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인정하고 품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조회수 2020. 6. 24. 17: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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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다를 뿐 '실수'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된다.

실수가 언제나 존재하는 곳

직장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사람이 모인 곳이니 당연히 ‘Human error’가 존재한다. 크고 작은 ‘실수’들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신입사원부터 임원까지. 그 빈도와 크기가 다를 뿐 ‘실수’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된다. 물론 신입사원이나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의 실수가 더 잦다. 익숙하지 않으니 그렇고, 게다가 일도 이것저것 많이 주어진다. 실수는 다반사고, 하루하루 잔소리를 들어가며 일을 배운다. 자존감은 사라지고, 점점 더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다고 선배나 상사가 실수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익숙함과 노련함으로 무장을 해보지만 ‘실수’는 여전히 어디선가 터져 나온다. 대부분 이러한 사람들은 ‘실수’ 그 자체에 두려움을 가졌다기보다는, 그 ‘실수’를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받는 시선을 더 두려워한다. 자칫 프로페셔널한 이미지에 흠집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급과 직책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단 한 번의 실수가 ‘치명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책임에 대한 범위가 넓어지고 그 무게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월급을 더 많이 받긴 하지만. 그렇게 직장은 ‘실수’들이 모인 곳이다.



‘실수’를 대하는 사람들의 유형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면을 가졌다. ‘생존’을 위해서다. 원시 시대에 ‘육체’를 보호하기 위한 그 생존 본능은, 현대사회 특히 직장 생활에 접어들어서는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보호하는 데 주로 작동한다. 누군가 흉기를 들고 위협하지 않지만, 그보다 더 큰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직장인이다.


그것은 곧 먹고사니즘과 연계된 월급, 승진과 관련되어 있다. 직장인에게 있어 ‘월급’과 ‘승진’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그 둘을 빼면 먹고살기 힘들어지니, 이는 곳 ‘생존’의 문제다. 어찌 심각하지 아니할 수가 있을까. 그러니 ‘실수’를 대하는 각자 다른 태도는 ‘생존법’과 관련되어 있다. 그 유형도 가지가지다.

출처: Tekna

1. 자신이 ‘실수’했는지 모르는 사람


보통 아마추어의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일에 깊은 열정이 없고, 책임감도 없다. ‘실수’는 원래 자기도 모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말하는 자신이 ‘실수’했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성찰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즉 어떤 일을 하고 나서 그 이후의 맥락을 살피지 않는다든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상관없다는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한 일이 어떻게 끝맺는지 조금이라도 신경 쓴다. 그리고 일이 마무리되었을 때 비로소 시원한 한숨을 쉰다. 자신이 ‘실수’를 했을지 안 했을지, 내가 마친 일이 잘 마무리된 건지 아닌지에 대한 관심 없이 그저 주어진 일을 억지로 한 경우 이와 같은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자기 일에 큰 열정이 없던 한 인턴 친구는 내가 지시한 자료를 송부했다. 파일을 열어보니 여기저기 숫자가 틀려 있었다. 누가 봐도 성의도 없고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 친구에게 가르쳐줄 요량으로 불러 스스로 그 자료에 관해 설명하게 했다.


놀랍게도 그 친구는 자신이 만들고 정리한 파일을 잘 설명하지 못했다. 거기에 왜 그 숫자가 들어갔는지, 왜 그 자료를 넣었는지, 심지어 자신이 저장하고 보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듯했다. 왜 그 일을 요청했는지 전체 맥락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하라는 대로 억지로 일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2. ‘실수’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많은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럽다. 자신의 ‘실수’를 받아들이는 데는 스스로에게도 많은 결단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앞서 사람은 ‘방어적 본능’을 가졌다.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우선 살고 봐야 한다.


국정농단을 일으킨 주범들도 우선은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고 본다. 객관적으로 모든 것이 까발려져도, 지금껏 부정하는 것은 살겠다는 발버둥이다. 그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하지만, 우리가 그 위치에 있다고 가정하면 우리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

물론 잘못에 대한 본능적 부정을 말하는 것이지, 국정농단 자체를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제는 자신이 ‘실수’한 것을 알고 난 다음이다. 그것을 알고 나서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이라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쳐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면 많은 것들이 꼬인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갖가지 감정싸움과 소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만 결국 그 ‘실수’가 드러나면 두 번 다치는 꼴이 된다.


