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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취향과 존엄, 영화 〈소공녀〉

가난한 이에게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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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공녀〉의 주인공은 둘이다. 바로 미소와 서울.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서울에서 미소는 자신의 취향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과감히 집을 포기한다. 대신 대학 때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의 집에서 하룻밤씩 자며 집을 구하기 위한 보증금을 모아보자고 다짐한다.


그렇게 오랜만에 방문한 친구들의 집. 그런데 이 친구들, 집은 있지만 취향은 없다? 살아남기 위해 집과 취향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공간 서울에서 과연 미소는 취향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취향을 잃지 않되 집을 갖고 싶은 미소의 바람은 사치인 걸까?


취향 그리고 집

많은 영화는 빈곤 문제를 강조하기 위해 그들이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노동함에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강조하곤 한다.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수남이 대표적이다. 수남은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목표로 신문배달, 입주청소, 전단지 돌리기, 고깃집 알바 등 n잡을 하며 고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내 집 마련은커녕 빚만 쌓여간다. 


그러나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수남에 비하면 ‘게으르다’. 미소는 하루에 딱 5시간만 노동한다. 하루 5시간 노동만이 자신의 삶을 최소한으로 지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것이 자동화된 현대 사회임에도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하며 보낸다. 아마 우리는 인생의 ⅔를 남의 돈을 버는 데 쓸지 모른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주 7일 중 5일 동안 노동하며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의 노동을 한다(대부분은 야근 등의 노동을 하니 이것도 일부 노동자에게만 해당한다). 


말이 하루 8시간이지, 노동을 위한 출근 준비 1시간+서울 출퇴근 왕복 2시간(경기도로 갈수록 3–4시간으로 늘어난다)+회사에서의 점심 1시간을 합치면 현대인이 하루 중 남의 돈을 버는 시간은 총 12시간이다.


하루 평균 8시간의 수면을 취한다고 가정했을 때 현대인이 가질 수 있는 자유 시간은 4시간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4시간마저도 12시간의 고된 노동에 지쳐 취미활동이나 운동 등,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시간을 집중하여 보낼 수 없으리라. 


그렇기에 미소에게 있어 하루 5시간 노동은 배부른 신념이 아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하루 일당 4만 5,000원에서 식비, 세금, 약값, 월세를 제하고도 미소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위스키와 담배다. 누군가는 비난할지도 모른다. 잠잘 집도 없는데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할 수 없다고? 영화 내에서 친구 정미조차 집은 포기해도 술담배를 포기할 수 없는 미소를 비난한다.


하지만 가난한 이에게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서울에 부모 집을 두고 고시원에서 오들오들 떨지언정 독립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월 80만 원의 생활비로 서울에서 살아가면서 매달 10만 원씩 나가는 운동비용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가난한 이의 사치여서가 아니라 고유한 취향이자 ‘나다움’으로서의 인간됨이 깃들어진 존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짜 문제는 가난한 이가 가난함에도 사치를 부리는 것이 아닌, 가난함에도 포기할 수 없는 취향을 ‘사치’로 바라보는 시각 그 자체다.


가난한 이의 취향을 사치로 바라보는 사회에서, 가난은 권리의 문제가 아닌 ‘게으름과 사치의 형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가난해도 취향을 포기할 수 없는 미소가 소중하며, 빈곤의 문제를 증명하기 위해 빈곤 당사자가 겪는 어려움을 강조하지 않는 영화 〈소공녀〉의 존재가 귀하다.


영화 〈소공녀〉는 미소의 불쌍함을 호소하지 않으면서도 서울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현실을 영리하게 증명해냈다.


집을 얻고 취향을 잃은 친구들

앞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소와 서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 집과 취향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소는 과감히 집을 포기한다. 그리고 옛 친구들의 집에 찾아가 하룻밤씩 묵으며 보증금을 모으고자 하지만, 친구들은 집은 있지만 취향, 즉 ‘나다움’을 잃은 것만 같다.

