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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소셜 네트워크가 가진 어둠의 심리학: 조너선 하이트

SNS, '분노 생산 기계'로 재탄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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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Atlantic에 기고된 「The Dark Psychology of Social Networks」를 번역한 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신이 모든 물리 법칙과 우주의 물리 상수를 포함한 세상을 엿새 만에 만들었다는 이야기 말이지요.


21세기 초 어느 날, 신은 그저 재미로 중력 상수를 2배로 높였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다녀야 할 겁니다. 건물들은 무너지고 새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겠지요. 지구와 태양은 가까워지고 지구의 온도는 훨씬 높아질 겁니다.


이런 사고실험을 물리적 세계가 아닌 사회적, 정치적 세계로 가져와 봅시다. 미국의 헌법에는 많은 노력이 들어가 있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앞서 존재했던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불안정했으며, 지속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었고,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저항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절차를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임스 매디슨은 「연방주의자 논문(The Federalist Papers) 제10호」에서 ‘분노한 군중’으로 이루어진, 당파성과 집단이기주의로 가득한 ‘파벌(faction)’의 문제에 대해 썼습니다. 그는 미국이 충분히 큰 나라인 덕분에, 누군가가 자신의 분노를 그렇게 멀리 전달하기 힘들 것이며 따라서 파벌주의가 가진 파괴적 특성으로부터 미국이 어느 정도 보호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메디슨은 이렇게 예상했습니다.

미국의 법률학자이자 제4대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매디슨 주니어(1751~1836). 헌법의 아버지로 불린다.

당파적인 정치인이 자기 주 안에서는 불같은 인기를 끌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주에서도 그러한 인기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미국 헌법에는 이를 위해 반성과 숙고를 거듭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각자가 사태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디슨의 시도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21세기 초의 어느 날(정확히는 10년 정도의 시간에 걸쳐) 사회적, 정치적 세계를 흔드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면 미국의 민주주의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기술이 ‘상호 적개심’을 증가시키고 흥분이 전달되는 속도를 높이는 기술이라면 어떨까요? 건물이 무너지고, 새가 떨어지고, 지구가 태양에 더 가까워지는 그런 수준의 정치적 혼란이 오지 않을까요?


지금 미국이 바로 그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제임스 매디슨의 악몽이 되어버린 2020년의 미국…

소셜미디어는 무엇을 바꾸었나

페이스북의 초기 미션은 ‘더 열린 세상, 더 연결된 세상’이었고, 소셜미디어가 탄생한 초창기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세상을 연결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에 더 이로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가 성장하면서 그런 낙관주의는 사라졌고, 다양한 악영향과 부작용이 차츰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어 서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온라인 정치 토론은 실제 세상에서의 토론보다 상대를 더 자극하며 더 쉽게 비이성적인 형태로 바뀝니다. 당파성이 강한 이들은 끼리끼리 어울리며 점점 더 극단적인 세계관을 만들어갑니다. 가짜 정보가 난무하고, 폭력성을 띤 이데올로기가 지지자들을 꼬드기고 있습니다.


문제는 연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셜미디어로 인해 너무 많은 의사소통이 공개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의사소통은 두 사람 사이의 작용으로만 생각합니다.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친밀감을 쌓고, 상대의 농담에는 웃음으로 답하며, 두 사람만의 대화를 만들어가는 거죠. 그러나 남들이 이를 모두 지켜보는 상황에서, 특히 친구, 지인, 적, 타인이 이 대화를 자기들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한 마디씩 보탠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사회심리학자 마크 리어리는 매 순간 자신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에 관한 내면의 수치를 일컫는 소시오미터(sociometer)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리어리는 인간이 자존감보다도 타인이 자신을 바람직한 짝이나 동업자로 생각하는지를 진정 중요하게 여기도록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좋아요, 친구, 팔로워, 리트윗을 표시해주는 소셜미디어는 이 소시오미터를 마음속에서 꺼내 모두가 볼 수 있게 만들어놓은 것과 같습니다.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

만약 사적인 대화에서 끊임없이 분노를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면, 친구들은 그를 피곤한 사람이라 여길 겁니다. 하지만 구경꾼이 있을 때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분노는 그 사람의 사화적 위치를 상승시킵니다.


