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의 수준을 3단계로 나눠보았다
자기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더라?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날카롭다. 아이고 또 내 말만 실컷 했구나. 이렇게까지 대놓고 말할 정도면 단단히 화가 난 게 틀림없다. 때마침 버스가 멈춘다. 내려야 하는 곳이다. 다행이다.
잠깐만, 지금 내려야 해서.
웅? 나는 끊을 생각 없었는데? 이제 자기 얘기 들을 차례야.
가끔씩 그런 사람이 있다. 100명 중 1명꼴로 보이는데, 외모가 출중하지도 않고 옷도 평범하게 입는데 매력이 있다. 남녀관계를 떠나서 사람 자체가 괜찮은 느낌?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거다.
옆에서 듣던 친구도 맞장구를 친다. ‘맞아~ 그리고 꼭 그런 사람은 대화가 잘 통해.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준다는 느낌? 나는 어색한 분위기에서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그런 사람이 있으면 말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경청만 잘해도 매력적인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이상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게 뭐가 어렵길래? 재밌는 건 스스로 경청을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거다. 심지어 나는 경청을 잘한다는 것의 기준도 잘 모르겠다. (반성)
아마도 우리가 경청에 대해 그만큼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오늘은 ‘다른 이의 말을 듣는’ 경청을 3가지 단계로 정리해 보았다. 참고로 내 주위에는 1단계가 많으며 2단계부터는 극히 줄어든다.
1단계: 너의 말은 듣지만 끼어들 예정이다
나 “며칠 전 비 오는 날 맥주를 사러 편의점을 갔다? 근데 밖에 나가서 한 2–3분 걸었는데 슬리퍼 끈이 끊어진 거야… 당황해서 어떻게 하지 막 이러고 있…”
친구 A “어! 나도 그런 적 있어. 5년 전에 학교 갈 때 갑자기 슬리퍼가 끊어진 거야. 와 그때 개 당황했다니까ㅋㅋ”
나 “아 진짜? ㅋㅋ…”
아니! 어째서! 5년 전 끊어진 슬리퍼를 왜 여기서 이야기하는 걸까. 나는 내가 느꼈던 기분과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왜 쟤는 저렇게 지 이야기를 못 해서 안달 난 걸까? 아! 피곤해! 나도 말할 줄 아는데, 왜 얘는 말을 이렇게 잘 끊는 걸까.
철봉을 잡던 손을 툭 놓으면 바닥에 떨어진다. 아프고 기분이 안 좋다. 대화도 비슷하다. 말을 하는데 누군가 툭 자르면 어두운 바닥에 떨어진다. 그게 여러 번 반복되면 그때부터는 입을 아예 닫아버리게 된다. 어차피 똑같을 거니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주제를 가지고 자신의 에피소드로 연결하는 걸 좋은 경청이라고 생각한다.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허나, 상대방 경험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과 내 경험을 얘기하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건 공감, 위로, 이해 같은 표현들이야. 너의 이야기는 지금 순서가 아니라고.
2단계: 오롯이 말하는 이에게 초점을 맞춘다
나 “며칠 전 비 오는 날 맥주를 사러 편의점을 갔다? 근데 밖에 나가서 한 2–3분 걸었는데 슬리퍼 끈이 끊어진 거야… 당황해서 어떻게 하지 막 이러고 있는데 다행히 거리에 사람이 없더라? 그냥 맨발로 집에 뛰어갔음.”
친구 B “맨발로 집에 갔다고? 발은 안 다쳤어? 대박 ㅋㅋ 그래도 다행이다. 더 멀었으면 어떡해.”
나 “어 맞아! 그때 발에 피 나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일 없었어! ㅎㅎ”
1단계였던 친구 A와 달리, 친구 B는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내 경험에 공감했다. 그러자 나는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준 이 친구, 괜히 더 고맙고 정이 간다. 나도 이 친구처럼 공감을 잘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3단계: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
나 “제 올해 하반기 목표는 정해진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는 거예요. 월급 받는 값은 하고 싶거든요ㅎㅎ”
친구 C “너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지금 2달째 꾸준히 하잖아. 너랑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나도 봤지만 너처럼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사람은 없더라. 하는 일이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스스로 정한 걸 지키고 유지하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마치며
지금 내가 몇 단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달라질 수 있을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나의 경청은 1단계지만 2단계가 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마지막 3단계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해봐야겠어!
- 영감 주신 분: 알편심 10회 〈경청: 마음으로 들어주기〉
-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모임 ‘쓰담’의 멤버로 함께 합니다.
원문: 용진욱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