혈기만 왕성했던 신입 시절, 한 번은 타 부서와 이메일로 싸움이 붙었다. 요청한 것에 대해 회신이 바로 오지 않았다. 타 부서는 나에게 제시간에 자료를 보냈다고 우겼고, 나는 여러 사람을 수신자에 넣어 더욱더 세차게 공격을 했다. 아차. 보낸 메일함을 열어 보니 내가 요청한 자료가 그 메일에 있었다. 유첨 파일이 여러 개였는데, 스크롤 해서 아래까지 보지 못한 나의 실수였다.


당시는 많은 사람이 있는 메일에서 잘못을 인정하기가 죽도록 싫었다. 그래서 내가 ‘실수’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은 채 더욱더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말, 그리고 예전에 있었던 상대방의 실수나 평소에 잘 보냈으면 이런 일이 없었겠다는 ‘탓’을 했다. 지금 돌아보면 누가 봐도 ‘실수’는 내가 한 것인데, 난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다른 잘못을 끄집어내며 꼬치꼬치 싸움을 이끌어간 적반하장의 꼴이었다. ‘실수’를 알고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성을 낸 그때를 돌아보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메일에 있던 수많은 사람은 나를 지독한 ‘하수’로 여겼을 것이다.


3. 남의 ‘실수’를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사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 했던가. 어떤 사람은 남의 ‘실수’를 찾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켠다. 이마저도 ‘생존’을 위해서다. 내가 잡아먹히기 전에, 남을 잡아먹는. 남의 ‘실수’를 발견하며 쾌재를 부르고, 상대방에게 우위를 점하려는 수법이다. 내가 너의 ‘실수’를 잡아냈다. 그러니 난 너보다 더 나은 사람이고, 이것을 크게 떠벌리지 않을 테니 고마운 줄 알아라. 또는 만천하에 그 ‘실수’를 지적하며 강제 우위를 점하려 든다.


보통 부서에는 각자의 의견이나 자료를 모으는 ‘취합’ 업무가 있다. ‘취합’하는 사람은 그 업무에 대해 잘 안다. 전체적인 오버뷰(overview)를 하기 때문. 그 자료를 취합자에게 주는 사람은 단편을 보고 주게 된다. 어떤 부서의 한 ‘차장’은 깐깐한 취합자로 유명하다. 보내 자료들을 눈에 불을 켜고 본다. 그리고 누군가의 ‘실수’를 찾아냈을 땐, 여지없이 큰 소리로 그 사람을 향해 말한다.

김 대리, 이거 자료 준 거 틀렸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그 ‘차장’의 자리로 가는 김 대리는 참으로 멋쩍다. 그렇다고 그 ‘차장’이 실수를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이 취합자가 된 경우는 반대의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 일에 분풀이를 하려는 듯 그 ‘차장’이 ‘취합자’가 된 날은 더욱더 날 선 확인을 한다.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자존심을 설욕하려는 듯. 그에 반해 어떤 취합자들은 오히려 자료를 잘못 준 사람을 조용히 부르거나 심지어는 직접 다가가 이야기하기도 한다.



일을 잘하기 위해선 현란한 기술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 안 하려 하거나, 누군가의 실수를 지적하려는 일련의 행동들은 직장 생활을 참 피곤하게 만든다. 방어하기 위해, 공격하기 위해 항상 신경은 곤두서 있다. ‘실수’가 일어났을 때 그것을 부정하려 하거나, 그저 자존심 다치지 않으려는 데 온 에너지를 쏟는다. 그런데, 그렇게 생존해서 남는 게 무엇일까? 생존하려는 이유는 대게가 편안하고 행복함을 위할진대, 매사 그렇게 불안하고 초조하게 살아 있다면 그것이 정말 사는 걸까?