2017년 NYU의 윌리엄 J. 브래디와 그의 동료들이 50만 개의 트윗을 분석한 결과 도덕적 또는 감정적 단어를 사용한 트윗이 평균적으로 20% 더 많이 펴졌음을 보였습니다. 퓨리서치 센터의 2017년 조사 결과, 페이스북에서 ‘분노 섞인 불만’을 포함한 포스팅은 다른 포스팅보다 좋아요와 공유를 포함한 반응을 두 배 가까이 얻었습니다.


철학자 저스틴 토시와 브랜든 웜케는 공개적인 토론장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 도덕적인 주장을 사용하는 이들을 ‘도덕적 관종(moral grandstanding)’이라 명했습니다. 회의적인 청중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발표자들이 앞 사람보다 점점 더 강한 발언을 하게 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도덕적 관종들은 “상대에게 도덕적 비난을 퍼붓고, 조리돌림(public shaming)을 하며,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고,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명백하게 틀렸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경꾼의 마음을 얻으려는 이 경쟁의 희생자는 진실과 미묘한 의견의 차이입니다. 도덕적 관종은 청중의 분노를 일으키기 위해 상대가 말하는 모든 말을, 때로는 같은 편의 말까지도 비판합니다. 맥락은 사라지고, 발언의 의도도 무시됩니다.

인간은 험담을 하고, 자신을 꾸미며, 타인을 조종하고 배척하도록 진화했습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검투사들의 시대가 우리를 잔인하고 천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기에 아주 쉽게 빠져듭니다.


예일대학교의 심리학자 몰리 크라켓은 분노한 군중의 일원이 되는 것을 막는 정상적인 힘, 곧 냉정함을 되찾고 자신을 반성하는 능력과 조롱거리가 된 이에게 공감을 느끼는 능력이 사라지는 상황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 상황이란 바로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없을 때, 그리고 하루에 몇 번씩 그 분노의 글에 공개적으로 ‘좋아요’를 눌러 자신의 편을 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입니다.


이는 바로 소셜미디어가 우리 대부분을, 매디슨이 끔찍이 피하고자 했던 분노한 정치적 시민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누가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글과 이미지를 만드는지를 두고 경쟁하면서, 그 작품이 미국 전역에 순식간에 배포되는 것과 자신들의 공개된 소시오미터를 통해 그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분노 생산 기계의 탄생

초기 소셜미디어는 오늘날의 모습과 전혀 달랐습니다. 2002~2004년에 등장한 프렌드스터, 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은 사람들을 그들의 친구들과 연결해주는 도구였습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꾸며서 보이게 했을 뿐, 분노를 전염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조금씩 찾아왔습니다. 사용자 경험을 바꾸는 과정에서 뉴스와 분노가 미국 사회 전역에 더 쉽게 퍼져가도록 바뀌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개선하기 위해, 곧 이들이 민주주의에 끼치는 해악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2006년 등장한 트위터는 140자로 이루어진 트윗이 끝없이 이어지는 타임라인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콘텐츠가 끝이 없이 제공되는 타임라인은 정보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이었고, 이는 마치 소방 호스로 물을 마시는 것 같은 압도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해 말, 페이스북도 비슷한 시스템을 뉴스피드라는 이름으로 도입했습니다. 2009년 그들은 ‘좋아요’ 버튼을 도입하며 처음으로 콘텐츠의 인기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또한 사람들이 앞서 누른 ‘좋아요’를 기반으로 그들에게 어떤 포스팅을 보여줄지를 결정하는 알고리듬이라는 새로운 혁신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개인에게 맞는 연속된 포스팅을 보여주도록 소방 호스를 잘 정리해놓은 셈입니다.


문제는 뉴스피드의 알고리듬이 글의 신뢰도와 무관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만든 어떤 포스팅이든,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기만 한다면, 모든 이의 뉴스피드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개인이 블로그에 쓴 글이 뉴욕타임스의 기사와 똑같은 디자인으로 제시되는 환경에서, ‘가짜 뉴스’가 인기를 끌게 된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트위터 또한 2009년 ‘리트윗’ 버튼이라는 커다란 변화를 도입했습니다. 이전에는 사용자들이 트윗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이를 직접 복사해 자신의 트윗에 추가해야 했고, 적어도 몇 초 동안의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리트윗 버튼이 등장한 덕분에 이제 콘텐츠는 아무런 고민과 망설임 없이 끝없이 퍼져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한 번의 클릭만으로 누군가의 트윗을 내 모든 팔로워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콘텐츠의 신뢰도에 대한 책임 또한 지게 되었습니다. 2012년, 페이스북은 리트윗과 똑같은 기능을 하는 ‘공유’ 버튼을 만들었습니다. 타겟은 점점 증가하던 고객군인 스마트폰 사용자였습니다.