대기업의 직장인으로 일하는 문영은 오랜만에 만난 미소와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포도당 링겔을 맞아야 할 정도로 시간이 없고 피로하다. 


친구들 중 가장 반갑게 미소를 반겨준 현정의 삶 또한 녹록지 않다. 결혼하고 전업주부가 된 현정은 좋아하던 건반도 잊은 채 시부모를 모시며 서툰 가사노동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대용은 넓은 신축 아파트에 혼자 살지만, 월급의 절반을 대출금으로 상환해야 하는 하우스푸어 처지이다. 이때 대용의 독백은 빚내서 집을 샀을지라도 남의 집에 사는 듯한 현대인의 애환이 담겨 있다.

누나 여기 못 벗어나. 집이 아니고 감옥이야 감옥. 여기 한 달 이자가 얼만 줄 알아? 원금 조금 포함해서 100만 원이다. 근데 내 월급이 190이거든. 근데 100만 원 그거 얼마나 내야 되는 줄 알아?

20년. 20년! 매달 100만 원씩 이십 년을 내면 이 집이 내 거가 된다. 근데 그때 되면 집이 되게 낡겠지?

록이는 나이가 많지만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하지 않고 함께 산다. 결혼하지 않았기에 굳이 독립할 이유도 없거니와 주거비가 비싼 서울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게 차라리 낫기 때문이다. 나이 든 성인이 부모의 집을 떠나지 않는 한국만의 독특한 현실이 담긴 풍경이다. 


하지만 록이의 부모가 심상치 않다. 혼기가 꽉 찬 아들이 집에 데려온 여성에, 그것도 자고 간다니. 이들은 미소를 예비 신부로 보고 설레어하며 심지어 다음 날 아침에 미소가 나갈 수 없도록 가두기까지 한다.


결국 록이의 집을 탈출하여 향한 정미의 집. 부유한 남성과 결혼한 정미는 밴드부 멤버들 중 가장 좋은 집에 살지만, 가장 불편한 삶을 산다. 가부장적인 남편의 눈치를 보며 살기 때문이다. 결국 미소는 정미의 집에서마저도 나오고 만다.


미소는 사유재산의 개념이 가장 불분명한 사람이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그저 반갑고 좋았던” 미소는 친구들도 그렇겠지라는 마음으로 찾아가지만, 친구들에게 있어 미소는 마냥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하지만 다단계에 빠졌을 때 앞뒤 안 가리고 돈을 빌려줬던 미소, 술 먹고 찾아가면 “혼자 사는 집 재워주는 게 뭐 어렵냐”며 흔쾌히 재워주던 미소를 친구들은 거부할 수 없다. 


그렇게 하룻밤의 방을 빌려준 친구들에게 미소는 계란 한 판을 들고 가 무언가를 주고 나온다. 요리를 못하는 친구에겐 밑반찬을, 술에 기대는 것 이외엔 슬픈 감정을 해소할 방법을 모르는 대용에겐 계란국을 해준다.

정미와 현정은 결혼을 통해 집을 얻었지만, 문영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이지만, 그리고 대용은 대출을 통해 집을 얻었지만, 이들의 삶은 가부장제와 임금노동, 은행 빚에 저당 잡혀 있다. 그래서일까? 친구들은 분명 미소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는데 무언가 결핍된 눈빛을 지녔다. 친구들의 집에서 하룻밤씩 묵고 나와 다시 길을 떠나는 미소의 눈이 더 풍요로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


하지만 풍요로운 눈빛을 지닌 미소라도 집 없이 겨울 길을 걷는 미소의 뒷모습은 쓸쓸하기만 하다. 그런 미소와 함께 걸으며 세상에 묻고 싶다.

왜 우리는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인 취향과 집 둘 중 하나를 양자택일해야 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것일까? 왜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엄을 희생해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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