일을 잘하기 위해선 마음이 편해야 한다. 현란한 기술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힘 쭉 뺀 여유도 필요하다. 골프나 야구, 농구나 당구와 같이 많은 스포츠에서 우리는 자세를 낮추고 힘을 빼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운다. 직장에서 십수 년을 일하지만 나는 아직도 ‘실수’한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건, 이제는 그 ‘실수’를 알아차렸을 땐 곧바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을 인정하면 상대방도 수긍한다.


사례 1.

A 부서: 숫자가 틀린 것 같네요. 이렇게 주시면 어떡합니까?

나: 뭐가 틀렸다는 거예요? 줘보세요? 제대로 보신 거예요?

A 부서: 10페이지 두 번째 줄 보세요. 맞나요?

나: 아니 그럴 수도 있지. 틀린 것 알았으면 그쪽에서 알아서 고치면 되지 않나요?

A 부서: 뭐요?
사례 2.
A 부서: 숫자가 틀린 것 같네요. 이렇게 주시면 어떡합니까?

나: 아, 어디가 틀렸나요? 어디인지 알려 주실래요?

A 부서: 10페이지 두 번째 줄 보세요. 맞나요?

나: 아, 미안합니다. 뭔가 착오가 있었네요. 다음엔 주의할게요. 자세히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A 부서: 아… 네.

‘실수’를 인정하는 자의 모습은 초라하지 않다. 오히려 아름답다. ‘실수’를 인정하기 전까지의 마음이 복잡하고, 초라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막상 ‘실수’를 인정하면 맘이 후련하다.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이려는 것이 자신을 더 힘들게 한다. 위 사례 중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한지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사례 1의 경우는 어차피 나중에도 함께 일해야 하는 타 부서와 불편하게 지내게 될 것이 뻔하다. 직장 생활을 참 피곤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아마 매사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사례 2의 경우는 커뮤니케이션이 더 원활해진다. 게다가 상대방의 마음을 살 수도 있다.

언젠가 타 부서에서 실수할 경우 “뭐 그럴 수도 있죠!”라고 한마디 해주면 이제 서로 ‘실수’로 인해 총부리를 겨눌 일은 없게 된다. 다른 이의 실수를 품어주는 여유는 나의 ‘실수’를 인정할 때 나온다. 더불어 상사의 호통에 대해서도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잘못을 인정하는 버릇을 들이면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사례 3.

상사: 자네, 일을 이따위로 하나? 왜 이 모양이야?

나: 네, 죄송합니다. (아, 짜증 나)

상사: 내일까지 자료 준비해서 별도 보고해!

나: 네, 알겠습니다. (아, 저만 잘났지!)
사례 4.
상사: 자네, 일을 이따위로 하나? 왜 이 모양이야?

나: 네, 죄송합니다. (자, 가만 내가 잘못한 것을 인정해보자. 뭘 잘못했을까?)

상사: 내일까지 자료 준비해서 별도 보고해!

나: 네, 알겠습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상사는 항상 A 자료를 보고 호통치는데, 내가 그걸 미처 미리 챙겨보질 못했네…)

상사의 말은 항상 ‘메시지’와 ‘감정’을 구분해야 한다. 그저 그 말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면 자기 성찰의 기회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구분하고, 감정과 별개로 정말 내가 놓친 부분은 뭘까에 대해 고민해보면 문제와 함께 실마리가 보인다.


사례 3과 같이 받아들이면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장담하건대, 동일한 일로 계속 언제고 깨질 확률이 높다. 사례 4의 경우는 내가 놓친 것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러면 다음번엔 미리 준비하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 확실하다.



마치며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말이 있지만, ‘방어가 최선의 공격’이란 말도 있다. 말장난 같지만 그 둘 다 모두 진리다. 직장은 생존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초조하게 불안해하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생존해 갈 것인지는 스스로의 몫이다. 일을 잘하는 방법은 참으로 많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잘 안다. 하지만 가끔은 ‘내려놓는 것’이 일을 잘하기 위한 아주 강력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계속해서 말하는 ‘실수’와 ‘잘못’ 인정하기를 통해서 말이다.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남의 ‘실수’를 품어주는 사람은 일을 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 잘하는 사람은 또 그렇게 행동한다. 일 잘하는 사람은, 그렇게 스스로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실천해가는 사람들이다.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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