크리스 베데렐은 트위터에서 리트윗 버튼을 만든 기술자 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2019년 초 버즈피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후회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베데렐은 리트윗 기능을 사용한 첫 번째 트위터 이용자들을 보고는 “우리는 어쩌면 네 살 난 아이에게 장전된 총을 건네준 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업워시(Upworthy)는 2012년 등장한 언론이다. ‘이 영상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얼음으로 가득 찬 인간입니다’ ‘당신은 이 당돌한 8살 아이의 말을 들어야 할 겁니다’ 등의 제목으로 시선을 끌었고, 수많은 언론이 이들의 제목을 따라하게 된다.

2012~2013년 최후의 일격이 가해졌습니다. 업워시(Upworthy)와 몇몇 언론사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 수 있는 제목을 찾기 위한 방법을 테스트하며 이런 흐름에 편승했습니다. 이렇게 “당신이 믿지 못할…” 시리즈가 나타났고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진을 이용해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클릭을 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기술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런 기술의 목적이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업워시를 만든 이들은 사람들을 더 성숙하게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사 제목 바꾸기,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 포장하기 등의 기술이 기존 미디어와 뉴미디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자 분노를 담은 기사 제목과 도덕적 충격을 주는 기사 제목들이 점차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루크 오닐은 에스콰이어에 쓴 글에서 이러한 변화들이 주류미디어에 충격을 주었고, 2013년 그들로 하여금 ‘올해 우리는 인터넷을 점령한다’고 선언하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다음 해, 러시아의 인터넷 조사 에이전시는 러시아의 목적을 달성하고 미국인의 분열을 유도하기 위해 가짜 계정들을 가지고 모든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이 새로운 분노 기계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인터넷이 오늘날 정치적 분노의 유일한 원인은 아닙니다. 매디슨의 시대에도 언론은 분열을 조장했으며, 정치학자들은 오늘날 분노 문화의 일부가 1980년대와 90년대의 케이블 TV와 라디오 토크쇼에 그 뿌리를 둔다고 말합니다. 


다양한 힘들이 미국을 거대한 양극화의 세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3년 이후 소셜미디어가 이미 불이 난 집에 매우 강력한 부채질을 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지혜의 쇠퇴

앞으로 소셜미디어가 자신들이 가진 분노 조장 효과를 개선한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안정성에 미치는 악영향은 여전히 남습니다. 그중 한 가지는 지금 당장의 사상과 다툼이 과거의 사상과 교훈을 쉽게 압도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들의 눈과 귀로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흐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생각과 이야기, 노래, 이미지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정보들을 세 가지로 나눠 봅시다. 그리고 그 양을 측정해 봅시다.

  • 새로운 정보들(지난 1개월 사이에 만들어진)
  • 한 세대 전(10~50년 전, 곧 아이들의 부모와 조부모 시대에 만들어진)
  • 고전(100년 이상 지난)

그 비율은 분명 18세기에서 20세기로 오면서,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미국의 가정에 등장하면서 크게 바뀌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 초, 그 비율은 훨씬 더 급하게, 그리고 더 극적으로 바뀌었을 겁니다.

대부분의 미국인이 소셜미디어를 사용하게 된 2012년, 이 초연결 세대는 고양이 비디오나 연예인 이야기 같은 가십부터 시시각각 바뀌는 분노 섞인 정치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보를 소비하고 있으며, 때문에 과거의 정보가 소비되는 시간은 더욱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요?

1790년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인이던 에드먼드 버크는 이렇게 썼습니다.

인간을 혼자만의 판단으로 살게 해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의 지성은 너무나 작기 때문에 국가와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소셜미디어는 버크의 두려움이 타당했는지를 두고 전 세계적으로 실험하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그날 발생한 스캔들, 우스운 일, 다툼에 매일매일 관심을 쏟게 만들지만, 가장 큰 영향은 새로운 소셜미디어에 접하기 전 과거의 사상과 정보를 습득할 기회가 없었던 젊은 세대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평균적으로 우리보다 더 현명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물려받은 생각들은 역사를 거치면서 정제된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것들은 대부분 배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것들입니다. 이 사실이 그 아이디어들이 항상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난달에 만들어진 콘텐츠보다는 더 가치 있을 것임을 말해줍니다.


