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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는 슬픈 드라마다

조회수 2020. 6. 23. 16: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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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과정 끝에는 어떤 결말이 기다릴까.
부부의 세계는 슬픈 드라마다. 막장과 파국, 복수극으로 회자되지만, 이 드라마의 주제는 상실이다. 남편에 대한 김희애의 복수는 과거 ‘청춘의 덫’이나 ‘아내의 유혹’처럼 카타르시스를 주는 게 아니라 싸움에 이기건 지건 관계없이 자신을 잃어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녀가 맨 처음 잃은 것은 남편이다.

자녀가 있는 부부가 상대의 외도를 알게 되었을 때, 매우 소수의 사람만이 이혼을 감행한다. 바람이 이혼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의외로 많다.


  1. 아이들의 정서적 혼란을 막기 위해
  2. 이혼녀라는 타이틀을 짊어지기 싫어서
  3. 경제적, 사회적인 상황 때문에


그리고 이보다 중요한 것은 ‘순간적인 실수로 믿고 싶은 욕구’와 ‘결혼 상대를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가장 크다.


지선우(김희애)는 외도를 확인한 뒤에도 몇 번이나 남편에게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바람은 일종의 중독이다. 금기를 깼다는 일탈의 쾌감은 무척 강렬하고 도덕적 역치는 갈수록 낮아진다. 즉 바람은 처음 한 번이 가장 어렵다. 두 번, 세 번째는 쾌감과 도파민이 뇌를 마비해 죄책감조차 옅어진다. 그래서 이태오(박해준)가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 거짓된 자기 합리화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잃은 것은 사회적 관계망이다.

믿었던 친구들이 뒤에서 자신을 비웃고, 부부 모임과 병원에서의 체면과 위신은 바닥에 떨어졌다. 실제 현실에선 남편의 외도를 나 혼자 아는 단계라면 많은 사람이 묵인하고 쇼윈도 부부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변 모두가 아는 단계라면 다르다.


집, 동네, 직장 그 어디를 가도 불쌍하고 버림받은 여자, 비웃음거리가 된다. 능력 있고 잘 나가던 여자라면 시기심과 질투만큼 반동이 더 해져 소문의 저급함은 더욱 심해진다. 남편이 어린 여자와 바람났다는 꼬리표, 조소는 예사이며 ‘무슨 문제가 있으니 버림받았겠지’라는 억울한 시선까지 감수해야 한다.



세 번째로 잃은 것은 자존감이다.

워킹맘으로 쉴 틈 없이 일해서 남편을 뒷바라지해준 돈을 애인의 명품가방 사느라 쓴 것을 알았을 때 그 누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공자나 부처에 가까운 인내심으로 이것을 넘긴다고 해도, 아들 보험금까지 빼서 갖다 바치는 만행을 목도했다면, 분노를 넘어서 살인 충동이 드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사태가 이 정도라면 이미 양심도 죄책감도, 혈육에 대한 애정과 미래, 그 모든 것이 다 의미 없을 만큼 그 여자에게 미쳐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성의 심각한 모라토리엄이며 상대방의 자존감은 물론 인격까지 짓밟은 것이다.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아들이다. 끝까지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한 엄마. 아들에게만은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그 처절한 노력은 눈물겹다. 아들에게 먼저 도착하기 위해 남편 차를 들이받고 다른 사람들까지 치일 뻔했다. 아들의 휴대폰을 뺏어 집어 던지고. 자신을 알아달라며 울부짖는 그녀의 집착에서는 광기까지 느껴진다. 정작 그녀가 마지막까지 지키려고 한 아들은 말한다.

엄마 미쳤어? 나 아빠랑 살 거야.

그녀는 아들이 남편을 택한 것에 이성을 잃고 폭주한다. 계획적으로 이태오를 자극해 폭력을 유발하고 아버지가 엄마를 피투성이로 만드는 모습을 아들이 직접 목격하게끔 한다. 이것은 너무나 큰 실수이다. 아들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으로 아들에게 트라우마를 준 걸 정당화한 것이다. 좋은 엄마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이다. 아들은 이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테니까.


그녀는 아들에게 처음부터 모든 것을 오픈하고 누구와 살고 싶은지 결정할 자유를 주었어야 했다. 이미 끝나버린 남편과의 관계에 집착하거나 복수에 매진할 게 아니라 아들의 상처에 집중했어야 했다. 자신보다 더 큰 피해자가 아들이란 것을 간과한 것이다.



상실의 과정 끝에는 어떤 결말이 기다릴까.

애정과 증오, 소유와 사랑, 창조와 파괴. 심리학적으로 이런 감정은 불안과 집착을 매개하는 양가감정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복수에 연연한다는 것은 포기해야 했을 관계에 대한 미련이자, 미성숙한 집착이다. 복수에 쓰이는 사회경제적 비용과 에너지는 막대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할 시간과 기회비용을 포기하게 된다.


복수의 연쇄가 장기화되면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조차 모호해지며 당위성도 무의미해진다. 자신의 분노를 상대방에게 투사하고 상대방을 다시 내면화하는 과정. 정신분석에서는 이것을 투사적 동일시라 한다. 공격성과 증오만 남아 서로의 칼만 휘두르다 종국엔 그토록 미워하던 상대방과 내가 점점 닮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치 거울처럼.


그 분노와 충동의 칼은 손잡이가 없다. 결국 상대방도 자신도 같이 피를 흘릴 뿐이다. 복수극의 끝에 남은 것이 텅 빈 상처와 상실뿐이라면 부부는 물론, 그 과정을 온전히 지켜보고 겪은 아들 또한 고위험군이 된다. 부부의 세계는 확장되어 아들의 세계, 아들이 가정을 이룬 후의 세계까지 침범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분노와 상실감을 치유하고 통합의 길로 도달할 수 있을까.


남편의 외도가 심각한 수준임을 알았을 때, 그녀는 과감히 남편을 포기했어야 했다. 돈, 사회적 위신, 이혼 소송에서의 유리함 등을 취하고자 그녀는 원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환자와의 거래, 남편 친구와의 외도까지 저지른다. 복수심에 취해 의사로서도, 친구로서의 윤리까지 저버린 그녀는 이미 가해자인 남편과 사뭇 닮아가며 자신을 잃어간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 할 수 있는 결단. 실수를 인정하고 과감히 과거와 단절하려는 용기만이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집중하게 해준다. 이태오는 복수할 가치조차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그녀가 부디 더 늦지 않게 깨닫기를 빌었다. 그렇지 않다면 복수에 성공하고 남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들, 정작 소중한 아들을 잃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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