올해 말까지 금융 조달과 인·허가 과정을 매듭짓고 2021년 착공해 완공부터 기술교육에 이르기까지 약 4년간 진행된다.


​영농형태양광발전소는 태양광 구조물 아래 그늘막을 활용해 그 아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첨단 기술이다. 좁은 땅에 친환경 발전도 하고 작물 피해를 줄여 생산량을 늘림으로써 기후변화 저감과 적응이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 준다.

남태평양지역은 건조기후가 심화되고 태양열과 복사열에 따른 작물 피해가 증가합니다. 그래서 신선식품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죠.

하지만 태양광 구조물로 적절하게 그림자를 드리워주고 일사량을 조절해 주면 작물의 생산량이 증가 혹은 유지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피지는 군소도서국(SIDs)이라 식량 안보도 매우 취약한데 이를 타파하는 기술이 바로 영농형태양광입니다.
​영농형태양광이 들어선 프랑스의 한 포도농장. 토양의 건조를 막아 수자원의 효율성을 높였고 포도의 산도가 높아져 품질도 향상됐다.

수요자 중심 발전… 에너지 사각지대 해소

피지와 같은 군소 국가들은 민간 금융이나 대기업들의 투자를 받기 어렵다. 국가 신용도가 낮아 쉽게 융자를 얻을 수 없고 투자 매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ODA(공적개발원조)와 국제기구의 참여,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승연 이사는 “대기업이나 민간 금융은 사업성, 국가 안전성, 신용도만을 중시해 사업개발을 한다” 면서 “비록 국가적 차원에서 개발이 이뤄진다 해도 시골의 작은 도시들은 그 사업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적 논리가 아니라 주민들의 삶을 끌어올리는 사회적 가치와 환경적 가치를 중시해 에너지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것이 엔벨롭스의 지향점”이라고 강조했다.

엔벨롭스는 피지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현지 정부와 주민자치회 등을 통해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업무 효율을 높인다.

영농형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설 오발라우섬은 100% 전력이 보급되는 지역이지만 100% 디젤 화석 발전소에 의존한다. 발전소가 완공되면 향후 20년 동안 약 9만 톤의 이산화탄소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이산화탄소 9만 톤의 양은 디젤 경차 4,000대를 전기차로 바꾸거나 소나무 1,300만 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지인 레부카항에는 디젤발전소가 24시간 가동돼 소음으로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습니다.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해도 타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님비(NIMBY) 현상으로 피지 정부가 골머리를 앓았죠.

주민들은 매연과 미세먼지로 건강을 위협받고 디젤발전기의 경우 기름유출로 인한 식수 오염 위험이 상존합니다. 이 같은 환경유해적인 요소들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승연 이사
세계문화유산지 레부카항에 들어선 디젤발전소.

끝까지 책임진다

이번 사업의 특징은 발전소 건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역량 강화 지원 사업이 함께 진행된다는 점이다. 피지 국민들에게 신재생에너지 접근성을 높이고 발전소의 운영과 유지·보수 교육을 통해 현지 주민들의 역량을 강화한다.

발전소만 짓고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기후 금융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고 관련 정책과 법 제도 개선까지 도와줍니다.

ODA 성공의 열쇠는 공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관리인데 이번 사업은 실제 그 나라에서 지속 가능하도록 시스템까지 전수해 주는 데 방점을 두었어요.

조영재 이사
​선진국들이 투발루(Tuvalu)에 공여한 태양광 연계 해수담수화 설비는 기술 교육이 뒤따르지 않아 실패한 ODA의 대표적인 사례다. 완공 6개월 만에 사이클론이 덮쳐 태양광 패널이 날아갔지만 투발루 정부는 운영 방법을 몰라 그냥 버려진 상태.

에너지 개발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엔벨롭스는 신규 사업으로 신재생에너지개발사업 플랫폼을 준비 중이다. 기존의 신재생에너지 사업 개발이 비공식적이고 브로커들이 판치는 사업이란 인식을 불식시키고 투명하고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출처: 백선기
​엔벨롭스는 신재생에너지사업 경력 평균 10년의 개발자들로 구성돼 있다. 최근 영농형태양광발전 분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Fraunhofer 연구소 출신 연구원과 환경/사회/젠더영향분석 전문가 등 인재를 추가 영입해 전문성을 높였다.
우리나라에서 금융을 조달할 때 가장 나쁜 점이 테이블 밑에서 중요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에요.

검은돈을 주고받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공식적인 회의에서는 그야말로 형식적인 이야기만 나누고 협상과 같은 중요하고도 실제적인 일들은 인맥이나 친분 혹은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위에서 찍어 누른다거나 혹은 정책의 방향에 따라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기도 하죠.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은 일련의 과정들을 모두 수면 위로 끌어올려 공개함으로써 여기에 모여진 정보만으로도 투자의사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윤성 대표는 “앞으로 5년 안에 남태평양의 군소 국가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같은 에너지 취약 국가에 총 50메가와트의 영농형태양광발전소 건립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다.

​태양광 발전 설비나 배터리 저장기술은 한국이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했습니다. 이번 사업에도 한국의 중소기업인 ‘해줌’이 태양광발전 예측기술 면에서 큰 도움을 줬습니다.

요즘 그린 뉴딜이 화두인데 우리의 우수한 기술이 해외로 진출해 글로벌 그린 뉴딜에 일조하면 좋지 않을까요?

엔벨롭스의 비전은 ‘빛이 오면 삶이 온다(Bring Light, Bring Life)’이다. 전기 보급이 안 된 지역에 전기를 보급해 줌으로써 그들의 삶을 증진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늘 오지로 갑니다. 어차피 굵직한 사업이야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사람들이 선뜻 가기 싫어하는 곳, 하지만 정작 피해를 많이 봐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이 우리의 고객입니다.

그런 곳에서 큰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멋진 일 아닌가요?

​글. 백선기 이로운넷 책임에디터

사진제공. 엔벨롭스

원문: 이로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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