설사 새로운 세대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디지털화된 과거의 기록들을 접하게 될 수 있다 하더라도, Z세대(1995년 이후 출생자들)는 이런 과거의 지혜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며, 때문에 당장 자신의 사회적 관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향상시켜줄,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잘못된 곳으로 이끌 새로운 사상에 더 끌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몇몇 우익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20세기 최악의 사상을 이용해 의미와 소속감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을 유혹함으로써 나치즘에 두 번째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좌익에 경도된 젊은이들은 사회주의를 포용할 뿐 아니라, 몇몇 경우에는 20세기에 일어난 일을 전혀 모른다는 듯한 열정으로 공산주의를 지지합니다. 또 젊은이들은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되돌릴 수 있을까?

소셜미디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속도와 힘으로 수백만 미국인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매디슨과 다른 건국의 아버지들이 설계한 자치 시스템의 가정들을 무효로 만들 것인가입니다.


18세기의 미국인과, 아니 20세기 후반의 미국인과 비교해도 오늘날의 시민들은 분노를 전염시키도록 만든 플랫폼 위에서, 타인에게 자신을 공개하고 도덕적 관종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서로 더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즉각적인 다툼거리와 검증되지 않은 사상에 관심을 쏟을 뿐 사회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던 전통적 지식 및 가치와 단절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점이 지금 이 시점에서 많은 미국인과 다른 많은 나라의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커다란 혼란을 경험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셜미디어는 그 자체로 악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숨겨져 있던 해악을 밝히고, 또 무력했던 집단에게 목소리를 돌려준다면 오히려 더 긍정적인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모든 새로운 의사소통 기술은 건설적인 기술이 될 가능성과 파괴적인 기술이 될 가능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으며, 차츰 더 나은 지점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과 법률가들, 자선 재단과 업계의 내부자들이 지금 함께 그 지점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개혁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1) 공개된 행위의 빈도와 강도를 낮추어야 합니다.


소셜미디어가 진정한 교제보다 도덕적 관종에게 더 큰 유인을 준다면, 우리는 그런 유인을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몇몇 플랫폼들은 ‘비수치화(demetrication)’라는 이름으로 좋아요와 공유의 수를 보이지 않게 만들고, 콘텐츠를 그 자체로 평가할 수 있게 만들며, 사용자들이 끝없는 인기 경쟁에 휘둘리지 않게 하는 방식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2) 확인되지 않은 계정이 올린 내용이 퍼지는 범위를 제한해야 합니다.


누구나 수백 개의 가짜 계정을 만들어 이들을 이용해 수백만 명을 조종할 수 있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트롤, 외국 계정, 공작원 등의 부정한 참여자들이 이익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주요 소셜미디어가 계정을 만들기 전에 기본적인 신원을 확인한다면, 또는 적어도 계정의 종류에 따라 퍼져나갈 수 있는 한계를 설정한다면 소셜미디어의 해악은 그 즉시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정부가 반대 의견을 처벌하는 국가에 사는 이들의 경우 그 사용자 정보를 보호한 상태로 글 자체는 익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 확인을 독립적인 비영리 기구에 맡기는 방식이 가능합니다.)


3) 저질 정보의 전염성을 낮춰야 합니다.


소셜미디어에 참여하기 쉬워질수록 소셜미디어의 해악은 커집니다. 참여를 조금 어렵게 만들때 콘텐츠의 질은 더 높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댓글을 달때, AI가 그 내용을 파악해 앞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내용과 비슷할 경우 “정말 이 내용을 올릴 건가요?”라고 묻게 할 수 있습니다.


이 한 단계를 추가했을 때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은 악성 댓글을 달기 전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추천 알고리듬을 바탕으로 전파되는 정보의 질도 전문가 그룹이 알고리듬을 검사하게 해 높일 수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의 “정말 이 내용을 올리실 건가요?(Are you sure you want to post this?”라는 질문을 추가하여, 댓글을 달기 전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왔다.

마무리하며

많은 미국인들은 어쩌면 이 시대의 혼란이 지금 백악관의 주인 때문이며, 그가 백악관을 떠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분석이 맞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회적 생활을 지배하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이미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효과는 2014년부터 분명하게 나타났고, 그 결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민주주의의 성공을 바란다면,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커져가는 이 시대에 다시금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을 불러일으키기 원한다면, 우리는 오늘날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성공을 방해하는 그 조건들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소셜미디어를 개선하기 위해 단호한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 1/2

표지 이미지 출처: The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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